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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Jun 20. 2019

세 번째 슛: 간다! 슬램덩크!

그때 머뭇거리지 않았더라면

 플랫폼에 내려 왔을 때 지하철이 섰다. 배차간격이 긴 급행열차.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뛰어 볼까? 아니야, 어차피 못 탈 텐데. 괜히 달려갔다가 문에 끼기라도 하면 망신이지. 서서히 문히 닫히다가, 누군가 다른 문에 끼었는지 문이 다시 열린다. 머뭇거리던 나는 그제서야 달린다. 문은 다시 닫히고 나는 끝내 열차에 타지 못했고, 약속에 늦었다.


 잠깐의 머뭇거림으로 인해 놓쳐버린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고생길이 겁나 미루다가 입영 통지서가 날아오는 바람에 타지 못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에이 내가 무슨’ 하느라 가입 신청만 해 두고 한 번도 못 나간 사회인 야구팀, ‘잔고가 얼마 없는데, 어떡하지?’ 하다가 못 간, 이제는 은퇴 해 버린 에릭클랩튼 내한 공연, 그리고 그때 그 한마디를 못해서 놓쳐버린 사람.


 우리 둘 다 어렸던 그 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오히려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그때 사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뒤늦게 말했던 몇 년 뒤 어느 날, 너는 내게 청첩장을 건넸다. 시간이 흐르며 어차피 이렇게 연락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될 줄 알았더라면 그냥 네게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전해볼 걸 그랬나. 얼마큼 만나다 헤어지더라도 우리는 꽤 괜찮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 완전판, 1권, 대원씨아이

 백호가 소연이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학교 체육관을 찾은 그 장면이 기억난다. 슬램덩크를 보고싶다는 그 말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공을 집어들고 골대를 향해 솟구치던 백호처럼, 나도 그렇게 머뭇거림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의 십대 이십대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추억들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면 그 지루한 여정에 후회를 했을지도 모르지. 이 체중으로 야구팀에 들어갔다가 괜히 부상이나 당하고 그만뒀을 수도 있고, 에릭클랩튼을 보겠답시고 통장 잔고를 탈탈 터는 바람에 한 며칠 라면으로 연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인가. 머뭇거린 뒤의 아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대가가 아닌가.


 무모하게 시도한 슬램덩크는 터무니 없이 실패했고 백호는 백보드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지고 말았지만, 그저 잠깐 아프고 말면 되는 일일 뿐이었다. 그때 내가 그 말을 머뭇거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네게 어떤 말을 들었더라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멀어졌더라도 그렇게 잠깐 아프고 말면 되는 일일 뿐이었을텐데-하는 헛생각을 하며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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