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도대체 가치있는 것은 무엇일까?
슬램덩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깟 공놀이가 뭐가 재밌어!” 라고 이야기 하던 한 소년이 “정말 좋아합니다” 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깟 공놀이’라는 백호의 말에 열혈 농구인인 채치수는 발끈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농구 강국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라의 고등학교 클럽활동 이야기일 뿐이지. 그런데 결국 백호와 치수를 비롯한 그 수많은 소년들이 그깟 공놀이에 청춘을 모조리 걸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조금 한심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특히 이야기의 결말에 고교 졸업을 앞둔 치수는 결국 농구선수의 길을 걷지 않기로 결심하고 대학 입시에 매달린다. 그 중요한 고3 여름을 그는 앞으로의 먹고 사는 일과 별 관계 없는 클럽활동에 몽땅 바쳐버린 것이다.
꼭 일본 고교 클럽활동이어서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NBA의 레이커스 경기를 보다가도 ‘농구가 뭐라고 전세계인이 열광하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나’, ‘르브론 제임스는 인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기에 매년 수천억원씩 연봉을 받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NBA라 할지라도 결국 농구는 공놀이 아닌가.
그렇다면 청춘을, 나아가 인생을 어디에다 바쳐야 의미 있다 할 수 있을까. 문학을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그보다 의미있는 공부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사람도 만나 봤고, 공부해서 하겠다는 게 고작 그거냐고 타박하는 사람도 만나봤다. 백호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문학과 음악을 ‘그깟 말 놀음’, ‘그깟 딴따라 질’이라 해도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문학과 음악이 없어도 인류는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끝이 없다. 반도체가 없어도 사람은 살고 자동차가 없어도 사람은 산다. 종교가 없어도, 철학이 없어도, 역사가 없어도 사람은 살고, 100층짜리 건물이나 초음속 여객기가 없어도 사람은 산다. 따지고 보면 다 ‘그깟 것’들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것에 청춘과 인생을 건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걸까? 그것은 어떤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일까?
단순히 먹고 살기만 하자면 삶은 심플할 것 같다. 원시사회처럼 수렵과 채집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먹고 사는 것과 아무 상관 없는 것들을 위해 삶을 바쳐왔고 그래서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는 먹고 사는 것보다 농구가 더 소중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문학이나 음악이 가장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다. 그러니 그깟 공놀이라는 백호의 말에 치수가 화를 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느 해 여름, 백호와 치수, 그리고 그 많은 소년들이 흘린 땀과 눈물에 내가 아직도 이렇게 열광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농구를 해서, 그 농구가 대단해서만은 아니다. 그저 한 시절의 클럽활동일지라도 그 땀과 눈물이 얼마나 진심어린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 일을 하는가’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