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일상
강백수
"안녕하세요, 백육호인데요 짜장면 하나 카드계산요."
'백육호'는 주소라기보다는 내 닉네임 같은 것이다. 짜장면을 가져다 주기에 동 이름도, 건물 이름도 없는 백육호 라는 주소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백육호라는 말 한마디면 짜장면은 옆옆옆 건물을 출발하여 우리집 현관을 무리 없이 찾아 온다. 어지간히 자주 시켜 먹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이 놈의 짜장, 지겨워 죽겠네.' 돈 주고 사먹으면서도 나는 혼자 투덜투덜 하곤 한다. 중간중간 짬뽕도 시켜 먹고, 볶음밥도 시켜 먹지만 이 가게는 모든 음식에 같은 첨가물을 넣는지 그 맛이 그 맛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맛. 구시렁 대면서도 중국집 배달을 애용하는 까닭은 뭔가 차려먹고 치우기는 귀찮고, 1인분을 배달해주는 다른 곳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번거롭게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고, 배달 아저씨 입장에서는 어차피 여기저기 오갈 때 지나는 길이라 그다지 성가실 일이 없는 것이다.
짜장을 안 먹는 날에는 라면을 끓인다. 라면도 물리는 날에는 짜장라면을 끓인다. 아아, 짜장과 라면과 짜장라면이라니. 혼자 산다는 것은 이 애처로운 선택지에 익숙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이 선택지를 애처롭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짜장도, 라면도, 짜장라면도 사실 내가 참 좋아하는 메뉴였다. 이제는 투덜대며 먹는 것들을 그때는 신나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자주 먹는 메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짜장면을 잘 시켜주지 않았다. 라면이나 짜장라면도 어쩌다 한 번 구경할 수 있었다. 어쩌다 너무 바쁘거나 몸이 안 좋은 날, 아니면 도저히 귀찮아서 무엇도 하기 싫었던 날에만 미안한 얼굴로 "오늘은 대충 짜장면이나 시켜 먹자." 하시곤 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내 식탁을 책임져주신 우리 할머니도 그랬다. "반찬이 영 없는데, 라면 하나 삶아 물래?" 밥과 반찬과 국이 있는 상이 일상이었고, 짜장과 라면이 일탈이었던 것이다. 일상과 일탈이 자리를 바꾼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밥상들이 일상일 수 있었던 나날들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밥통을 열면 밥이 있고,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에는 매일 다른 국이 있었을 수 있었지? 그렇게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는 번거로운 일이 어떻게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이루어질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알던 당연함들이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자취를 하면서 깨달아간다. 하나 하나 알아갈 때마다 다행스런 마음이다. 서랍 안에 잘 마른 속옷들이 채워져 있는 일과, 화장실 변기가 늘 하얗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엄마와 할머니가 애쓰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대단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