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돈
작년 12월의 일이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정말 추운 날에만 입곤 하는 패딩 점퍼를 꺼내어 입었다. 부스스한 마음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어? 주머니 속 뭔가가 부스럭 부스럭 거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그 무언가를 꺼내어 봤는데, 만세. ‘백수야, 고마워’ 라는 손 글씨가 적힌 하얀 색 봉투. 그리고 그 안에, 이십만원.
잘 기억은 안나지만, 추위가 가시지 않은 작년 초에 나를 ‘백수야’라고 부르는 가까운 이가 결혼을 했나보다. 나는 아마 축가를 불렀을 거고, 그 사람은 고맙다며 내게 이십만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건넨 모양이다. 나는 그걸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렸을 거고.
한 해가 끝나갈 무렵에 다시 만난 그 이십만원. t원래 내 것이었지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처럼 느껴져서 나는 혼자 속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꽁으로 생긴 돈은 마구 써야 화근이 없다고 했다. 이 이십만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십만원은 내일쯤 친구들을 만나 삼겹살을 사 먹기로 마음을 먹었고, 나머지 십만원은 봉투에 넣어 갖고 있다가 날이 풀려 이 점퍼를 다시 장롱안에 넣어둘 때 주머니에 도로 넣어둘 생각이다.
어떤 날은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재수가 없고, 어떤 날은 뜻밖의 행운이 펑펑 터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무심코 한 행동들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일어난 결과인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미래의 행운을 하나 만들어보기로 한거다.
나는 또다시 까맣게 잊고 한해를 보내겠지. 올 한해를 어쩌면 힘겹게 보낼 수도 있고, 행복하게 보낼 수도 있겠지. 그러다 어느 추운 날 이 점퍼를 꺼내어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봉투 하나가 만져지면 그제서야 오늘의 내가 그날의 나를 위해 준비한 작은 이벤트에 웃음지을 수 있겠지. 이 점퍼를 꺼내어 입을 2018년 12월의 어느 추운 날, 내게 행여 어떤 고단한 일이 있다면 이 십만원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면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소중한 사람들과 또 삼겹살이라도 구우며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