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백수 Dec 03. 2016

서른 살의 파파보이 (월간 에세이)

서른 살의 파파보이     

강백수  (가수, 시인)



 아버지는 평생 사업가였다. 본인은 그 사업가라는 말이 너무 거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렇게 불리기를 좀 쑥스러워 하셨지만,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사업가는 사업가 아닌가. 아무튼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호황을 좀 누리시다가 IMF때 어려워지면서 그 호황 때 쌓아놓은 것으로 십수년을 버티다가 끝내 간판을 내려야 했던 평범한 사업가였다. 평범하기조차 어려운 시대를 평범하게 사셨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사업가‘였’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아버지 뭐하시냐고 묻는 게 좀 어렵다. 아버지가 일찍 은퇴하신 게 부끄러운 건 아니고, 그냥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가 좀 애매할 뿐이다. 가사노동을 하시지만 전담하는 건 아니고, 집에 계시지만 아예 평생 일을 안 하실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자리를 찾으시는 건 아니고.      


 우리 가족은 네 명이다. 아버지, 팔순이 넘으신 할머니, 나, 여동생. 십이 년 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살림을 합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일단 우리에겐 집안 살림을 맡아 주실 분이 필요했고, 할머니도 점점 연로해지셔서 아버지가 곁에 있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셨고, 할머니가 전담하셨던 집안 살림을 조금 거들기 시작하셨다. 그러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할머니는 이것저것 케어가 필요해지셨고, 아버지 쪽으로 집안 살림의 무게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나와 동생이 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그것을 감내해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아버지의 어깨 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죄송스러웠다. 나이가 스물이 넘고 서른을 향해 가고 있는데, 더 이상 아버지께 무언가를 의지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딴에는 ‘알아서 잘 하는 아들’이 되겠다며 집에서 나와 자취도 해 보고, 곤란한 일이 생겨도 걱정 끼쳐드리지 않겠다며 혼자 전전긍긍하고, 되도록 빨리 내가 이 집의 가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그게 아버지께 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와 내가 점점 단절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알지 못한 채 남처럼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딴에는 ‘독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아버지를 외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도대체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뜻밖의 일이었다. 몇 해 전, 일이 좀 생기면서 중고차 한 대를 구했는데, 아직 운전이 서툰 내가 사고를 낸 것이다. 서로의 차에만 조금 흠집이 나고 누가 다치지는 않은 작은 사고였지만, 처음 교통사고를 낸 그 순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침착하고 능숙하게 당황한 나를 진정시키시고 현장 설명을 들으시고 대처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무사히 보험처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버지 얼굴을 보기가 민망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말로는 운전 조심해서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계셨지만, 표정에서는 뿌듯함 같은 것이 조금 비쳤다. 여전히 당신이 내가 모르는 것을 내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 여전히 어느 순간에는 내게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기쁘셨던 걸까.     


 이제 운전도 능숙하게 하게 되어 사고도 안 내고, 사고가 나더라도 알아서 보험처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아버지께 몇 가지 부분에서 의존하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 깨워달라거나 밥상을 좀 차려달라거나 하는 작은 부탁을 하기도 하고, 여전히 나보다 아버지가 더 많이 알고 잘 하는 부분들(주로 비즈니스나 대인관계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서른 살인 아들보다 환갑인 아버지가 더 잘하고 더 많이 아는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도. 나중에 내 가정이 생기면 모를까, 아버지가 꾸린 이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건강하신 동안만큼은 가장이라는 자리를 양위 받지 않을 생각이다. 누군가는 철없는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백 살이 되고 내가 칠십이 되어도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귀를 기울이자마자 내게 찾아온 변화들 (좋은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