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도 종교였다.
시댁은 독실한 천주교이다.
아버님댁이나 어머님댁이나 모두 아주 독실하다.
어머님을 처음 뵀을때 첫 질문이 세례 교육을 받아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고,
처음 보는 이모님들이 첫 질문으로 성당에 다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평소에 세례명으로 부르시기도 한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 신부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기엔 결혼을 하지 않을 만큼은 아니어서 포기했단다.)
내가 아는 한 남편은 주말에 성당을 가지 않았다.(나랑 놀았다 ㅎㅎ)
밥 먹기 전에 식사 기도도 하지 않았다.
만약 했다면 나와는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회사 연수원에서 성당모임에 나가긴 했지만
내가 알기론 그 모임은 술모임이었다.
같이 뭔가 미사에 간다거나, 부활절을 챙긴다거나 하는
홀리(holy)한 모임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 전에는 가끔 시댁에 갔을 때 성당을 따라갔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 가끔 같이 가는 정도였고(그것도 결혼 초반 몇 년)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남편이 나한테 맞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교가 없다.
종교적 믿음이 잘 생기는 편이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종교활동에 둘러싸여 있긴 했지만
나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은 종교는 없었다.
교회 권사였던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다녔던 교회도
집 앞에 있어 그냥 가봤던 성당도
친할머니가 오래 다니신 절에 석가탄신일마다 갈 때도
그럭저럭 따라서 오갔을 뿐
신심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키는 건 큰 거부감 없이 그냥 했다.
가끔은 종교가 있는 사람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이 세상에 이유 없이 믿을 구석이 하나 있어 보여서.
아무튼,
결혼을 성당에서 하든,
결혼 전부터 나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하든
성탄절에 성당에 같이 가든
그 정도는 내가 수용가능한 범위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게 되자
나는 참을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 근처로 오시면서
애들은 성당 주일학교에 다녀야 했다.
시아버님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보호자 연락처에 나를 써서
성당 주일학교 학부모 단체카톡방에 초대가 되었다.
(바로 나와 남편을 소환시켰다. 자모회 모임 자매님이 다소 당황하신 듯 보였다. ㅎㅎ)
남편은 주말에 애들은 3시간 정도 보내고 우리 까리 자유시간을 갖는 거라며
좋은 거라 합리화했지만
나는 안 보내고 싶었다.
(자기가 금요일 저녁에 과음하고
토요일 오전에 애들 보기가 힘들면
아니면 토요엘 새벽에 운동을 나가야 해서
아버님을 불러서 애들이랑 놀게 했다.
나를 쉬게 한다는 명목으로. 그게 내가 쉬는 거냐 네가 쉬는 거지....)
평일에도 야근에 뭐에 잘 못 보는 아이들이었다.
주말에 끼고 있고 싶었다.
주일학교는 꽤나 타이트했다.
매주 참석, 3주쯤인가 한번 학부모 청소봉사 및 돌아가며 간식봉사,
여름엔 단체 나들이.
애들이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우리끼리 밥을 먹을 때도
식사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평일 저녁에 대부분 시부모님과 저녁을 먹는 아이들은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들어가며 하나둘 종교적인 물이 들어갔다.
하나님에 대한 동화책과 종이로 하는 공작놀이들이 집에 늘어갔다.
어머님은 애들 방에, 우리 집 거실에 십자가를 걸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선물을 하는 수준이었고, 직접 걸진 않았다)
물론 나한테 상의는 없었다.ㅋㅋㅋㅋㅋ
진짜 쓰면서도 왜 이러고 살았나 싶다.
나는 특히 딸과 거리감이 생겼다.
FM 스타일인 딸은 주일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이 생겼다.
주말에 성당을 안 가게 되면 가야 하는데.... 하며 죄책감을 가졌다.
자기 책상에 십자가를 걸어두었다.
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이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아이가 본인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자유는 줘야 한다.
엄마의 눈치를 보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럼 나와 너무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 두렵다.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 들게 한 시부모님이 미워진다.
그냥 이런 집이랑 결혼한 내가 잘못이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엔 내 선택이고
아이는 잘못이 없다.
딸과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은데
종교가 다르다는 건 좀 슬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