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태엽 Apr 22. 2018

성장통에 대해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 리뷰

누구나 겪지만 잊어버리고 사는 성장통에 대해  


 2002년,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는 주인공 ‘크리스틴’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지루함을 느끼고 재밌는 일을 찾는다. 그녀는 부모님이 지어준 자신의 이름(Given name) ‘크리스틴’말고 자신이 만든 (Self-given name) 이름 ‘레이디 버드’로 불러달라고 한다.



 이 영화는 대학 진학을 앞둔 사춘기 소녀의 방황과 성장을 보여준다. ‘크리스틴’의 집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처럼 부자가 아니다. 아버지는 중간에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집안 사정 때문에 어머니는 정신병원에서 야간타임으로도 일한다. ‘크리스틴’은 가족의 차가 부끄러워서 항상 학교 앞이 아닌 옆쪽에 차를 세워서 등교하고 자신의 집의 위치를 ‘철로변의 구린 쪽’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레이디 버드>의 오프닝은 어머니와 딸이 침대에 누워 서로를 마주한 채로 자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녀와 어머니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오디오북을 흘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내 둘은 ‘크리스틴’이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문제로 다투게 된다. 말싸움 도중 ‘크리스틴’은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그로 인해 남은 학기를 팔에 분홍 깁스를 한 채로 보내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크리스틴’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만든 자신의 이름 ‘레이디 버드’는 여자(레이디)인 자신의 정체성과 새크라멘토라는 둥지를 떠나 새(버드)처럼 날아가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다.

 그 방황은 또한 영화의 시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영화의 배경인 2002년은 사회에 불안이 팽배한 포스트 911 시대다. 그리고 그녀가 가족과 다투고 방황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관련된 뉴스들이 배경으로 흘러간다.


 ‘크리스틴’은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이 남자친구 두 명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뮤지컬에서 만난 ‘대니’는 대가족과 살고 모범생에, 부유하고 할머니는 ‘크리스틴’의 꿈의 집에 살고 있다. 또한 파티에 데려갈 때 직접 집에 들어와서 ‘크리스틴’을 데리고 나간다. 하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게이)을 드러내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가 연극 중에 하는 대사 중 “내겐 절망뿐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그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일 수도 있다.

 반면 ‘카일’은 락밴드를 하는 자유로운 히피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물질성에 부정적이고 ‘크리스틴’을 프롬에 데려갈 때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클락셀만 울린다. ‘크리스틴’은 이 두 명을 만나면서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되고 좌절을 겪는다.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래"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크리스틴’은 어머니와 영화 내내 대립한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해서 그렇단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어머니가 그녀를 사랑해서 하는 충고들은 어린 ‘크리스틴’에겐 간섭과 참견으로만 들린다.

그들이 오프닝에 듣고 있던 책 <분노의 포도>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축복받은 땅’인 캘리포니아로 오지만 좌절을 맛보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크리스틴’의 경우 그 반대인데 그녀는 지루한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욕으로 가고자 한다. 그녀의 ‘축복받은 땅’은 뉴욕이다. 모녀가 이 책을 듣고 나서 뉴욕에 있는 대학 진학 문제로 다투는 건 의미심장하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살면서 어떻게 신을 안 믿을 수 있지?”


 뉴욕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지원 사실을 알리지 않은 어머니와 갈등을 겪지만 결국 어머니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뉴욕에 간 ‘크리스틴’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만든 이름에서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돌아오는 이 과정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 영화의 오프닝 장면(어머니와 ‘크리스틴’이 누워있는 장면)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영화의 핵심은 모녀가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에서 ‘크리스틴’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오디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로 새겨진 뉴욕의 잊혀진 역사 <갱스 오브 뉴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