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태엽 Feb 07. 2018

‘고흐’의 화폭으로 그려낸 <시민 케인>-<러빙빈센트>

영화 <러빙 빈센트> 리뷰


 누군가를 추모하는 방식으로 이보다도 완벽한 방법이 있을까. 반 고흐의 걸작들이 현대의 기술과 만나 살아나서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62,450점의 유화를 통해서. 모방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지만 아마 이건 가장 훌륭한 모방이 아닐까 싶다.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영화지만 그 시작은 그가 죽은 지 1년 후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빈센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푸는 추리 영화, 탐정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의문은 이것이다. ‘죽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빈센트가 왜 자살했을까?’.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가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그래서 반 고흐는 타살인 거야 자살인 거야?”라고 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아르망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인해 빈센트의 붙이지 못한 편지를 전해주러 테오에게 간다. 하지만 테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죽음의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반 고흐라는 예술가의 인생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아르망이 만나는 인물마다 빈센트를 각기 다르게 묘사하고 평가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그려내고 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에 퍼즐을 맞추듯이 맞춰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는 미친 놈’, 누구에게는 천재이고, ‘예술가이자 외로운 사나이였던 고흐의 일생에 대해 탐구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초반에는 그저 빈센트를 그저 미친 그림쟁이라고 생각했던 아르망은 그를 점점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화에서의 현재는 빈센트의 화폭으로 유화가 살아 움직이는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과거 회상 장면은 사실적인 흑백 그림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차이를 둔다. 이런 식으로 <러빙 빈센트>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 과거와 현재의 형식 차이, 빈센트의 대한 주관적인 기억을 맞춰나가는 과정 등을 통해서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이 영화는 빈센트의 편지를 전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편지 자체는 맥거핀에 불가하다. 빈센트의 편지는 그저 관객을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편지와 마찬가지로 핵심적인 요소로 보였던 것, ‘빈센트는 어떻게 죽었는가라는 의문은? 그 또한 마찬가지로 맥거핀이다.
 그가 죽은 이유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자살이건 타살이건, 빈센트가 여러 사람들에게서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죽어간 불행한 예술가인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영화 속 이 대사는 아르망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는 질문 같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그의 삶인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요소는 관객들을 그의 삶으로 안내하는 맥거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영화사의 걸작 <시민 케인>의 형식을 오마주하고 있다. <시민 케인>은 대부호 찰스 케인이 로즈버드란 말을 남기고 사망하고, 한 기자가 찰스 케인의 죽음의 이유와 로즈버드에 대해서 조사해 나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산 시민 케인의 인생 이야기이다. <러빙 빈센트>의 편지는 <시민케인>로즈버드와 같은 역할이다.
 타살에 무게를 두다가 후반부에 자살로 사인이 거의 확정되면서 모호하게 마무리되고, 지금까지의 의심들이 그저 사라지면서 관객들에게는 허무함을 줄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그래서 자살인 거야? 타살인 거야?”라고 대화를 나누던 관객들처럼 말이다. 추리물에 걸맞는 서스펜스가 부족하고 아르망이 인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우연에 의지하는 것이 많은 것 등 내러티브적 측면에서 영화가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빈센트라는 한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그 느낌은 달라진다. 그의 유화들이 살아 움직이고 그의 외로움에 공감하면서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의문들보다는 예술가로서의 반 고흐의 일생 그 자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한겨울처럼 차가운 이마무라 쇼헤이의 냉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