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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Jun 30. 2018

웨스 앤더슨다운 미장센과 유머, 아쉬운 오리엔탈리즘

영화 <개들의 섬> 리뷰

 웨스 앤더슨이 4년 만에 돌아왔다. <판타스틱 Mr. 폭스>에 이어 두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웨스 앤더슨의 어느 영화들이나 그렇듯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소년이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영화는 고바야시 가문과 개들의 유서 깊은 전쟁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고바야시 가문은 옛날부터 고양이들을 추양하고 개들과는 원수지간이었다. 일본 전통화의 형태를 빌려 개와 인간의 싸움을 묘사하는 이 오프닝은 영화의 독특한 세계관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의 일본, 가상의 도시 메가사키에는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이 퍼진다. 그러자 메가사키의 시장 '고바야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한. 그 시작은 자신의 양아들의 경호견 ‘스파츠’부터다.

 쫓겨난 개들은 굶주림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쓰레기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신세가 된다. 그때 한 소년이 혼자서 경비행기를 타고 섬에 추락한다. 그것은 시장의 양아들이자 자신의 반려견을 찾으러 온 ‘아타리’다. ‘아타리’는 버려진 개들과 함께 스파츠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답게 미장센은 흠잡을 데가 없이 아름답다.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독특한 세계관과 분위기 속에서도 웨스 앤더슨의 색채를 잃지 않는다. 영화의 분위기에 따라 색이 빠진 화면이지만 특유의 색감도 여전하고 거의 강박적으로 지키는 좌우대칭과 구도 또한 애니메이션에서도 빛을 발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음악도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은 분명히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웨스 앤더슨과 만나면 디스토피아마저 사랑스러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웨스 앤더슨 영화는 항상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 뒤에 고독과 어둠을 숨겨놨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항상 괴짜에 어딘가 결핍되어 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었다. 일종의 사랑스러운 너드(Nerd)들인 셈이다. 그것은 그가 거의 처음으로 시대 배경을 현대가 아닌 시대로 설정한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겉으로는 ‘구스타브’와 ‘제로’의 재기 넘치고 귀여운 모험담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아와 고독이 감춰져 있었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 ‘아타리’는 어릴 적에 사고로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 입양되었고 ‘치프’는 길거리를 떠돌던 개다. 이들은 함께 여정을 계속하면서 점점 연대를 쌓아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유머 또한 웨스 앤더슨답다. 

 영화에서 인간은 일본어를, 개들은 영어를 사용한다. ‘아타리’와 개들은 언어로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반려견과 주인이 그렇듯 마음으로 소통하며 유대감을 쌓아간다. 또한 대부분의 일본어는 자막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간간히 나오는 통역가의 번역뿐이다. 특이한 점은 대다수의 등장인물이 일본어를 사용하는데 자막이 전혀 나오지 않는 점이다. 이는 감독이 의도한 것인데 그는 자막을 읽으면 자막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자막을 뺐다고 한다. 말은 이해하지 못해도 감정은 이해할 수 있다고 웨스 앤더슨은 말했다. 감독의 말처럼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과 개들이 소통하는 과정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개들의 섬>은 전체주의와 혐오에 대해 비판하는 우화다. 영화에서 권력 관계의 우위에 있는 인간이 하위 집단을 추방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역사와 현재의 사회 모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개들을 모두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영화는 지지율 98%의 ‘고바야시’ 시장이 프로파간다로 대중을 선동하는 여러 모습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던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갈등이 빠르게 봉합되는 결말은 제쳐두더라도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왜색이 짙다. 20년이 지난 미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통가옥구조가 유지되고 기모노, 가부키, 스모 등 일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감독의 동경과 동시에 서구인들이 동양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동양권 문화에 대한 동경이라지만 서구가 가진 스테레오 타입대로 동양을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영화가 말하려 하는 편견에 대한 메시지가 힘을 잃게 만든다. 이 영화 또한 동양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투영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지명(나가사키)을 연상시키는 ‘메가사키’라는 도시와 우화라기엔 실제 역사를 너무 떠올리게 하는 영화의 설정은 서양권에서는 흥미롭게 읽힐 수 있겠지만 역사의 피해자인 동아시아의 관객으로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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