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리뷰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가 있다. 강을 앞에 두고 전갈이 개구리에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태워달라고 했다.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으로 자신을 찌를까봐 걱정하지만 전갈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강을 건너는 도중에 전갈은 결국 개구리를 찌르고 만다. 개구리가 죽어가며 이유를 묻자 전갈은 이렇게 답했다.
“난 전갈이야. 이게 내 본성이야."
그리고 둘은 강 한가운데에서 함께 빠져죽고 만다. 전갈은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본성을 억누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드라이브>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는 전갈이 뒤에 크게 새겨져 있는 자켓을 항상 입는다. 하지만 초·중반부에 그가 아이린을 만나 사랑에 빠질 때 그는 그 자켓을 벗고 있거나 입고 있어도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선 그의 뒷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은 그의 내재된 폭력성을 상징한다. 중간중간 그의 폭력성이 드러나려 할 때, 전갈 자켓을 입은 그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전갈이 본성을 숨길 수 없었듯이, 결국 그도 자신의 본성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는 아이린과 그녀의 아이를 위해 그녀의 남편인 스탠다드를 도우려고 하지만 모든 일들이 꼬이고 만다. 또한 아이린에게 그토록 감추려 했던 자신의 폭력성을 들키고 만다(그순간,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갈 자켓을 입은 뒷모습을 보이게 된다). 결국 그는 그 과정에서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후반부에 드라이버는 사건의 배후에 있는 니노를 죽인 후 니노의 동료인 버디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를 언급하며 니노는 강을 못 건너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는 둘 모두 강에 빠져 죽고 마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처럼 그도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어떤 배우들은 눈빛만으로도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있다. 장국영이나 양조위, 우리나라에서는 이병헌이 그렇듯이. 라이언 고슬링은 최근의 헐리우드 배우 중에 가장 깊은 눈빛을 가졌다. 그의 눈동자에 가득한 고독과 우수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간다. 심지어 뒷모습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하는 듯하다(이러한 모습은 이후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에서도 잘 활용된다). 살짝 부족한 영화의 개연성을 메꾸고 납득시키고,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건 그의 공이 가장 크다.
영화에서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시아 영화의 영향인지 미국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총기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물들이 사용하는 것은 망치나 칼, 면도칼 등이다. 그로 인해 <드라이브>애서는 근접전이 많이 나오고 액션이 잔인한 편이다. 이것은 물론 영화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드라이버를 죽이러 온 사내를 드라이버가 죽이게 됐을 때, 그의 얼굴에는 피가 가득 묻게 된다. 그의 본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