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투게더> 리뷰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해피투게더>의 사랑이야기는 겉보기로는 특별해 보인다. 동성연애인 것부터 시작해서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드라마까지. 하지만 꺼풀들을 조금씩 벗겨보면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랑이야기다. 홍콩에서 정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한 홍콩 퀴어 커플에 대해 다루지만 결국에 왕가위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사서독>과 더불어 왕가위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홍콩에서 무작정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온 연인 아휘와 보영은 이과수 폭포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서로 상반되는 성격 때문에 잦은 다툼을 겪다 결국 헤어진다. 그러다 아휘는 자신이 일하는 한 클럽에서 다른 남자의 애인으로 있는 보영과 다시 만나게 된다. 보영은 아휘의 곁을 자꾸 맴돌다가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채 양손을 다쳐서 아휘에게 나타나고, 그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한다.
“사실 그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랬다.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둘은 다시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영이 점점 나으면서 자유롭고 싶은 보영과 그런 보영을 곁에 두고 싶은 아휘의 갈등이 다시 시작된다.
(스포일러)
그러나 결국 보영은 다시 아휘를 떠나게 되고 아휘는 홀로 이과수 폭포에 간 후 홍콩으로 돌아간다.
이 둘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악역은 보영이다. 내성적인 아휘에 비해 자유롭고 충동적인 보영의 모습은 둘의 갈등의 원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영화의 화자가 아휘이기 때문이다. 아휘 또한 자유로운 보영을 자신에게 묶어놓기 위해 애쓴다. 보영의 여권을 감춰서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외출하는 보영을 늘 감시하고 신경쓰고, 보영이 담배를 사러 외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보루의 담배를 사들고 와 방에 두기도 한다. 사랑에 악역은 없다. 그저 두 명의 주인공이 있을 뿐.
보영은 뒤늦게 아휘의 방을 다시 찾아온다. 예전에 아휘가 그랬던 것처럼 담배를 몇 보루씩 든 채로. 다시 시작하려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아휘는 멀리 떠난 뒤다. 이 장면에서 PTA의 <마스터>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보영이 담배를 몇 보루씩 사서 아휘를 찾아오는 것은 그와 다시 시작하고 다시 자신을 묶어두길 바라는 신호다. <마스터>의 프레디도 마찬가지로 랭카스터를 떠났다가 그가 좋아하는 담배를 사서 그에게 돌아가서는 사진을 찍어드릴 수 있다고 한다. 자유롭고 싶지만 한편으론 속박되고 싶은 둘은 결국 거절당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김사월의 <옆>이라는 노래를 떠올렸다.
“서로 괴롭혔지만 옆에 있어주는 것은 원했었던 것
서로 외로웠지만 옆에 있어주는 건 안 원했었던 것“
이 영화는 서로 함께 있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혼자 있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다시 그리워지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둘은 만나면 고장난 차처럼 늘 삐거덕거리지만 떨어지면 서로의 빈 자리를 깊게 느낀다. 이과수 폭포는 그들이 절대 함께 닿을 수 없는 이상향적인 사랑의 메타포가 아닐까. 보영이 아휘의 빈 방에 와서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전등을 바라보며 슬피 울 때(이 때 이 전등에는 이과수 폭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휘도 이과수 폭포에 도착해 폭포를 바라보며 눈물짓는다.
문득 나의 사랑을 떠올리고 반성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휘였던 적이 없는지, 혹은 보영, 혹은 둘 다였을까. 결국 사랑의 끝은 이별인 걸 알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건가. 이 보편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