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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Feb 27. 2019

<핑거스미스> - <아가씨>와는 사뭇 다른 느낌

도서 <핑거스미스> 리뷰

 89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흡입력이 엄청나서 한 번 집중하면 금세 읽히는 책이다. 흡입력이 엄청나다.


 1부까지는 영화 <아가씨>와 공간적 배경만 다를 뿐 내용은 흡사하게 전개되지만 2부의 후반부부터 전개가 급변한다. 작가인 사라 워터스가 아가씨의 시나리오를 보고 based on이 아니라 inspired by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핑거스미스>는 중반부부터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비밀들이 밝혀지고 인물관계가 드러나면서 내용이 훨씬 더 복잡해진다. 1부와 3부는 '수전'(영화에서는 숙희), 2부는 '모드'(영화에서는 히데코)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 덕분에 2부에서 드러난 비밀을 3부의 '수'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내용이 전개되고 파국이 진행되는 과정도 '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관객들은 다 아는 사실을 주인공이 모를 때 서스펜스가 만들어진다는 히치콕의 명제를 충실히 잘 이행하고 있다. 

 다만 철저히 개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마지막 절정에서 '석스비 부인'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아쉽긴 하다. 17년 동안 계획을 짜놓고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수'를 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상황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두 딸들(생물학적 딸과 자신이 직접 기른 딸)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 같이 '석스비 부인'의 심리가 좀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책이 워낙 길고 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해서 영화화기에 어려움이 따라보인다. 그래서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과감한 생략', '석스비 부인'이나 가족 관계 설정을 없애버리고 '숙희'와 '히데코' 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매우 성공적이다. 책에서는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에 집중하느라 '수전'과 '모드'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적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에서는 인물관계의 선택과 집중으로 '숙희'와 '히데코'의 감정선이 분명해졌고 그로 인해 주제의식을 더 명확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가씨>에서 느꼈던 명백한 주제의식과 그로인한 해방감(특히 2부에서 집을 떠나는 장면)이 <핑거스미스>에서는 덜한 편이다.(개인적으로 <아가씨>는 작년 최고의 한국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아가씨>에서처럼 인물이나 주제가 (조금)단순화되지 않고 더 다채로워졌다는 것이다. 분명히 두 작품 모두 다른 매력이 있고 그 둘을 비교해가며 보는 즐거움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두 영화 모두 결말의 방식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핑거스미스>의 마지막에서 '모드'는 자신이 그런 쪽(?)의 글쓰기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직접 책을 집필하게 된다. <아가씨>의 경우 '히데코'를 체벌하던 도구를 둘이 성관계에 사용하며 끝이 난다. 물론 무슨 의도였는지는 안다(변태성욕과 속박의 대상이었던 것을 오히려 해방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전복을 하는...어쩌고). 다만 그러기 위해 택한 방식이 아쉽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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