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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Mar 27. 2019

라스 폰 트리에의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공존하는 영화

영화 <살인마 잭의 집> 리뷰

 영화 자체가 상스럽고 우아하니 글도 그와 비슷하게 쓰겠다. 스포일러 덩어리인데 사실 이 영화는 스포일러가 별 의미가 없다. 건전한 사람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한(맨 정신인)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사실 그냥 누구에게 권할 영화가 아니다. 괜히 이런 영화 좋다고 말하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딱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강렬하게 남았다. 어떤 식으로든…

 미루고 미루다가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겨우 보았다. 보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일단 가장 큰 생각은 ‘라스 폰 트리에는 영화를 해서 참 다행이다’라는 것, 영화를 안 했으면 대체 뭘 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님포매니악> 시리즈를 보면서 부제를 ‘라스 폰 트리에들의 대화’로 했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젊은 색정광 여자와 나이 든 동정남이라는 얼핏 보기엔 전혀 다른 두 명이 만났만 결국 둘은 매우 닮아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들의 구체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살인마 잭의 집>은 <님포매니악> Vol 1,2와 같이 묶어서 라스 폰 트리에의 자아 분열 3부작이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두 명이 논쟁을 벌이는데 알고 보니 둘 다 라스 폰 트리에다. 양극단의 두 라스 폰 트리에가 서로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번엔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는데 후반 전까지 잭과 버지의 대화는 블랙아웃된 화면에 소리만 들리는 채로 진행된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용어를 빌리자면 잭과 버지는 이드와 초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금 솔직하게 평을 하자면 더럽고 불편하고 치졸하고 야비하고 비열하고 혐오스럽고 그걸 감독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매력적(?)이다... 보면서 같이 상스러워지는 영화다.

 그것이 어떤 쪽이건 간에 상관없이, 그냥 떠오르는 극단적인 감정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 극단적인 자기혐오와 나르시시즘이 공존하고 온갖 자아비판과 자기변명과 합리화가 가득하다. 관객이 까기 전에 자기가 자신을 먼저 까고 자기가 변명하고 ‘근데 이게 나야, 어쩌라고’로 마무리해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게다가 영화 중 예술을 논할 때 지 영화 푸티지를 넣고, 자신이 논란을 일으켰던 나치·히틀러를 삽입한 건…

 영화처럼 상스럽고 우아하게 현대미술의 예를 들어 표현하자면 두 명이 섹스를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자세히 보니까 한 명이 아방가르드하게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 거였고 그걸 넋 놓고 보고 있는 느낌이다. 나나 걔나 다 제정신이 아니란 얘기다.

 나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아동의 신체 훼손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나오는 영화는 본 적이 없다. 그건 영화의 폭력성의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이고, 그걸 넘어서는 순간 엄청난 비판은 당연히 뒤따르게 돼있다. 하지만… 속된 말로 애새끼의 대갈통이 날라가는 게 영화에 나온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정도가 없는 영화인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공포가 됐다. 이미 아동의 머리통을 날린 이상 뭔 일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영화의 폭력성은 시각적 폭력으로만 따지면 다른 영화들에 비해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진정 고통스러운 건 그걸 보여주는 과정과 방식이다. 내내 흔들리고 제한된 정보만 주는 화면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분위기는 ‘차라리 빨리 죽여라’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정말 지독하게 할 듯 말 듯 애태우고, 언제 어떤 일이 갑자기 발생할지 몰라 마음을 졸이게 된다.

 특히 그게 가장 심했던 것이 네 번째 사건. 개인적으로 진심으로 불편하고 혐오스러웠다. 애초에 가슴에 빨간 선을 그은 이상 여자가 죽는다는 것과 죽는 방식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 과정을 지독하게 끌어서 트리거를 자극한다. 화룡점정은 “왜 항상 남자가 문제라는 거야?” 이후 이어지는 잭의 대사, 보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정말 야비한 점은 살인이 끝난 후, 버지의 질문이다. 요지는 왜 잭의 이야기 속 피해자는 다 여자들 뿐이고 왜 다 멍청한 지, 그게 자신의 우월감을 자랑하려고 그러는 것인지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관객들이 보면서 든 생각들을 오히려 영화 내에서 먼저 문제시해버리고, 잭에게 궤변의 장을 마련해 준다. 관객이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비열하고 야비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난 이러한 야비함은 이상하게 좋다(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말하자면 주인공이 스스로 자기변명을 하게 하는 그 방식이 좋다는 거다. 네 번째 사건의 묘사는 혐오스럽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려나’ 생각이 드는 타이밍을 많이 지나친다. 그리고 갈 데까지 간다. 그냥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들을 적자면 버지가 처음 등장해서 지옥으로 내려갈 때, 지옥에서 창을 통해 밭을 갈고 있는 천국(?)의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잭이 벽을 타고 건너는 도중 휘청거리기 시작할 때 정도? 하지만 영화는 그 내용처럼 갈 데까지 간다. 심지어 지옥의 가장 밑바닥까지. 라스 폰 트리에는 그렇게까지 했어야 속이 시원했을 거다.


 영화를 보면서 라스 폰 트리에는 더 이상 영화 안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 끝까지도 다 간 마당에, 이제 하고 싶은 말 다 한 것 같더라.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어떤 점에서든 라스 폰 트리에의 정점에 서있는 영화다. 영화가 더 나오더라도 굳이 찾아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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