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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May 14. 2019

그래서 트루 아메리칸이란 대체 무엇인가?-영화 <어스>

영화 <어스> 리뷰

 작성해놓고 오랫동안 그냥 쌓아두기만 했던 글 중 하나.


 영화 <어스>는 공포영화의 탈을 쓴 사회 영화다. 자신들도 미국인(American)이라고 말하는 도플갱어들의 등장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 트루 아메리칸(True American)은 무엇인가? 화합의 손잡기가 어떻게 경계를 가르는 것이 되었는가?를 묻는다.

 라고 쓰면 있어 보이니까... 허세는 집어치우고 제대로 시작해보자.

 1986년, Hands Across America 운동의 광고가 나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생일을 맞은 애들레이드는 가족과 산타 크루즈 해변에 왔는데 가족들이 소홀한 틈에 홀로 해변 쪽으로 걷다가 ‘너 자신을 찾아라’라고 써있는 귀신의 집(?)에 홀리듯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울로 가득한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만나게 된다.

 현재, 결혼도 하고 두 명의 아이도 낳은 애들레이드는 가족들과 함께 산타 크루즈의 별장에 놀러 오게 된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86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애들레이드, 그녀는 86년의 그 사건 이후 일종의 PTSD를 겪고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치료의 방법으로 발레를 배웠다. 그녀는 해변에 가자는 남편의 말을 거절하지만 결국 어쩔 수없이 자신의 안 좋은 기억이 담긴 해변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릴 적 보았던 예레미야 11장 11절이 적힌 피켓을 든 남자가 사망한 것을 보고, 어릴 적의 트라우마와 연관된 것들을 계속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애들레이드의 가족과 똑같이 생긴 네 명의 가족이 나타난다.

 본인은 <겟 아웃>을 <어스>를 보고 나서야 봤다. 그 전에는 천재 감독이 나타났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거기에 감독이 유튜브와 인터넷 짤로 많이 봤던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것에 놀란 정도다. 그리고 막상 <겟 아웃>을 보고 나니 이 영화가 공포영화가 아니라 스릴러 정도라고 말한 의견들이 이해가 갔다. 인종차별을 공포의 소재로 삼아 영화를 만든 것, 그리고 그게 영화가 만들어진 지 100년이 훨씬 넘어가는 2010년대에 나왔다는 건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새로운 발견이었고 그 소재의 천재성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감독이  고평가 되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미국인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겟 아웃>, <어스> 모두 소재의 참신함을 끝까지 가져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스포)

 ‘나와 똑같은 이들과 싸우면서 몰랐던 나의 폭력성을 발견하게 된다.’

가 주제인 줄 알았다. 영화의 3분의 2 지점까지는. 그리고 그 3분의 2 지점까지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하지만 남은 3분의 1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음모론과 점점 영화의 장르를 SF나 판타지로 향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Hands Across America의 변주는 계속된 물음표만 남기고 영화에서 튕겨져 나가게 한다. 그리고 조금은 뻔하고 딱히 별 의미도 없는 반전까지. 영화 내내 던져진 떡밥들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고 마지막에 남는 건 ‘저 날카롭고 간지 나는 스댕 가위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단체주문을 했을까’ 정도다.

 차라리 아예 더 비현실적이거나 좀 더 현실적이거나 둘 중 하나로 갔어야 했다. 어중간한 지점에 서 있으니 영화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어중간해진다. 그래서 후반부는 많이 아쉽다. 중반부까지 훌륭한 영화였기에 더더욱.

 고평가 되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조던 필이 재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번뜩이는 천재성과 세련된 연출은 놀랍다. 특히 마지막의 그 발레 장면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영화 또한  <새> + <터미네이터2> + <새벽의 저주>에 도플갱어의 요소가 결합된 느낌이었는데 끔찍한 혼종이 아니라 세련된 신종을 만들어 냈다. 후반부는 여전히 아쉽지만.


 본인은 공포영화를 ‘못’ 본다. 특히 극장에선 절대로 못 본다. 작년에 영상자료원 공포영화 특집 때 겨우 용기를 내서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를 본 게 극장에서의 공포영화 첫 경험이었다(그때 몇 개를 더 보긴 했는데 공포라기 보단 스릴러, 크리쳐 무비에 가까웠다). 그리고 3월, 문화의 날을 맞아 ‘많은 관객들 속에선 그나마 덜 무섭겠지’라는 생각에 인생 처음으로 내 돈 주고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게 <어스>다. 그리고 내 예상을 빗나갔다. 차라리 사람 적은 데서 볼 걸, 꽉 찬 상영관에서 제일 호들갑 떤 게 나였던 것 같다. 내 옆자리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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