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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Jun 10. 2019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어떻게 볼 것인가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영상자료원에서

"아빠, 근데 이거 그래서 무슨 이야기야?"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검은 화면에서 또 이어지는 음악까지 끝이 나 마침내 불이 켜졌을 때, 내 옆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아버지한테 한 질문이다. 예상 답변으로는


1. 그런 건 엄마한테 가서 물어봐.

2. 넌 기껏 학원 보내고 공부시켰더니 이런 것도 제대로 이해 못 하니? A4 용지 한 장 10포인트로 꽉 채워서 가져와. 검사할 테니까.

3. 너 영알못이니? 이리 와서 앉아봐라. 이 영화가 말이야. 인간이 달에 가기도 전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이 말이야. 이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인데 말이야. 큐브릭이 어쩌고저쩌고 블롸블롸~

4. ㅇㅇ야. 이건 비밀인데 아빠도 다른 사람들도, 다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일단 아는 척하고 좋다고 하는 거야.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이거 봤다고 하면서 아는 척하고 이상한 말 해대면 있어 보일 거야.

5.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끝까지 다 보고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것까지 다 참고 보다니. 넌 헬조선에 최적화된 아이구나. 아빠는 이제 마음이 놓인다.


등이 있었는데 실제 대답은 "무슨 이야기인지는 보고 나서 네가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거야"라는 아주 정석적이면서도 교묘하게 회피적인 대답이었다. 그러다가 나한테 누가 이 영화가 대체 뭔 영화냐고 물으면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봤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금은 거의 예술영화에 속해 있지만 사실 1968년 개봉 당시에는 무려 1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놓고 상업영화였다. 그리고 총 5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그 해 미국 최고 흥행영화가 되었다. 50년 전 금액이라 실감이 잘 안 나는데 이 영화의 미국 총수익 6000만 달러(이후 2000년대 들어 재개봉하여 벌어들인 400만 달러가 추가됨)를 인플레이션과 티켓 가격 상승에 맞게 조정하면 현재 약 4억 달러에 해당한다. 참고로 <캡틴 마블>의 미국 총수익이 4억 2500만 달러 정도였다. 한 마디로 대박 난 영화였다.


이 얘기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68년 당시에 지금의 대박 난 슈퍼히어로 영화 급이었다'는 말로 받아들이면 크나큰 오해다. 당장 영화시장만 해도 그때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졌고, 미디어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 당시 이 영화가 보여준 시각효과는 혁명적인 수준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엔드게임> 같은 걸 보고 그런 충격을 받지는 않으니까.

지금은 느려 터져서 보는 사람 속도 같이 터져버릴 듯한 영화의 속도는 당시에 낼 수 있는 속도감의 최대치였다. 그리고 당시의 아날로그 기술로 그런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데 현재로선 상상도 못할 시간이 들어갔다(우주선이 날아가는 몇 초의 장면을 찍는데 며칠이 걸렸다는 얘기가 있으니). 거기다가 큐브릭의 완벽주의까지 더해진다면... 이 영화에서 우주선이 더 빨리 날라댕겼으려면(그걸 큐브릭이 원했다면) 미국이 아폴로 17호까지 발사하고, 여기서 인간을 더 달에다 보내봤자 돈만 드럽게 들지 별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영화가 개봉을 못 했을 것이다.


핵심은 현재와 달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 당시엔 대놓고 대중영화였다는 것이다. 막 요즘처럼 인류의 역사가 어쩌니 니체가 어쩌니 하면서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물론 그런 게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물론 당시에도 '이게 대체 뭔 얘기냐'라는 반응이 있었다. 이에 대해 큐브릭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체험의 영화라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즐기듯이 봤으면 한다고 대답했다(책 <스탠리 큐브릭 - 장르의 재발견> 참조). 


물론 나는 60년대를 살지 않았기에 추론만 할 뿐이다. 

사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큐브릭의 필모그래피에서 튀는 영화다. 영화 자체도,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도. 다른 큐브릭의 영화는 직설적이다. 풍자든, 표현이든, 미장센이든, 음악이든. 메시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큐브릭이 최종편집 과정에서 사망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작품 중 가장 모호한 <아이즈 와이드 셧>도 이 영화보단 꽤나 전달하려는 내용이 분명하다. 비유하자면 그의 다른 작품들이 산문이었다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운문이 아닐까(<아이즈 와이드 셧>은 산문시 정도?).



늘 그렇듯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샜는데 그래서 누가 '이게 뭔 영화냐'고 물을 경우 내 답변은, 결국엔 돌고돌아 "네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가 된다. 그 초등학생의 아버지가 어떤 생각으로 저 대답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긴 프로세싱은 확실히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너무 보고 싶은데 주말에 혼자 영화 보러 가면 욕이란 욕은 다 먹을까 봐 일단 그냥 딸도 같이 데려온 걸지도. 그 경우 예상 대화는


"아빠랑 우주 나오는 영화 보러 갈까?"

"우와! 그럼 우리 <엔드게임> 보러 가?"

"응 비슷해~"

 가 될 것이다. 역시나 돌고 돌아 필연적으로 헛소리로 돌아왔다. 

P.S. 상영본은 4K 복원버전이었다. 보면서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요즘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됐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건 영상자료원에서 <사이코> 복원버전 상영 때였다. 명작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이다. 


참고로 그 초등학생 옆에 앉아있던 나는 그 전날 밤샘노동을 하고 와서 내가 영화를 봤는지, 아니면 내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꿈을 꾼 것인지도 헷갈리는 상태로 영화를 봤다... 사실 정말 잠이 안 올 때 일부러 엄청 지루한 영화를 틀어놓으면 보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자주 트는 영화가 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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