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트 오브 킬링>의 주인공 안와르 콩고(사진의 중간)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걸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도한 신문에선 안와르 콩고를 대학살의 '지도자'로 명명했다가 수정하는 작은 촌극을 벌였다. 기사에서 <액트 오브 킬링>을 언급해놓고 정작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이 쓴 모양이다.
나는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액트 오브 킬링>보다는 <침묵의 시선>이 훨씬 더 좋았다(물론 두 영화 모두 좋았지만). 두 영화에서 사용하는 교정장치의 차이만큼이나 두 영화의 표현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이 두 영화에서 사용하는 교정장치의 차이와 영화의 특성에 대해 비교하는 매우 긴 글을 2015년에 대충 적어둔 채로 냅뒀다. 언젠가 제대로 작성해 내놓을 날이 오겠지). <액트 오브 킬링>이 훨씬 더 직설적이고 선동적이다.
'선동'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으로만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선동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광고,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선동이 담겨있다. 뭐 '갓뚜기' 찬양글이니 뭐니 하는 게시물도 다 마찬가지다. 아, 물론 지금 내가 '일상의 모든 것이 선동이다'라고 말하는 이 글도 당연히 선동이다.
특히 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사람들이 마냥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역시 그 수백 수천 시간의 촬영분 중 일부를 감독의 의도에 맞게(즉, 의도적으로) 선정한 것일 뿐이다.사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오해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영화보다 훨씬 선동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액트 오브 킬링>으로 돌아와서, 영화에서 학살을 재연해가던 안와르 콩고는 마지막 즈음에 자신이 한 죄를 깨달은 듯 토악질을 해댄다. 이 마무리에 거부감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정작 토악질을 해야 할 사람은 가해자인 안와르 콩고가 아니라 그 안와르 콩고를 견뎌온 관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말로 그 인간이 촬영 마지막 즈음에 뭘 잘못 먹어서 체해 가지고 토악질한 걸 감독이 갖다 쓴 건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그가 그제서야 뉘우쳤다 해서 달라진 건 없다. 이건 나중에 뉘우치는 것이 의미없다는 말이 아니라 안와르 콩고가 그 이후 뭘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마무리는 오히려 내게 더 큰 불편함만을 안겼다.
안와르 콩고는 어쨌거나 죽었다. 달라진 건, 그리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죽을 때까지 편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까지는 다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잘 살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