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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Feb 07. 2018

한없이 위태롭고 불안하며 깨지기 쉬운 그것,바로 남성성

영화 <달콤한 인생> 리뷰

 암흑가에 몸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과묵하고 고독하고 잘생긴, 그리고 실력 하나는 최고인 남자, 그런 그가 어떤 일을 맡아 수행하는 도중 아름다운 여자를 만난다. 그전까지 완벽했던 그의 인생은 이 팜므파탈에 의해 흔들리고 결국 파멸하게 된다.
 이처럼 <달콤한 인생>은 느와르의 정석으로 세팅되어 있다. 완벽했던 남자의 비극적인 파멸. 사건에는 항상 팜므파탈이 존재한다. 스토리는 몰라도 스타일과 미장센은 항상 끝내줬던 김지운 감독은 느와르에 최적화된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느와르 중 하나로 보이고 스타일에 비해 스토리라인이 그렇게 탄탄하지 않게 보인다. 본인도 예전에는 그렇게 느끼곤 했다. 이병헌은 정말 멋있지만 내용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작년에 다시 영화를 보게 됐을 때 느낀 생각은, 이 이야기는 자존심(소위 말하는 ‘가오’)이 상한 남자들의 (찌질한) 분노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남성성, 남자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것. 특히 남자의 ‘가오’라는 것은 쓸데없이 중요해서 많은 남자들이 이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기 서로의 ‘가오’를 상하게 한다. ‘강사장(김영철)’은 자신의 치부(어린 애인이 있다는 것)를 드러내고 일을 맡긴 가장 믿는 부하가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생각에, ‘선우(이병헌)’는 목숨 바쳐 따르던 보스가 자신을 내치고 ‘문실장(김뢰하)’과 그의 부하들 앞에서 모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에, ‘백사장(황정민)’은 선우가 자신을 무시함에 ‘가오’가 상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이유를 묻지만 제대로 된 이유를 들을 수가 없다. 그나마 하는 변명들엔 그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보란다. ‘답정너’가 따로 없다. 정작 본인들도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내 ‘가오’가 상해서’라는 찌질한 진짜 이유를 차마 말할 수가 없기에 남자들은 죽어간다. 남성성의 발현, 수많은 테스토스테론과 헤모글로빈의 향연의 이유는 사실 별거 아니다. 오히려 ‘강사장’의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가 가장 정확한 이유처럼 들리기도 한다. ‘선우’가 탈출한 후 회의에서의 ‘강사장’의 일장연설은 김영철 옹의 연기력으로 포장되지만 결국 흔한 꼰대의 궤변일 뿐이다. 사실 극중 대사처럼 “이제 더 이상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 내 자존심을 건드린 놈들과 끝을 보는 수밖에.
또한 극 중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말을 돌리는 일이 있더라도 사과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사장’은 목숨을 위협받는 그 순간에서조차도 ‘선우’에게 왜 흔들렸는지를 물어본다. “잘.못.했.음.”이 네 글자를 내뱉지 못한 남자들은 싸늘히 죽어간다.(영화에선 ‘네 마디’라고 나오는데 이건 정말 옥에 티...)


 극중 ‘선우’를 파멸한 표면적인 이유는 ‘민아(신민아)’다. 자신이 따르던 보스의 여자를 탐하고, 결국 그를 죽이게 되는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선우’가 ‘민아’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리 사랑으로 보이지 않고, 잘해봤자 한때의 흔들림처럼 보인다.(물론 김지운 감독의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소외되고 주변 인물화되는 건 꽤나 고질적 문제다.) ‘선우’가 탈출한 이후로 ‘민아’를 다시 만나는 내용도 없다. ‘강사장’을 죽이러 가기 전 ‘민아’에게 마음에 든다고 했었던 스탠드등을 선물한 것이 ‘선우’의 순수한 사랑 표현인가?
 영화 초반 초코무스 케익을 깔끔하게 먹는 모습부터, 영업장의 문제를 해결한 후 커피를 마시며 창가에 미친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던 모습, 양아치들을 제압하기 바로 직전에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모습들에서 ‘선우’의 완벽주의와 나르시시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한순간에 박살이 나고 ‘선우’는 분노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오랫동안 따르던 ‘강사장’을 차마 죽이지 못하던 ‘선우’는 망설이다가 문득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영화 초반의 창가에 비쳐본 자신의 완벽했던 모습과 완전히 대비된 망가진 모습, 그걸 본 ‘선우’는 무심히 ‘강사장’을 쏘며 말한다. “그렇다고 돌이킬 순 없잖아요.” 어떤 것도 돌이킬 수가 없다. 상해버린 ‘가오’도, 완벽했던 내 모습도. 킹콩의 대사가 생각난다. “(킹콩을)비행기가 죽인 것이 아니라, 미녀가 죽인 것이다”. 선우를 죽인 것은 미녀가 아니라, 바로 그의 나르시시즘이다. 영화가 완벽했던 그 시절(오프닝)의 ‘선우’가 창가의 자신을 감상하며 쉐도우 복싱을 하는 모습으로 끝이 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P.S. : 물론 ‘선우’가 죽은 가장 대표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는 ‘민아’가 맞습니다. 이 글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라 생각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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