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리뷰
<블레이드 러너 2049>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드니 빌뇌브의 영화에서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영화가 별로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드보일드·느와르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의 건조하고 차가운 연출은 지극히 내 취향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로 봤을 때, 그의 영화들은 감성적이려고 노력하는 싸이코패스 같은 느낌이다. 기계적이고 딱딱한 연출에서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부속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가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기계화 사회에 그만큼 어울리는 조각이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한 편의 영상시다. 최근 블록버스터들, 특히 히어로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빠르고 화려한 연출과 곳곳에서 터지는 유머들과는 거리를 둔 채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영화 고유의 리듬으로 나아가며 모호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여기에 한스 짐머의 음악과 로저 디킨스의 기가 막힌 카메라가 어우러져서 네오 느와르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혹자는 이 영화가 전편에서 던졌던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더 확장시켰다고 칭찬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작이 디스토피아 SF의 시초격이고 후대에 워낙 영향을 많이 끼쳤기 때문에 그 이후로 이와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의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그로 인해서 이 영화가 다른 작품에 비해 그리 돋보이는 성찰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느껴진다.
리플리컨트, ‘껍데기’인 K는 도주 중인 리플리컨트를 추적하다 리플리컨트가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조사하던 중에 자기가 바로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심어진 줄만 알았던 말조각상에 대한 유년기 기억이 사실임을 알게 되면서 그는 그것을 확신하게 된다.
일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삶을 사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은 홀로그램인 ‘조이’이다. 그녀는 맹목적으로 K를 사랑하고 지지해주고 마음의 안식을 주는 존재다.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빛을 받으면 빛이 투과되어 흐릿해지는 홀로그램에 불과하고, 인간의 몸과 육체적 교감을 갈구한다. K가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자 ‘조이’는 그가 원래부터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하며, 기계적인 이름이 아닌 ‘조’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하지만 데커드를 만나고 리플리컨트 반군을 만나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인 줄 알았던 그의 믿음은 산산조각난다. 진짜인 줄만 알았던 그의 기억은 주입된 기억이 맞고, 그는 그 아이를 찾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했던 ‘조이’마저 구매자를 사랑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프로그램된 존재라는 것, 자신의 이름 ‘조’는 모든 ‘조이’들이 상대방에게 부치는 명칭이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게 된다. ‘조이’가 담긴 기계를 부수면서 ‘러브’가 하는 말 “저희 회사의 제품에 만족하셨길 바랍니다.”에 담긴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리플리컨트인 ‘K’가 자기 자신, 인간성을 찾아가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리플리컨트 반란군이 잡혀간 ‘데커드’를 죽여라는 명령을 할 때, 그는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것이 인간적인 것인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리플리컨트 반란군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데커드’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목적대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님을, ‘인간다움’을 위해서 ‘데커드’를 살리는 선택을 하고, 그를 딸과 만나게 하면서 눈속에서 죽는다. 길고 길었던 영화는 1편의 결말에 대한 오마주와 1편의 데칼코마니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세계관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전작에서 ‘데커드’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 ‘로이’의 시선으로 만든 영화로 보인다. ‘로이’와 ‘K’는 그가 목표했던 희망이 무너진 후 다른 리플리컨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인간성에 대해 성찰한다. 그리고 ‘데커드’를 살리는 다른 길을 택하며 자신의 인간성(영혼)을 다른 의미로 증명해내며 죽는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영화상의 큰 배경, 사건들을 제시해놓고 결국에는 주인공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점에서 전작 <어라이벌>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쉬운 점도 많다. 우선 느린 전개와 제시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결국 개인의 이야기로 치환되면서 다른 것들은 다 배경처럼 소모되어 버린다. 이렇게 러닝타임이 길 필요가 있었냐는 의문이 든다. 전편의 물음을 넓히거나 심화시키기보다 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에 그치는데 비해 광대한 세계관이 그저 소모된 느낌이다. 또한 ‘조이’와의 관계는 <그녀>에서도 비슷하게 다뤄진 적이 있고, 이런 디스토피아 SF 영화들이 이미 그동안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영화적 세계관이 그리 특별하거나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월러스’나 ‘데커드’의 이야기들에 비약과 생략이 많고, 갑작스런 반란군의 등장은 뜬금없고 불필요하기도 하다. 이 영화도 결국 극 중 리플리컨트들을 조롱하는 명칭처럼 ‘껍데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내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드니 빌뇌브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린(지나치게 느리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호흡으로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와 주인공 K의 느와르는 거부할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이다. 드니 빌뇌브의 새로운 필모그래피가 여전히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