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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5. 2022

빨간 너, 궁금해 honey

#07 내가 아파 누워 있을 때

나는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절연을 하고 싶지만, 이 관계라는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의사로 등을 돌리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굳이 정정하자면 한쪽의 일방적인 의사가 아니라 나의 일방적인 의사로 절연이 힘든 것이다. 요원하지만 때가 되면 상대방이 절연을 선언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 이전에 상대가 수틀려서 일찍이 내게 끝을 선고해버리면 좀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한다. 미우나 고우나 나는 우리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갑을관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서로를 친구라 칭하기는 힘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가 월례 행사로 마주 봐야 하는 것은 사실인데 말이다.

매번 빨간 옷을 입고 오는 친구는 고통이라는 선물을 들고 와 날 진저리치게 만든다. 하얀 옷을 입고 오면 보기 좋을 텐데 역시나 하는 짓도 마음에 안 든다. 아무도 원치 않는 선물을 꾸역꾸역 들고 와서 품에 안겨주니 반기려야 반길 수가 없다. 난 뼈아픈 통증을 감내해서 성불하는 종교인도 아닌데 날 고난에서 인내하게 만든다.

심지어 재수 없으면 월초와 월말에 한 번씩 그 친구를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달에 두 번 얼굴 보는 셈인데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얼굴 붉히며 마주 봐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내 몸속 어느 한 장기를 단순히 아기집이라 이름 붙인다면 ‘비출산’에게 이 빨간 친구는 전혀 반갑지 않은 존재다.




내 첫 생리일은 6학년 말이었다.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주변 친구들은 일찍이 5학년에 들어서고 생리를 시작해서인지 주위에서는 내가 늦은 편에 속했다. 남들 다하는 생리를 나도 한다는 게 뭔가 신이 나기도 하고 그땐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내 몸의 변화가 마냥 반갑기만 했다. 하지만 들뜬 순간도 잠시였다. 가뜩이나 칠칠찮은 성격에 생리까지 시작했으니 나는 그 기간에는 언제나 하의에 피가 묻지 않게 할 걱정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내 노력은 나의 타고난 덤벙대는 기질에게 언제나 배신당했는데 회색 교복 치마에 빨갛게 묻은 피를 같은 반 남학생의 체육복으로 수습한 적도 있었다. 남자들에게 숨겨야 할 어둠 같은 존재로 배워 온 생리는, 절대 큰 소리로 떠들어선 안 되는 실체로 가르침을 당했다. 나는 그런 생리 때문에 남학생에게 체육복을 빌린 거니 당연히 담임선생님께 등짝을 맞고도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가출하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생리를 시작한 그간 이십여 년의 이력으로 생리통을 익숙하게 참고 뒤처리에 능숙한 어른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서른이 넘었지만 지금도 화장실에서 날 열받게 하는 친구를 불시에 마주한다. 이러다 마흔이 넘어서도 속옷에 피를 묻히고 다닐까 봐 걱정이다.



요즘에야 배란일과 생리일을 계산해주는 앱이 생겨서 생리 예정일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생리 예정일은 대략 감으로 때려 맞춰야 하는, 그것도 필요와 불요 사이를 널뛰는 예정표였다. 음, 지금 몸이 이러니 이 주 정도 뒤에 생리를 시작하겠군, 그러면 어김없이 이 주가 지나고 생리를 시작했다. 친구 중에는 배란통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심했냐면 이번 달에는 어느 쪽 나팔관이 일하고 있는지 느껴진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뭐 진실은 그 친구만 알 것이다.

날짜 계산 앱에서는 오늘 생리가 터진다고 말해주는데 사 일이 지나고 오 일이 지나도 기미가 안 보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꼴도 보기 싫은 생리지만 막상 얼굴을 봐야 속이 편한 건 사실이다.



중요한 날에 외출복 코디를 미리 해놨는데 생리가 터져서 곤란할 때도 많다.

하의를 흰 바지나 흰 치마로 코디해놓으면 그날은 마음속으로 길길이 날뛰어야 한다. 이쁘게 코디해놓고 못 입는 그 심정이란…… 차선책으로 다른 옷을 입고 나가도 묘하게 외출복이 마음에 안 들어서 느끼는 찝찝함을 견뎌내야 한다.

외출은 하루라고 치지만 여행 갈 때 생리일이 겹치면 내 자궁을 증오하게 된다. 어차피 출산과 나는 서로 관계가 없을 텐데, 무요한 자궁을 멀리멀리 내던지고 싶어진다. 내 완벽한 여행 계획을 생리 때문에 망치게 되다니 복수는 누구에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이 정도는 개인 일정이라 다행인 수준이다.



제일 난감할 때는 생리통과 업무의 겹침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 주요 프로젝트가 있는데 생리통이 심하면 늘 차에 치이는 상상을 한다. 정말 끔찍하다 못해 눈앞이 막막해진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는 편이 나을 지경이다. 나는 생리가 터진 후 보통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생리통이 제일 심한 편이다. 이때엔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거의 책상에 기대서 업무를 보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호르몬의 농간으로 세상이 잿빛처럼 뿌옇게 변하니 평소에도 썩어 보이는 회사가 더욱더 후져 보인다. 우울이라는 상의를 입고 생리통이라는 하의를 입고 무력감이라는 신발을 신고 출근해서 시간을 확인하면 시곗바늘은 늘 오전 9시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입원했어야 하는데……

어릴 땐 이 정도까지 아니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내 몸뚱이는 고통을 견뎌내는 척도가 약해질까. 이제 이 정도 살았으면 어떠한 시련에도 무뎌지는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생리통 하나도 이겨내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나 보다.

약으로도 못 버티는 날에는 회사 휴게실에 누워 있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보건휴가를 주는 사기업은 잘 없을뿐더러 있어도 눈치 보여서 쓰지 못한다. 특히 회사 내에 아무 입김 따위 없는 내가 생리통으로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면 절대 안 된다. 차라리 생리통 심한 이틀 정도는 죽어도 회사에서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버텨야 한다. 반차도 못 내고 휴게실에 최장 삼십 분 정도 아파 누워 있을 때면 가끔 처지가 슬퍼진다. 하필 회사 천장 색이 빛바랜 회색이라서 내 마음도 납빛의 회색으로 떠버린다. 전생에 죄가 커서 이런 것일까. 아픈 배를 붙잡고 멍하니 누워있는 내 인생이 한편의 희극 같다. 그래, 대부분 여자가 겪는 과정이니까 나도 인내해야 한다.

허리는 트럭에 짓밟히는 기분이고 자궁은 부풀 대로 부풀어 내 안의 모든 장기를 아래로 밀어내는 기분이다. 아랫배도 더부룩해져서 몸도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기분 또한 내 기분이 아니다. 배란기 때도 우울하고 막상 생리를 시작해도 우울하고 한 달에 이 주는 호르몬에 끌려다니며 우울을 견뎌내야 한다. 한 달의 절반은 내 것이 아니라니…… 이 시간은 내가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젊음의 낭패일 뿐이다.

생리와 함께 찾아오는 호르몬 변화를 겪어도 겉으로는 밝은 척을 해야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중에 중년으로 접어들어 생리와 이별해도 호르몬 때문에 추위와 더위 사이에서 오락가락해야 하고, 우울과 조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건 매한가지라 한다. 이 효율 떨어지는 공장을 50년 넘게 더 가동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이 정도면 첫 생리 시작한 직후 들떴던 기분이 다 허상인 것 같다. 좋은 아버지는 딸이 첫 생리를 시작하면 꽃과 케이크를 사다 주면서 축하해준다고 한다. 꽃이고 케이크 나발이고 나는 받지 못했지만 무얼 축하한다는 걸까. 인내의 늪으로 빠진 걸 축하하나? 공장 매입 실패를 응원하기 위해 꽃다발을 안겨주는 건가?




회사에서 옆 팀 대리가 생리통으로 보건휴가를 썼다.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휴가란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가 되지 못하기에, 대리의 휴가 사유는 곧 우리 팀까지 들려왔다.

“옆 팀에 김 대리님, 생리통 심한가 봐. 출근 못 한다고 부장님한테 연락했대.”

점심 먹으면서 동기에게 자세한 내막을 듣게 된 나는 자연스레 동정과 이해를 앞세웠다. 생리통은 진짜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시뻘건 악마다.

우리끼리 아이고, 어떡하냐, 같은 말을 내뱉고 있으니 옆자리에 앉은 남자 과장이 쩝쩝대며 대뜸 껴들었다.

“그 팀은 일정에 문제없대? 출근 못 하는 걸 그렇게 당일에 부장님한테 연락으로 퉁 쳐버린대? 내가 봤을 땐 좀 아닌 것 같은데.”

입에 있는 내용물이나 다 씹고 말 걸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본인 팀도 아닌데 옆 팀 일정을 자기가 왜 걱정하는지 웃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픈 걸 당일에 말하지 지는 몇 주 전부터 병가 낸다고 예고하나 싶다. 자기가 아닌 거 같으면 뭐 어쩔 건데? 대리님이 내일 출근해서 병가처리는 알아서 하겠지, 아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해보니 과장은 예전부터 저래왔다. 생리통으로 오후에 조퇴하게 된 동기에게 조퇴 사유를 꼬박꼬박 캐묻더니 기어코 동기 없는 시간에 뒷담화를 시작했다.

“아니, 웃기지 않아? 아침에는 멀쩡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생리통이 심해져서 조퇴한다고?”

웃긴 건 아주 자기만 웃기지 입꼬리가 한치의 미동도 없는 여자 동료들을 봐줬으면 좋겠다. 남의 조퇴 사유를 저렇게 큰 소리로 떠벌리는 것도 별로고 생리통을 통痛으로 치지 않는 저 무식과 무감각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쟤는 맹장이 터지든 하다못해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든, 못해도 이 주일 전에는 몸에서 고통의 예고를 보냈으면 좋겠다.



"과장 말이야. 자식이 아픈 거 알았어?"

책상 앞에서 졸기 딱 좋은 오후 3시. 커피 수혈을 위해 옹기종기 모인 탕비실에서 잠이 깰 소식이 들려왔다.

"헐, 정말? 누가 그래?"

"부장이 그러던데? 평생 병원에 다녀야 하는 병인가 봐. 하여튼 다들 왜 이렇게 입이 싼지."

순식간에 침묵이 탕비실을 감쌌다. 병이라는 단어는 늘 공기를 무겁게 만든다.

"그런데 과장은 본인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서 왜 이렇게 병가에 인색한데?"

과장이 살짝 안쓰러워질 찰나에 누군가가 면죄부를 주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동정심도 알맞은 사람에게 향해야 한다. 그간 행실을 보면 과장은 회사에서 야박한 가해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여직원들이 예민하면 그 날이냐는 농담을 서슴없이 건네왔으면서 막상 그날에 병가를 내면 본인이 길길이 날뛰었다. 과장에게 향할 혐오라는 감정 외에는 모든 게 전부 다 사치다.

"앞으로 돈이 꽤 깨지겠네. 이래서 건강한 자식 낳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나 봐."

컵이 비워지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잠이 달아난 건 이미 오래전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일하는 중간중간 과장을 훔쳐봤다. 아이를 가졌을 때 과장은 행복했을까.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예상했을까. 본인 자식이 공부를 잘하거나 하다못해 외모가 뛰어날 거라고 희망에 부푼 상상을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과장은 그저 평범한 가족의 모양새를 그려왔을까. 과장을 연민하고 싶진 않다. 과장은 어쩌면 본인 어깨에 큰 짐을 오래도록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자식은 어려운 존재다. 낳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자식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극성맞은 존재인지 톡톡히 느끼고 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효도를 다짐하다가도 짜증 내기 만만한 존재는 부모밖에 없다. 너 같은 딸을 낳아보라는 말에는 늘 애 안 낳을 거라는 반항적인 태도만 보였다. 그건 나의 올곧은 신념이다. 매국이라 손가락질받아도 나는 변절한 생각일랑 전혀 없다.

삶을 마무리하며 나의 지나온 시간을 복기한다면 멋진 인생이었다는 말이 쉽게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은 과대 포장된 선물 같아서 슬픔이라는 껍질을 까고 또 까서야 마주할 수 있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우울감 가득한 세상에서 한 줄기의 색채를 선물하자고 자식을 풍랑이 거센 바다에 내몰고 싶지 않다. 우울한 세계를 물려받는 건 이 선에서 그쳐야 한다. 그러니 더더욱 이 빨간 친구는 내게 불필요한 존재다. 나는 오직 다음 달에 다시 다가올 생리통만이 무서울 뿐이다. 이 친구야, 번지수 잘못 찾았어.

이렇게 뜻이 통하지 않는 친구와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한다. 우리 둘은 세 발 달리기하며 달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결승전에 도달하기 한참 전에 엎어진 꼴찌다.




생리통은 타인에게 동정받지도 못하는 아픔이다. 아프다고 하면 내게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더라도 그 이유가 생리통이라 하면 얼굴빛에서 막연하게 흐르는 한심함을 나는 읽을 수 있다.

간혹 생리통이 심하면 운동하라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를 제일 화나게 만드는 헛소리다. 운동이 내 생리통을 치유해줬다면 멍하니 침대에 누워 약을 먹고 주말을 허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빨간 날이 나를 찾아올 때면 가끔 꼴 보기 싫은 과장에게 이 빨간 고통을 넘겨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딱 봐도 아파 보이는 사람한테 지 심부름이나 시키고 앉아있고 저 새끼도 이 아픔을 겪어 봐야 할 텐데…… 툭 튀어나온 배에 휑하게 빈 머리를 가지고 있는 땅딸막한 과장이 허리와 배를 붙잡고 끙끙거릴 생각 하니까 징그러우면서도 통쾌하다.

나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내달을 위해 조용히 읊조린다.

다음 달에는 순탄한 빨간 날이 되길. 이 아픔을 내가 저주해마지않는 사람도 겪게 하길.






Photo by Volodymyr Hryshchenk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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