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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13. 2022

술과 담배

#11 반쪼가리 어른

어느 순간 공중파 TV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퇴출당했다. 식당뿐 아니라 공공건물 안에서의 흡연은 금지당했고 담뱃갑의 경고 문구와 사진은 혐오감을 조장해서 금연효과를 불러일으키게 제작됐다. 그래봤자 징그러운 사진들은 흡연자에게 하나의 담뱃갑 디자인일 뿐인데 지나가는 비흡연자의 눈만 고통당하고 있다. 비위가 약한 나는 흡연자인 지인이 담배를 꺼낼 때마다 담뱃갑을 쳐다보지 않으려 흐린 눈을 장착하곤 한다. 제발 식당에서는 담배를 식탁 위에 꺼내지 말아줘, 입맛 떨어지니까. 내 부탁이 아련하게 공기 중으로 흩날리는 순간이다.

미디어에서 흡연 장면을 금하면서 담배는 우리 인식에 백해무익으로 자리 잡았는데, 생각해보면 술은 버젓이 우리 집 브라운관에 송출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드라마나 예능이나 술을 마시는 장면을 정말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정말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처음 술을 입에 댔을 때는 대충 어림잡아 내가 8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영구치가 다 나기 전, 술을 목구멍에 들이부었단 뜻이다.

그렇다고 세상으로부터의 불합리와 불공평을 일찍이 경험해 탈선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술을 내 의지로 마신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술을 입에 댔던 순간을 회상하는 중이니까.

때는 겨울로, 대략 그쯤에 우리 식구들에게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발생했다. 동생이 태어났고 집도 이사하고, 부모님은 꽤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그 와중에 집들이까지 계획한 아빠의 체력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아빠는 아마 안팎으로 몸과 마음이 추워서 사람의 위로와 온기가 그리웠던 게 분명하다.

집들이 음식의 메인은 회였고 회를 못 먹는 나를 위해 약간의 족발과 보쌈도 준비됐다. 상 위에는 음식과 술, 그리고 엄마와 나를 위한 음료수도 자리 잡고 있었다. 동물을 절절히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는 회 떠온 아빠한테 화를 내며 울음을 터트린 걸로 기억한다. 회나 족발이나 다 같은 고기 종류인데 애꿎은 아빠한테만 화풀이를 했다. 지금도 의지력의 벽이 태산같이 높게 느껴져, 채식 위주의 식단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아무튼 집들이는 시작됐고 어른들은 갓 태어난 내 동생과 이사한 집을 보며 대화의 주제를 꺼냈다. 밥상 위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는 무지 지루했으며, 족발과 보쌈도 몇 점 입에 넣으니 곧 먹기 싫어졌다. 엄마는 분주히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일을 했다. 나는 조용히 취침하고 싶어하는 얼굴로 아빠 옆에 멍하니 앉아 집들이가 끝나기를 간절히 속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새벽녘까지 이어진 집들이는 주말을 맞이한 어른들의 개인 일정으로 인해 드디어 파해 졌다. 고요가 찾아온 우리 집은 곧 정적으로 도배됐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동생 옆에서 잠을 청한 나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잠을 꽤 설쳐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어른들의 작별 인사와 현관문의 잡음 같은 덜컹 소리로 선잠에서 깨버렸는데, 깬 김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밥상은 먹다 남은 술과 음식으로 너저분해졌으며 아빠와 엄마는 거실과 부엌에서 뒷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는 싱크대 앞에 서서 나에게 등 돌린 상태였고, 아빠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의 잔해를 닦느라 허리를 굽힌 상태였기에 둘 다 나를 챙길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른들의 삶이란, 이렇듯 피곤해도 쌓인 일을 미루지 못하나 보다.

나는 화장실을 가기 전에 뻑뻑한 목을 축이려 상 위에 남아있던 물컵을 집어 들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물은 냉수라 겨울 새벽에 갓 눈뜬 상태로 마시기에는 속이 추울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 집 물은 꽤 맛있었다. 지금이야 생수를 사 먹는다지만 그때는 물을 집에서 직접 끓여서 다 마신 음료수병에 넣어 보관했는데 주전자로 팔팔 끓였던 물은 보리차였다.

고로 당연히 물컵에 들어있는 액체가 보리차인 줄 알고 원샷을 때려버렸다. 그때 나는 보리차와 맥주를 구분하는 기막힌 어린이가 되지 못했다.

색은 보리차였지만 물맛이 특이했다.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뇌가 보내는 경고가 내 목을 따라잡기에는 늦었다. 목구멍은 이미 활짝 열려서 누런색의 액체를 몸 가득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추운 겨울이지만 순간적으로 속에서 느글거리는 불꽃이 올라왔다.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원래의 계획대로 나는 화장실로 직진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물속으로 잠수해버렸다.

다행히 변기통 안에는 누군가의 흔적이 없었다. 그때 우리 집에 방문했던 어른들은 술을 과하게 먹고도 자기 뒤처리는 깔끔하게 했던 찐 어른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변기통에 상체의 절반을 담근 채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미끄러진 다리는 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달려와서 곧 나를 집어 올렸다. 엄마에게 상 위에 이상한 물을 마셨다고 실토했고 내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내가 아니라 아빠를 혼냈다. 남은 술은 미리 치웠어야지, 라는 엄마의 비난 어린 어투에 아빠는 아무 소리도 내뱉지 않았다. 그 새벽에 나는 거실을 치우기도 힘든 엄마에게 목욕이라는 서프라이즈 선물도 선사해준 셈이다.

그렇게 처음 접한 술은 육체에 영광스러운 상처를 남겼다. 맛은 고사하고 변기에 엎어지면서 팔 한쪽이 긁힌 것이다. 참 짜릿한 첫 만남이다.

우리의 서두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였는지 나는 술이 맞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얼굴이 소주처럼 투명해지지도, 맥주처럼 누레지지도 않고 길 위의 경고표지판처럼 한순간 새빨개졌다. 아마 인생이란 길이, 또는 미래가 내게 색다른 암시를 보내는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어릴 때 그 순간처럼 내 앞에 변기가 있어도, 그곳이 어딘들 다이빙을 해버리고 싶어졌다. 머리가 무거워져 그냥 바닥으로 가라앉고 싶어지지만 그럴 때마다 난 우리 집을 방문했던 그때의 어른들을 생각한다.

당시 집들이에서 봤던 사람들은 술도 맛있게 마셨고 심지어 우리 집 화장실도 깨끗이 썼다. 그 대인들을 생각해보면 왜 지금은 술집 화장실에 그렇게 뒤처리 안 하고 나오는 인사불성의 ‘무늬만 어른들’이 많은지 불만이 쌓인다. 우리 집에 방문한 옛날의 그 어른들은 나와 대작하지 않고도 나에게 술을 가르쳐 준 술 스승님이 아닐 수 없다.




술도 못하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 담배 피우면서 풀어?

지인의 물음에 나도 새삼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 궁금해졌다. 단순히 먹고 자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모자라다. 고백해보자면, 나도 담배란 걸 펴본 경험이 있다.

나의 첫 담배 경험은 부도덕하지만, 교복을 입은 새파란 나이 때 시작됐다. 무려 고등학교 교복이 아니라 중학교 교복이다. 이번에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세상의 불합리와 불공평을 일찍이 경험해 담배를 배운 것은 아니다. 저 때의 첫 경험이 나의 마지막 담배 경험이었고 그 후로는 연초 냄새만 맡아도 속으로 헛구역질을 해댄다. 그래도 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담배를 피워 본 것은 오롯이 호기심으로 시작한 내 의지였다. 그 나이 철없을 땐 학생들이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자신의 점수가 되었고, 또래 내에서 인기를 과시하는 증명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명이 아는 오빠에게서 담배와 라이터를 얻어왔다고 자랑했던 게 일의 시초였다. 친구 손에 있던 빨간색 담배 한 갑의 브랜드는 그 당시 본새 끝판왕으로 이름 날리던 담배였는데, 그때쯤 우리 또래를 강타했던 모든 인터넷 로맨스 소설에서 단골 소재로 빠지지 않는 담배였다. 우리는 그 멋있어 보이는 이름 하나에 혹할 정도로 어리석었고 단순했다.

순진한 무리는 하교를 하고 조용히 후미진 골목길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우리 중에 아무도 흡연자가 없으니 담배의 어느 방향을 입에 물어야 하는지부터 난관이었다. 서로 이쪽저쪽 담배를 돌려보다가 제일 논리정연했던 친구가 논리정연한 답을 내놓았다.

“영화 보면, 담배의 이 하얀 방향에 매번 연예인들 빨간 립스틱이 묻던데, 여기를 입에 물어야 할 것 같아.”

역시 성적 상위권은 생각도 남달랐다.

우리는 무슨 결사단 마냥 다 같이 입에 담배를 물고 하나둘셋 보내는 신호에 맞춰 함께 필터를 빨아들이기로 했다. 어디서 듣기론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필터를 빨아들여야 담배가 안 꺼진다고 해서, 우리는 결사단 같은 우리 의식을 위해 동네 슈퍼에서 성냥까지 구매도 했다. 우리의 담뱃불을 붙일 라이터는 하나라서 어쩔 수 없이 용돈 낭비 같은 지출을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모두 한 손에 불붙인 성냥을 들고 하나, 둘, 셋, 쓰읍, 하아.


지독한 모든 연기는 눈과 코를 맵게 한다. 하지만 담배의 자욱한 연기만은 무수한 환상의 향연이라고들 말한다. 그래, 향연香煙. 향기로운 담배는 막힌 머리를 뚫어주며 솔바람의 시원함을 눈과 코에 인식시켜 준다더라.

내가 보고 읽고 느끼며 배웠던 그 묘사들은 다 거짓말이었다. 맛있다고 하는 말도 거짓이었다. 불길에 타다 남은 재를 코와 목으로 들이부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도 너무 어지러웠고 구린 냄새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휘감은 느낌이 들었다. 헛기침은 당연히 동반됐다. 학교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양아치 선배들의 정신력이 새롭게 돋보이는 순간이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콜록거리며 한번 빤 장초를 죄다 바닥에 버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담배를 우리에게 가져온 친구는 콜록거리면서도 한 개비의 절반까지 피우는 용기를 보여줬다. 우리는 그 친구에게 오, 오! 거리며 동경 어린 감탄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몇 걸음 걷지 못해서 바닥에 토를 했다. 

그 빨간 담배의 타르와 니코틴 함량은 타 담배의 성분보다 현저히 높았고, 그걸 비흡연자가 첫 흡연의 시작으로, 그것도 미성년자인 나이로 입에 물었으니 몸에 무리가 갔던 건 당연했다. 담배도 독했고, 그때 친구의 정신머리도 다른 의미로 독했던 듯싶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엄마에게 걸릴 게 뻔해서 우리는 하릴없이 동네를 배회했다. 약간의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곧 폐암에 걸릴 거라는 이유 모를 두려움이 나를 덮쳐 와 나는 어느 방향에 앉아 있는지 모를 신에게 맹세했다. 이 어질거리는 기분을 위해 내 폐를 맞바꾼다고? 앞으로 담배는 내 인생에 절대 없을 기호식품이다.




성인에 들어서고 크고 작은 술자리를 갖는데 참 고역일 수가 없다. 친구들은 소맥파라서 술을 마시게 되면 상 위에는 무조건 맥주와 소주가 같이 올라왔는데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술은 맥주 한 잔밖에 없다.

마셔봐야 기껏 맥주 한 컵인 나는, 술고래 친구들이 나눠마시는 맥주 15병, 소주 10병의 값을 나눠 내야 했고 그들의 높아진 텐션을 멀쩡한 정신으로 쫓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약속을 거절할수록 친구들이 내는 화의 크기가 비대해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하는 술자리도 많아졌다.

과일 맛이 나는 소주가 나왔다고 했을 때는 드디어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한 술인 줄 알았다. 드디어 나도 소주잔을 기울이며 친구들과 술상 앞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줄 알았는데 웬걸, 입에 털어 넣자마자 그냥 공업용 알코올에 과일 향만 첨가한 맛이 났다.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희롱이었다.

친구들은 간혹 ‘꿀주’라는 극악의 비율인 소맥도 말아 마셨는데 저런 걸 발명하는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질 정도의 맛이다. 맥주잔에 소주를 삼 분의 이 수준으로 따라놓고 맥주는 소주의 색만 바꿀 정도로 살짝 잔에 걸쳐버리는 게 자기 고문 아닌가 싶다. 가끔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자학을 위해 내일의 간을 희생시키는 것 같다.

주종이라는 단어를 말하기에는 심히 민망하지만 어쨌든 밖에서 마시는 내 주종은 맥주다. 하지만 집에서 가족끼리 술을 마시게 되면 진짜로 내가 손댈 수 있는 술은 없다. 우리 집 주종은 복분자다. 보랏빛의 탐스러운 열매가 아닌 단 향의 질식해버릴 것 같은 복분자주는 내게 고통스러운 두통을 숙취라는 이름으로 선사해줬다. 이제 나는 복분자 열매를 봐도 맨정신에 어질어질한 두통이 몰려온다.



술집에서 지인들이 다 같이 담배 타임을 가지러 나갈 때면, 멀뚱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내 처지가 웃기다. 혼자 테이블 위 안주를 집어 먹기도 민망스럽고, 그렇다고 자작자음하기에는 혼자서 오늘의 주량을 다 채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면접 볼 때도 주량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참 난감하다. 어떤 대답을 해도 나에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자면 우선 회식 자리가 많은 회사일수록 저런 질문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내 주량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자니 날 선호하지 않을 것 같고 취업을 위해서 잘 마신다고 하면 곧 회식 자리에서 내 거짓이 들통날 것 같고.

그럴 때마다 내놓은 답은 대충 술자리 분위기를 맞출 만큼은 합니다, 인데 사실 이것도 뻔한 거짓말이다. 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 난 한 번도 분위기를 맞춰본 적이 없다. 면접관은 나의 저런 대답에 내 주량을 곧이곧대로 오판해버린다. 회식 때 기대 하겠어, 라는 면접관의 농담은 웃기지도 않는 공포일 뿐이다.


 

첫 회사에서 총무팀 부장은 본인과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직원들을 참 예뻐했다. 그 흡연자 무리는 주차장에서 은밀한 시간을 가졌는데 그들의 하루 흡연 시간만 계산해도 쉬는 시간은 한 시간이 넘어갔다. 여기가 학교의 쉬는 시간도 아니고 무슨 50분 일하면 10분씩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지 모르겠다. 나도 50분에 한 번씩 사탕 먹으러 나가고 싶다. 미친 척하고 저지르고 싶지만 내 모가지는 언제나 간당간당 흔들린다. 작지만 소중한 내 월급을 위해 객기는 넣어두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15개의 연차와 저들의 연차 개수는 동등하지만 절대 평등한 것이 아니다.



주위에서는 항상 의문인지 빈정인지 구분되지 않는 질문을 표한다.

이안 씨는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세상의 쓴맛을 못 봤나 봐, 아직 어른이 아니네. 사는 게 스트레스 없지?

나라고 세상이 쉽고 재밌을까. 나야말로 세상이 어렵고 무섭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술과 담배를 경험했지만 그들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나는 늘 어른 자격이 미달이다. 어른이 아니라는 비방은, 사실 반박하기 힘들다. 나는 존경받지도 못하고 책임지기도 힘들며 삶의 지혜 따위는 눈곱만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감히 술과 담배로 날 판단한다면 할 말은 있다.

나도 직장인의 필수 영양 요소인 커피는 곧잘 마신다. 무려 에스프레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거야말로 아이들 음료지, 나는 그런 시시한 커피 따위 마시지 않는다. 그들이 뜨거운 에스프레소 샷을 음미하는 나를 봐야지만 그제야 어른으로 증명해주나 싶다.

쓴 커피를 마시니 온전한 어른은 아니더라도 반 쪼가리 어른으로 쳐주라. 나도 내면이 단단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Photo by Natalie Parh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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