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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11. 2022

네 인생은 다망하고, 내 인생은 다 망하고

#10 비교하는 나날

보이스피싱이다 뭐다 하도 흉흉한 세상이라서 개인정보가 빠져나가는 사안이 발생하게 되면 엄청 민감하게 반응해도, 예외로 둔감하게 넘길 때가 있다.

여타 주변에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 친구들 사이에서 소소히 유행하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 우리끼리는 게임을 하며 서로 등급 올리기에 혈안이 됐고 단체 채팅방은 한동안 그 주제로 아주 시끌벅적했다. 나도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오랜만에 대면으로 친구를 만난 약속에서였다. 친구는 직접 자기 핸드폰까지 내 손에 쥐여주며 내가 그 게임을 하지 않을 시 집에 보내주지 않을 무서운 기세로 나를 압박했다. 게임 홍보에 하도 열을 올리기에 친구가 게임 회사로 이직한 줄 알았다. 막상 직접 해보니 친구 말마따나 정말 재미있었다. 게임상에서는 내 현생과 달리 돈이 빨리 모여 집도 금방 지을 수 있었고 캐릭터 커스텀도 원하는 대로 쑥쑥 꾸밀 수 있었다. 진짜 인생이 게임처럼 플레이되면 아주 재미있을 텐데 그러질 못하니 작은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꾸리는데 가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친구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 우리가 헤어질 때는 내가 잠깐이나마 키운 친구의 캐릭터하고 작별해야 한다. 나만의 캐릭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게임 앱을 내 핸드폰에 깔아야 했다. 모바일 게임 앱이라 아무 생각 없었는데 중국에서 만든 것인지 앱을 깔 때마다 무슨 권한을 승인해야 하고 뭘 어째야 하고, 게임 앱 주제에 내 카메라를 왜 본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절대 그런 앱 따위 다운받지 않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랜만에 내가 흥미를 느낀 취미가 될 수 있으니까! 이 순간만큼은 내 개인정보가 털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앱을 다운받고 게임을 진행했다. 지금 연락이 오는 수많은 스팸 전화와 문자들의 이유는 다 거기서 시작됐다.

여하간 그렇게 게임 때문에 한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잠깐 짬이 나면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평소에 살피던 부장의 눈초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가끔은 작은 화면을 너무 들여다봐서 눈과 머리가 팽팽 돌 때도 있었다. 눈 감으면 나오는 검은 면을 배경 삼아 내 캐릭터가 움직이는 화면이 실시간 재생됐다. 실제로 일하다가 머릿속에 게임 창이 너무 맴돌아 화장실 변기 커버 위에 앉아 게임을 하다 자리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 정도면 게임중독 같아서 슬슬 스스로 걱정되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뭐하나 끈질기게 끝내본 적 없는 나답게 마무리를 지었다. 과연 나는 며칠 못 가서 게임에 금방 질려버렸다.




몇 달 내에 물려버린 게임은 양호한 중독이다. 게임중독이 고민되기 전에, 본디 SNS 중독으로 의심된 적이 있었다. 모든 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나는 또래보다 스마트폰을 늦게 산 편이다. 그전에는 문자와 전화만 되는 2G폰을 가지고 다니며 핸드폰을 정말 연락 수단만으로 사용했었는데,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난 얼마 후에 스마트폰이란 최신 기기가 나왔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나 때는 인터넷을 하려면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다. 정말 편한 세상이다. 내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건 외계인이 가져온 기술일까. 십 년이면 강산이 한번 바뀐다는데 그땐 고작 강산이 두 번 바뀐 인생을 살았으면서 기술의 발전에 가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 2G폰으로 할 수 있는 인터넷의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벨 소리나 컬러링을 다운받을 때와 간간이 또래 사이에 유행하던 단순 ‘시간 보내기용’ 게임을 다운받을 때 말고는 별로 사용량이 없었다. 그마저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핸드폰 비용이 비싸게 나오기 때문에 만약 손가락을 잘못 놀려 인터넷 버튼을 누른다면 재빨리 취소 버튼을 연타해서 눌러야 했다. 인터넷에 접속되면 무조건 분당 돈이 나간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서 핸드폰으로는 오로지 연락만 하며 살던 내 또래에게 스마트폰은 정말 혁명적인 문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당시 쓰던 2G폰이 멀쩡하던 상태라 스마트폰으로 곧장 기기 변경을 하지 못했다. 약정도 2년이나 걸어둔 상태라 1년 넘게 더 버텨야 핸드폰을 바꿀 수 있었다. 나는 매번 통신사에서 지급하던 공짜폰으로 전전하던 사람이라 신상 핸드폰은 더더욱 써본 적 없는 구식 같은 사람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을 바꾸고 난 뒤 나는 외로워졌다. 기존의 연락 수단이었던 문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메신저 서비스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일대일로 주고받던 문자는 단체 채팅방이라는 메시지 앱으로 변경되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여럿이서 소통하게 됐다. 스마트폰이 없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단체 채팅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 큰 성인들이라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왕따를 시키는 유치하고 이해 못 할 짓거리 따위를 벌이지는 않았지만 다 같이 만나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 주제가 나왔다. 당연히 단체 채팅방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군중 속에 껴있지만 고독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마치 배고플 때 먹는 썩은 사과와 같은 맛이 났다. 그건 배부르지만 맛없고, 난 재밌지만 외로운 상태였다.



그렇게 족쇄같이 지루했던 남은 약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동안 출시된 무수히 많은 스마트폰 중에 통신사가 공짜폰으로 지급해주는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을 변경했다.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변경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메시지 앱을 다운받는 일이었다. 친구는 내가 핸드폰 기종을 변경한 걸 알고는 나를 바로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주었다. 나는 그 후에 내가 스마트폰으로 바꾸면 제일 사용해보고 싶었던 앱들을 차근차근 다운받았다. 그중에는 파란색 F 철자로 시작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앱도 있었다. 도토리를 지급해주는 세상의 미니홈피도 만들지 않았던 나인데, F 철자의 SNS를 거부하기에는 나도 그간 동떨어져 있던 지난 1년여의 시간이 무던히도 외로웠나 보다. 예전에 유행했던 미니홈피를 개설하지 않은 이유는 별거 없다. 매번 미니홈피를 관리하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미니홈피 이웃의 수가 홈피 주인의 인기 수로 귀결되는 세상에서 내 좁은 인맥을 뽐내기는 싫었다. 그런 연유에도 불구하고 내 좁은 인맥을 뽐내야 하는 F 앱을 설치했다. 나도 세상에 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앱을 설치해서 내 프로필을 만들고 초, 중, 고 및 대학교 지인들을 찾아서 친구 요청을 했다. 얼굴만 간신히 알고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에도 뻔뻔하게 친구 요청을 했다. 그들도 다행히 나를 친구로 받아주었다. 무서웠지만 어렵사리 한번 도전해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앱은 내 무거운 시도와는 대비되게 가벼운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재미는 곧 중독으로 변질됐다.

나는 그때 당시 눈을 뜨자마자 바로 앱에 접속해서 가볍고 새로운 세상의 뉴스거리를 읽었고, 동창들의 잘나가는 소식들을 접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스마트폰은 늦게 샀지만 누구 못지않게 중독처럼 손에 작은 화면을 꼭 쥐고 살았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다들 나처럼 고만고만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다들 하나같이 빛을 내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사고 좋은 것만 먹고 다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문대에 입학해서 대외활동도 착실하게 하고 대기업 취업이라는 목표로 달리는 지인들이 참 많았다. 그것도 아니면 집안 도움을 받아 애초에 바로 창업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 빼고 다들 열 계단은 앞서나가는 듯싶었다. SNS를 하기 전에는 본인만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질투와 자기연민 덩어리로 빗어져 가고 있었다. 나에게 메인 삶의 무게가 남들의 인생보다 배로 무거워 보였다. 심지어 사이비로 인해 생긴 외모 콤플렉스는 SNS로 더 심해졌다. 내 코는 왜 이 친구처럼 생기지 않았지? 나도 큰 눈을 가지고 싶은데, 라는 생각으로 방에 앉아 거울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날이 늘었다. 이쁜 친구들의 프로필을 보며 나의 외모와 비교하게 되고 점점 주눅이 들어갔다.

다들 출중한 외모와 더불어 앞날이 순탄하게 보장된 것 같았다. 내가 방에서 뒹굴며 땅굴 팔 때 남들은 공사다망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 혼자만 인생이 대책 없었다. 준비 없는 미래는 보잘것없는 진흙투성이 도랑처럼 느껴지고 난 그렇게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 그곳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한번 우울의 감정을 느끼니 정신적 어둠에 쉽게 매몰됐다. 문제의 원인은 당연히 파악됐다. 타인과의 비교란 더 나은 타협 따위 없는 버려야 할 본능이지만, SNS가 있는 한 비교 없이 남의 인생을 그냥 즐길 수는 없는 법이다.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나는 핸드폰을 하는 시간을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아침에 눈 떠서 SNS 앱을 켜기보다는 바로 침대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고, 저녁에 잠이 들기 전에는 핸드폰을 열지 않기로 했다. 물론 장렬히 실패했다. 마음은 굳건히 먹었지만 손은 어느새 내 의지를 배반하고 홀로 SNS 앱을 열어 내 뇌가 자학하게 했다.

듣고 싶지 않았던 잘나가는 지인의 소식을 보며 나는 또 볼품없이 무너져갔다. 그래도 SNS를 끊기는 어려웠다. 새로운 종류의 자기학대였다.

나는 자학하며 잠들고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자학하고 강의 쉬는 시간마다 또 손을 놀리며 자학했다. 그러다 내 SNS 이웃 게시글에 넘어온 고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알게 됐다.

우리는 친구라는 단어로 묶일 수 없는 그저 같은 반 동문이었다. 체육 시간 피구로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가뜩이나 친하지 않았던 사이가 더 벌어졌으며 무리가 갈려 학교 내 이것저것으로 서로 경쟁했다. 당연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식을 알 수 없었으나 SNS 지역연동이란 것은 참 신기하다. AI 주제에 뭘 안다고 같은 고등학교와 동네 출신들을 친구 추천으로 딱 알맞게 소개해줬다. 친구라는 단어가 어불성설이다. 원래 같았으면 차단 버튼을 눌러 그 친구가 더이상 내 SNS 소식에 흘러들어오지 않게 할 텐데 그 날따라 이상한 하늘의 장난인지 내 쉬는 시간이 지루했는지 뭐든 간에 그 친구 게시글에 눈이 고정됐다.

내용은 뭐 흔한 자기 자랑이었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재밌게 학교 다니다가 유학도 다녀오고 또 운이 좋아서 바로 은행 본사의 인턴으로 취직하게 됐다는 내용의 글이 한가득했다. 심지어 부모님께 축하 선물로 받았다는 새 차는 유광이 번쩍거려 사진만으로 눈이 멀 지경이었다.

그 친구에 대한 앙금이 남기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나는 이제 곧 사회로 나아가야 할 성인이었고 기억은 많이 퇴색되어 어린 날 치기 어린 싸움을 했던 동창을 미워하기에는 약간의 철도 들어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저런 글을 읽고도 무감하게 넘기든가 그래 너 잘났군, 하고 비웃어야 했을 텐데 그날의 상황과 내 마음은 정말 유별했다. 이미 나는 오래전부터 자기학대에 길들어져 있어 땅굴을 파기 위한 삽이 내 손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열아홉의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 지금은 경쟁은커녕 이제 그 친구의 발끝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 피드로 넘어오는 소식을 뒤에서 몰래 읽으며 자학하는 스스로가 오래전 시작된 그 경쟁에서 이미 패배자의 역할을 맡았던 걸까.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 머뭇대는 내 손가락 위로 패배의 흉이 가득해 보였다. 한껏 미소 지으며 찍었던 내 프로필은 누구와 비교해도 패색이 짙어 보인다.

나는 그길로 깔끔하게 SNS 앱을 지웠다. 땅굴을 파기 위한 삽은 내 자존감까지 같이 내리쳐버려 마음에 금이 가게 해버렸다. 벌어진 금을 메꾸기 위해 시멘트가 필요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외부에서 도움을 얻었다. 그렇게 끊기 어려웠던 중독이었건만 그때 그 시절의 경쟁자가 내게 예기치 않은 도움을 준 것이다. 다행히 금단증세는 없었다. 물론 손가락이 습관적으로 SNS 앱이 놓였던 핸드폰 홈 화면의 자리를 터치하려 허공을 배회했지만, 그곳은 공석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때를 생각하면 이십 대 초중반의 찬란했던 내 젊음은 남과의 비교로 작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그닥 만끽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교는 감정의 나락을 유발했고 마음을 무너뜨렸다. 남과 대비되는 나를 다시는 한심하게 보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각자만의 여정에 걸맞는 각자만의 보따리가 있는 법이다.

유행은 지나 F 앱은 인별 앱으로 진화했고 작은 정사각형 사진 안에서 우리는 최고의 순간을 과시하며 각자 레벨 업을 한다. 레벨 업에 필요한 도구는 단순하다.

누군가가 말하길 SNS는 자신의 최고의 순간만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 인생에 정녕 최고의 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나는 이제 남의 인생이 궁금하지 않아 SNS를 하지 않고, 나를 과시하는 SNS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과시할 인생도 못 된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그렇게 스스로 토닥일 뿐이다.

친구들 입김에 잠깐 몸담았던 핸드폰 게임처럼 인생이 수월하게 풀렸으면 좋으련만 무작위 배치되는 게임 맵이 플레이어 맘을 몰라준다. 현질도 못 하고 아이템도 없으니 내 캐릭터는 어려운 맵에서 맨땅의 헤딩이다. 나도 애초에 운이 좋아서 쉬운 맵에 접속하고 싶다. 이 게임은 어찌 된 게 로그아웃도 없다.






Photo by Nikola Johnny Mirkov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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