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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1. 2022

글과 돌연변이

요즘 노트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다.

깜빡거리는 커서는 지금 갈 길 잃은 내 심정을 대변해준다.

나는 무얼 위해 쓰고 무얼 위해 읽고 있는가.


지인들에게 글 쓰는 이유를 물으면 그냥 좋아서,라는 답변을 압도적인 수치로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해맑은 타인을 부러워하곤 한다.

오로지 좋다는 이유로 가볍게 시작한 '무언의 과정'들은 내게 없기 때문이다.

보상 없는 노력은 날 지치게 만들었고, 다음번 도약을 지워버리는 단념의 단계일 뿐이다.

좋아서 일기를 쓰고, 좋아서 기록을 하고, 좋아서 소설을 쓴다는 그들의 입술은 나를 꿈 앞에서 늘 가난하게 만들었고 늘 헐벗은 기분을 벗을 수 없게끔 했다.

글을 온전히 사랑할 수가 없다. 글과 마주 보면 나는 언제나 돌연변이가 된다.

 



몇 달 전에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원체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이기에, 이번 드라마도 당연히 스킵하려 했다.

하지만 내 맘 같지 않게 주위에서는 친구의 사돈의 팔촌까지 우영우로 난리길래 가볍게 밥상머리 친구로 맞이하려 TV를 틀었다.

우영우를 방영하는 방송사는 이 기세를 이어가 흐름을 타려 했는지 온종일 우영우를 재방해대고 있었다.

내가 TV를 튼 시점은 공교롭게 우영우 2화의 초반 부분이 나오고 있었다.

이쯤에서 컨텐츠 홍수인 지금, 유튜브나 여타 OTT를 놔두고 TV 방영 시간에 맞춰 우영우를 시청하는 내게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돈 없는 죄인에게 OTT 구독비용은 사치라서 커피값 아끼려 넷플릭스를 해지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방송사 방영 시간에 맞춰서 드라마를 사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2화부터 시작한 우영우는 내가 숟가락 드는 일도 잠깐 까먹게 할 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내 오른손은 식탁에서 점차 멀어져 된장찌개가 식어갔지만 눈만큼은 TV에 고정되어 있느라 참 바빴다.

종국에는 눈물까지 흘렸다.

내 눈물은 너무 값싸서 흔한 공익광고를 보면서도 흘린다지만, 이번에는 얄팍한 감정의 울림 따위가 이유는 못 됐다.


어차피 대부분 시청했겠지만 굳이 2화를 짧게 요약하자면 줄거리는 이렇다.

결혼식에서 신부의 드레스가 벗겨지며 식이 망가진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신부 측 아버지가 손해배상을 하기 위해 우영우가 근무하는 법무법인으로 찾아왔는데 신부는 사실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드라마의 반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종방한 드라마니 잠시 스포하자면 신부는 친했던 언니라는 사람의 손을 잡고 새 인생으로 출발하려 아버지를 떠나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난다.

그렇다면 이번 화의 주제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

(성별을 떠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기?

저 주제 의식이 그토록 애달파 내 눈에서 짠 물이 그렇게 나온 것일까.

나는 사랑을 찾아 용기를 낸 등장인물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게 아니다.

작중의 우영우가 특별출연인 등장인물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이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라서요."


2화의 주제는 사랑보다 더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랑과 신부 모두 부모님의 뜻을 물어보고 결혼을 진행하는 내용이 여러 번 나오는데 신부도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원치 않은 결혼을 진행할 뻔했다.

한 번이라도 본인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는 신부에게 우영우는 정신적 독립일깨워 준 것이다.




정신적 독립은 경제적 독립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요사이 툭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 이 나이에 벌써 불효자가 됐다.

글을 쓰겠다는 원대하고 쓸데없는 결정으로 경제적 독립을 비롯해 정신적인 독립 또한 이루지 못한 내가 불쌍해 눈물을 흘렸다.

하고 싶은 일을 쫒겠다는 철없는 생각으로 지난날의 평범하지만 안전한 길 또한 발로 차버린, 미래의 불안정할 나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지금 하는 노력이 보상 없는 배신으로 다가와 시간을 버리게 되는 과오가 될까 봐 눈물을 흘렸다.

결국 포기하는 패배자가 되어버릴 내일의 모습이 불투명하게 스치고 가, 식은 된장찌개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흘렸다.


우영우는 한없이 재밌었지만 내 앞날을 한없이 깜깜하다.

글을 쓰며 언젠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도 이제 기약 없는 망상일까 봐 두렵기까지 하다.

그냥 좋아서 막연히 글을 쓴다는 지인들을 보면 내가 정말 돌연변이가 된 것 같다.






Photo by Rodrigo Cur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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