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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4. 2022

곱슬머리의 비애

#05 곱슬머리와 변신 이야기

평균보다 아주 살짝 작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팔다리, 약간은 통통한 몸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

입 또한 지극히 평범해서 만일 내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몽타주를 그리는 화가는 매우 난감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사소한 특이점이라는 게 있는데 내 얼굴은 아무리 뜯어봐도 별다른 특징이란 것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얼굴을 묘사한 저 나열된 문장으로 인해 화가의 붓이 종이 위에서 머뭇거린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독한 곱슬머리. 그게 바로 내 특징이다.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엄마가 내 머리를 자르기 전까지는, 날개뼈 근처를 넘실거리는 장발이 나의 작은 상징이었다. 엄마는 나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매번 여러 모양으로 땋아주고 고데기를 이용해서 깔끔하게 펴주기도 했다. 미용 가위를 든 엄마의 손을 매일 아침 이런 식으로 사용한 것이다.

예쁜 옷은 별로 없었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머리 모양으로 인해 나는 유치원 내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 인사였다. 밤마다 세수하며 거울을 볼 땐 심하게 곱슬거려 부풀어 오르는 검은 털들이 신경 쓰였지만,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모양으로 신기하게 변해 있을 테니 나의 근심은 고작 하룻밤 고민거리였다.

그런 하룻밤 고민거리가 모든 계절의 근심으로 바뀐 것은 엄마의 가계 스트레스에서 시작됐다. 깨진 곳간과 끊이지 않는 집안일은 아침마다 내 머리에 손을 대는 엄마를 앗아갔는데, 곱슬이란건 장발일 때보다 목 뒤를 겨우 덮는 단발일 때 본인을 더 과시하는 무익이었다.

머리가 잘리기 전에는 내 곱슬머리가 이렇게 골치 아파질 줄은 몰랐다. 장발일 땐 그냥 여러 모양으로 땋아버리거나 고데기로 피면 그만이었지만 짧게 자르고 나니 곱슬이 전혀 관리되지 않았다.

나조차도 거울 속 어색한 내 모습이 낯설었는데 이판사판으로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나를 ‘남자’라고 놀려댔다. 여자아이들 또한 말은 안 했지 더 이상 내 머리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거울 앞에 서서 내 머리 위에 자라나는 꼬불 머리를 뽑기 시작했다. 머리 뽑는 것을 엄마에게 들키면 돌이킬 수 없는 잔소리를 듣게 되니 엄마가 바쁜 틈을 타서 조용히 일을 개시해야 했다. 작업은 꽤 정교했다. 내 곱슬머리 중 제일 심한 곱슬을 찾아 조심스럽지만 한 번에 잡아당겨야 하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뽑다가 힘 조절을 못해 머리카락이 중간에서 끊기는 불상사가 발생해서는 안 됐다. 중간에서 끊긴 머리카락은 내 손가락 힘으로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열심히 뽑던 나는 머리가 뽑힌 그 자리에 더한 꼬불 머리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꼬불 머리들은 짧아진 잔디처럼 내 정수리를 뒤덮었고, 나는 그 잔디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또 뽑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내가 내 머리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엄마도 모종의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돌아다닐 때마다 우리 모녀를 쳐다보는 할머니들은 꼭 한마디씩 잔소리를 끼얹었다.

“애 엄마가 극성맞네. 무슨 어린애 머리를 벌써 저렇게 볶아버린담?”

“아니에요, 원래 곱슬머리에요.”

“떼잉, 무슨 곱슬이 저렇게 심해? 그냥 파마시킨 거 구만.”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할머니들은 곱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때마다 시장에서 바라본 엄마의 표정은 참 여러 색깔이었다. 어둡기도 하고 빨갛기도 하고, 종국에는 도화지 마냥 새하얘졌다. 주말마다 같이 장을 보던 우리의 시장 놀이는 결국 나의 등원 시간대로 시간표가 변경되는 것으로 마감되고 말았다. 등원이라는 글자가 등교로 바뀌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질 못했다. 할머니들의 간섭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유지되던 내 짧은 머리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목 뒤를 수더분하게 덮을 때쯤이었다. 엄마가 나를 식탁에 앉히더니 가볍지만 무거운 주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안이, 이제 머리 기르고 싶어?”

“나? 머리 길러도 돼?”

“이안이가 기르고 싶으면 기르는 거지.”

내가 기르고 싶으면 기르는 거라니, 그럼 지금까지 나는 내 의지대로 머리를 잘랐단 소리인가. 하지만 내 의문에 기초한 불만을 따졌다가는 내 머리에 대한 의사 결정권이 영영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냉큼 기르고 싶다고 대답했다. 곱슬머리야 뭐 길러서 묶거나 집에 있는 오래된 고데기를 사용하면 지금보다 관리가 수월할 듯싶었다. 그리고 곧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무엇보다 짧은 머리로 학교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두발 규정 때문에 허리까지 기르지는 못해도 어깨 언저리는 넘실거리는 그 단발이 너무 갖고 싶었다.

내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엄마는 상상도 못 한 선물을 하나 더 내밀었다.

“그럼 조금 더 길러서 이쁘게 찰랑거리는 생머리로 만들어볼까?”



미장원 운영했던 엄마를 두고서도 나는 미용 기술에 꽤 문외한이었는데, 엄마 말로는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바꿔주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일명 ‘스트레이트’라고 파마약을 이용해 부풀어 오른 곱슬을 죽이고 고데기 판으로 머리를 쭉 피면 두 달 정도는 생머리로 살아갈 수 있는 변신술이 있던 것이다. 그런 기술이 있었으면 엄마 몰래 내 심한 곱슬을 뽑지 않았어도 됐는데 역시 무지는 죄악이다. 그동안 애꿎은 머리털만 잡아 뜯고 있었다.

엄마가 미장원을 처분하며 좋은 미용 도구들 또한 팔아버린 탓에, 나는 정말 간만에 미용실로 행차했다. 집에 있는 미용 도구들은 고작 바리깡과 미용 가위뿐이어서 이발이 아닌 스트레이트를 집에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머리를 맡길 장소로 낙점된 곳은 동네에 새로 생긴 미용실이었다. 당연히 세라 헤어숍은 자연스레 후보지에서 제외됐다. 한동안 동네에 유일한 미용실로 터를 잡고 있던 세라 헤어숍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 동네에 속속들이 생기는 새로운 미용실들로 인해 명성이 약해졌다. 만약 아직도 우리 동네에 세라 헤어숍 밖에 없었다면, 나나 엄마는 두말없이 옆 동네로 눈을 돌렸을 것이다.

미장원보다 미용실이란 단어가 입에 더 붙은 지금, 나는 그렇게 엄마 손을 붙잡고 올곧게 펴질 나의 잔디들을 향해 생애 첫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스트레이트 펌은 내 인생을 바꾼 최고의 기술이라 확언할 수 있다.

처음 스트레이트를 받고 거울 앞에 섰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거울 속에 나는 굽지 않고 반듯해 보였다. 드디어 나도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이 생머리가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남들은 모른다.

많은 샴푸 광고에서는 설파했다. 여자의 매력은 ‘긴 생머리’에서 나온다는 그 이론을.

그런 편향적 세뇌에 뒤섞여 자기 불만족에 잠겨있던 나에게, 곱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기쁨에도 견주질 못할 즐거움이었다. 나도 드디어 저 긴 생머리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엄마도 바뀐 내 머리를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사실 나처럼 내 머리에 질려 버린 게 아닐까. 내 머리에, 할머니들의 잔소리에, 그리고 가난에.

아주 질릴 때로 질려버려서 빈곤한 와중에 내 머리 값을 치르는 게 아닐까.

그 후로 나는 일 년에 최소 2번, 많게는 4번이나 스트레이트를 받는 소소한 사치를 누렸다.



나중에는 스트레이트보다 더 강력한 기술인 ‘매직’이란 펌도 나왔다. 진화하는 기술로 인해 늘 생머리로 살던 나는, 고3이 되어서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미용실을 끊은 적이 있다. 역시나 그 짧지만 길었던 일 년 사이에 내 머리는 곱슬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동안 봉인되어있던 곱슬이 아주 날뛰었던 것이다. 곧 미성년자를 벗어날 시기에 뒤늦게 새로운 별명도 두 가지나 얻었는데 하나는 ‘사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해그리드’였다. 사자 갈기 같던 내 머리는 날 사자로 보이게 만들었고,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해그리드’로 불렸다. 해그리드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로 숲지기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걸레로 쓰지도 못할 부스스한 머리를 자랑하는 인물이다. 둘 다 부정할 수 없는 별명이었다. 나는 다시 곱슬거리며 고개를 내미는 나의 지랄 같은 잔디들을 사랑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 열심히 매직을 시도했다.

어느 순간 볼륨 매직이란 것도 나왔다. 일반 매직은 머리카락이 두피에 착 달라붙어서 며칠은 사람을 미역에 붙잡힌 것처럼 보이게 했는데, 볼륨 매직은 적당히 볼륨감이 살아있어 머리 모양을 퍽 자연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또 뿌리 매직이란 것도 있었다. 생머리가 지겨워 웨이브 파마를 하고 싶어도 내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들은 언제나 지랄같이 곱슬거렸다. 뿌리 매직은 그런 뿌리 쪽 머리털들만 차분해지게 만들어줘서 뿌리 매직과 웨이브 파마를 같이 시술받기도 했다. 용돈에서 미용실이 차지하는 금액은 상당했지만 이 부분은 당연하다고 간주했다.



취업하고 나서도 상황은 다를 게 없었다. 장기간 매직을 계속하다 보니 에센스 바르지 않은 내 자연 머리는 개털처럼 휘날리는 수준이 되었다. 아무리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듬뿍 발라도 머리카락은 뚝뚝 끊어지고 여러 갈래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정수리에서는 곱슬머리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이 상태로 매직을 다시 하자니 한숨이 나왔다. 어차피 항상 상해 있는 머리카락이라 비단결 같은 머릿결에는 애초에 미련 갖지도 않았다. 다만 죽을 때까지 이렇게 매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좀 속상했다. 내가 만약 장기간 미용실이 없는 동네로 떠나야 한다면? 심지어 아파서 장기 입원을 해야 하는 상상까지 도달했다. 아픈 와중에 매직을 못 하면 어쩌느냐는 생각까지 들다니 심각해도 한참 심각하다. 그 상황에서도 내 곱슬머리를 신경 써야 한다니.

상한 머리카락을 붙잡고 한숨을 푹푹 쉬니 옆자리 동기가 상담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럼 당분간 매직하지 말고 그냥 길러봐.”

“곱슬로 머리 자체가 지저분해지는데 어떻게 그냥 길러?”

“머리를 히피펌으로 볶아버리던가. 그럼 새롭게 자라는 곱슬이랑 히피펌이랑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겠어?”

히피펌은 파마의 한 종류로 머리카락 컬의 굵기를 빠글빠글하게 만드는 것이다. 펌 자체야 이쁘지만 직장인이 하기엔 너무 자유롭고 부스스해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회사 다니면서 그 머리를 하라고? 아주 자기 일 아니라고 말을 막 던진다.

“회사 다니는데 어떻게 히피펌을 하라는 거야……?”

“우선 해 봐. 하고서 단정하게 묶고 출근하면 되잖아. 너 머릿결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파마 한 번만 하고 계속 관리해주면 머릿결 안 상할걸? 그럼 곱슬머리에 너도 곧 익숙해지지 않겠어?”



동기의 조언이 그다지 구미 당기지는 않았지만, 결국 히피펌 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십여 년 가까이 시도했던 매직에게 안녕을 고해볼 차례이다. 머뭇거리다가는 그대로 다시 매직의 늪에 빠져버릴 것 같아서 후다닥 해치워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나는 앞으로 입원할 때도 매번 곱슬머리를 신경 써야 하는 처지에서 못 벗어날 듯싶었다.

단골 미용실에서는 내 결정에 의외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동안 매번 매직만 해서 말 못 했지만 곱슬머리가 어울릴 것 같다는 칭찬까지 덧붙였다.

“우선 히피펌 하고서 고객님 본연의 곱슬머리로 길러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컬 관리만 잘해주면 머리 모양 이쁘게 나올 거라고 장담할게요.”

“그런데 제 곱슬은 악성 곱슬이라……”

“악성 곱슬이란 건 없어요. ‘빅찹’이라고 들어보셨어요? 화학적 시술받은 머리카락 모두를 잘라내는 것을 뜻해요. 외국에서는 빅찹하고서 자기 본연의 머리만 관리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러브 유어셀프. 미용사로서 곱슬 앞에 악성이란 단어가 붙는 건 너무 슬프더라고요.”


곱슬머리는 언제나 내게 부정적인 수식어만 가져다주었다. 항상 지랄 같고 초라하고 스트레스만 주던.

나의 그런 고불거리는 머리카락을 매번 회피하고 싶었다.




나는 거울 속의 여인을 바라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라 날개뼈를 덮고 있는 머리는 인공의 히피펌을 모두 잘라내버리고 자연산 곱슬로 풍성하다.

나의 검은 곱슬머리는 사랑스러우며 소중하고 활기차 보인다. 열심히 관리해준 탓인지 소싯적 사자의 갈기 같은 부스스함도 없다. 본연의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귀여워 보였던 적은 결단코 없었다.

하지만 사회는 녹록지 않다고, 내가 나를 사랑하려 마음먹으니 세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지인들은 내 머리를 보며 나잇값 하라는 쓴소리를 마다치 않고 던졌다. 이직할 때도 고통을 받아야 했다.

어느 면접관은 내게 이런 소리도 내놓았다. 면접의 기본값은 단정 아닙니까? 이이안 씨처럼 과한 파마를 하고 면접 보러 온 사람은 없었어요.

억울한 심정을 조금 표하자면, 그때 나의 복장은 정장 투피스에 머리를 하나로 묶은 단정한 차림새였다.


자신을 사랑하려 해도 사랑하게 못 하는 이놈의 세상.

오늘도 나의 곱슬머리는 주인의 사랑을 업고 세상의 멸시를 당해내야 한다.






Photo by Lucy Dimitro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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