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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ther branding Jun 30. 2020

디자인은 경력이 아니라 능력이다.

경력(나이)가 많으면 능력이 있을거라는 아주 잘못된 착각

3년 차 디자이너 시절, 글로벌 디자인 에이전시로 아시아 쪽의 업무(주로 일본 쪽의 디자인)를 담당하는 회사에 입사를 한 적이 있다. 포트폴리오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고, 함께 일하게 된 회사의 임원진은 입을 모아 본인들의 디자인 경력이 15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언어나 디자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입사를 하였다.


그런데 업무를 진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잘 된 포트폴리오는 이전에 일하던 수석 디자이너의 작품이었고 실장의 작업물은 그야말로 20년 전 디자인 스타일에 멈춰있던 것이다. 그동안의 그가 작업한 결과물을 쭉 보고 있자니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타이포그래피(자간, 행간, 자평)조차 보는 시각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알려드려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실력은 올드해도 프로젝트 리딩에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고 위안을 삼아보려 했지만, 그는 '화려한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리딩 능력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물론, 시안을 어떻게 취합하여 팀원들과 의논하고 피드백을 줘야 하는지, 고객사에게 어떻게 시안을 보내야 하는지 실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아예 모르고 있었고, 만약 누군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안하거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려고 하는 순간 그는 본인이 실장이고, 15년 경력임을 늘 강조하여 다른 디자이너들의 능력과 경력을 무시하곤 했다.




3년 차 이전, 능력 있고 저명한 실장님에게서 디자인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는 실력이 너무 뛰어났기에 디자인의 기본기는 물론 연차가 쌓일수록 디자이너들이 프로젝트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도록 올바른 프로세스에 대해서 늘 얘기하였다. 디자인 피드백에 대해서 주고받을 때에도 경력을 과시하며 '본인 것이 옳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디자인을 진행하였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디자인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리딩하고 피드백하는 것이 팀장(사수)의 역할이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다짐하였다. 내가 나중에 팀장이 되고, 디자인 회사의 대표가 된다면 '갑을관계에서 나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리딩을 해야겠다' 고 말이다.


그런데 간혹 주위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한다. 바로 디자인 경력(연차)이 많으면 본인의 말이 정답인 줄 알고 자신의 주장을 이상하게 고집하는 사람들인데, 디자이너는 그저 연차가 쌓인다고 전부가 아니다.



- 매년 달라지는 트렌드(컬러, 폰트)에 대한 공부
- 온오프라인 매체에 따른 타이포그래피 구현(웹, 모바일, 오프라인)
- 팀원, 혹은 클라이언트와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는 유연한 대화능력
(디자인적인 전문지식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신경쓰며 배려하며 대화하는 능력)


게다가 팀장(실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아래의 능력까지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 올바른 프로세스로 디자인을 진행하는 능력
- 클라이언트 대면 및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
- 디자이너들을 위한 역량강화와 팀원 관리
- 디자인 퀄리티에 대한 책임감
- 그 외에 디자인팀이 앞으로 잘 향할 수 있는 올바른 비전과 마음가짐

"위의 능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고 그저 경력만 늘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배우세요"




즉 디자이너는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도태되는 직업 중에 하나고 그만큼 경력과 이력/학력이 아니라 output (출력) = 보이는 것이 중요하단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디자인 경력 15년 차, 20년 차라고 하면 "우와 저 사람 경력 봐! 엄청나다"라고 잘못된 착각을 해버린다.

디자인 경력과 실력, 디자인 실력과 나이는 결코 비례할 수 없고, 15년 차의 디자이너보다 5년 차의 디자이너가 퀄리티와 리딩 능력이 훨씬 뛰어날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은 정말 잘못된 착각인 것이다.


에이전시는 철저한 능력제라 15년 차라고 해도 포트폴리오가 별로라면 결코 채용하지 않고, 5년 차라고 해도 실력이 좋고 프로젝트 리딩 능력이 뛰어나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팀장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즉 디자인계는 그만큼 능력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일부 기업은 아직도 라떼의 마인드에 사로잡혀 실력 대비 나이가 어리거나, 연차가 적다면 연봉이나 대우에 있어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해주는 기업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내가 5-7년 차에 디자인팀을 총괄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신입시절에 보다 빨리 올바른 프로세스를 배우고 디자인에 대한 기본기를 탄탄히 잡아서인지 그 덕분에 동일한 연차의 디자이너들보다는 조금 이르게 승진의 기회들이 찾아왔다. 간혹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 때문에 '프젝트를 잘할까' 걱정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었지만 그저 나는 디자인 결과물과 퀄리티로 그런 걱정을 말끔하게 없애버렸다. 이는 디자인뿐 아니라 아마 모든 기업, 사회생활에서 동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년 차의 저명한 교수보다 신입 교수의 실력이 훨씬 뛰어날 수 있고, 20년 차의 셰프보다 5년 차 셰프가 훨씬 더 요리실력이 좋을 수도 있다.


만약 아직도 그저 능력이라는 것이 나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서 빨리 그 잘못된 착각 속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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