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그래픽 디자인(패키지, 로고, 모든 편집물, 등) 회사에서 일을 시킬 때 "그냥" "일단" 해보라고 한다. 어쩌겠나 팀장이 사원에게 하라고 하면 그냥 하는 수밖에 없지. 사원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일러스트를 켜고 펜툴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기 시작한다. 자 그렇게 반나절 이상 열심히 디자인을 끝마치고, 팀장님에게 컨펌을 받는다. 돌아오는 팀장의 피드백은 과연? 10중 8,9 이런 반응일 것이다.
"느낌이 이게 아닌데?"
"다른 느낌으로 해봐"
뭐 대충 이런 식의 피드백
이 상황을 분석해보자. 저 팀장놈은 왜 저런 식의 피드백을 주었을까? 당연히 팀장이 "일단" 해보라고 해서이다. 아무런 <디자인적 기획> 없이 그저 "일단" 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포토샵을 켜기 전에 디자인적 기획을 하는 건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것과 같이, 수영하기 전 몸을 풀어줘야 하는 것과 같이 아주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많은 디자이너들, 디자인 회사는 이 수순을 <바쁘다>라는 핑계로 생략하곤 한다.
(아니면 디자인적 기획을 하지를 못한다던가)
그럼, 디자인적 기획이 무엇인가?
UIUX 뿐만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도 통상적으로 통하는 메시지가 있고, 맞는 방향이 있다. 그것을 설정하고 클라이언트와 협의하고 소통하는 과정에 필요한 <협의 문서> 같은 것이다. 이 과정은 브랜딩 디자인을 하던, 포스터 디자인을 하던 큰 맥락에서는 모두 같은 수순을 가지고 있다. 이 디자인적 기획에는 경우에 따라 시간을 짧게 할애할 수도 길게 둘 수도 있다.
1. 시간을 짧게 투자하는 경우의 디자인적 기획
2. 긴 시간을 투자하는 디자인적 기획
보통 이 두 가지는, 단가가 낮냐 높냐에 대한 기준으로 디자인적 기획의 비중을 설정하곤 한다. 단가가 낮고 빠르게 쳐내야 하는 경우에는 1번의 경우로, 단가가 높고 전문적으로 보여야 할 때는 2번의 경우로 일을 진행한다. 이 두 프로세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로고 디자인을 예시로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예시는 로고 디자인이지만 대게 모든 디자인 기획 프로세스는 비슷하다.)
이와 같이 두 기획 프로세스 간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하지만 기획이 없는 디자인은 있을 수 없다.
2~3만 원짜리 디자인이라도 최소한의 디자인적 기획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런 기획 없이 "그냥" "일단" 해본 디자인은 필연적으로 팀장, 고객사의 마음에 안 들기 마련이며 나의 평가도 절하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잘못 지시 한 거지만)
디자이너를 만약 평가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화려한 포토샵 스킬이 아니라, 화려하게 고객사랑 소통하는 기술이 먼저일 것이다. 시작에서부터 결과까지 가는 과정에서 원활한 과정을 디자이너가 이끌어갈 수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포토샵 기술은 두 번째 문제이다. 만약 소통창이 팀장이고, 팀원인 디자이너가 맥락에 맞지 않는 디자인을 한다면 팀원들에게 제대로 오더를 하지 못한 팀장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자의 리딩 능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즉 팀장의 기분 혹은 대표의 기분을 잘 맞추는 디자이너가 잘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뜻이다.
대부분대학에서는이걸가르쳐주지않고, 대부분디자인회사에서는이런프로세스를무시하며디자인을한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일을 하는 것이다. 준비운동도 안 하고 수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결국 발에 쥐가 나서 물에 빠져 죽게 될것이다. 본인이 평생 잘못된 방법으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후배에게 그런 방법을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 언제까지 "내 기분 맞춰봐" 식으로 일을 할 것인가. 15년 전, 20년 전 디자인 방법으로 언제까지 이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