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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ther branding Jun 20. 2020

돈 주는 만큼 일하겠습니다.

디자이너의 리즈시절은, 겨우 3년

7년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 지내오면서 이력서만 내도 바로 연락 올 정도로 핫한 리즈시절은 딱 3년 차였다. 그 당시에는 모든 곳에 합격을 했고 말 그대로 내가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동안의 노력이 포트폴리오에 잘 담겼을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기업 측 입장에서는 신입은 아니니 어느 정도 일을 잘하는데 연봉은 높지 않고, 많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대표에게 충성할 테고, 2~3년 안에 경력을 쌓겠다고 이직할 테니 연봉협상에 대한 두려움 또한 없기 때문이다.

너무 적나라하게 말한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5~6년 차 이상의 경력자들은 웬만해서는 뽑고 싶어 하지 않고 매번 <경력자 1~3년 채용합니다>라는 공고만 주구장창 올린다. 왜 매일 똑같은 기업들이 X코리아와 사람X에 자주 채용공고를 올리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경력자들은 모두 질려서 퇴사를 하고(기업이 잘못되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만이 회사에 존재하고 나중에는 그 신입조차 관두게 되니 지속적으로 아주 자주 채용공고를 올리는 것이다.


5~6년 차 이상의 경력자들은 이직을 하며 여러 경험과 프로세스를 겪어봤기 때문에 회사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함(말도 안 되는 일정, 체계 없는 프로세스)을 어느 정도 캐치해낼 수 있고 '정말 아니다' 싶을 때 과감히 나올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기지만, 신입들은 이게 맞는 건지 이 프로세스가 맞는 건지 회사가 원래 이런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3년 차까지의 디자이너들을 아주 좋아한다. 즉 인생의 리즈시절같이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연차별로 바라는 기대감은 도대체 어느 정도 일까?

실제로 그 기대감에 대해서 몸소 체험하고 대표자에게 대면으로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해보았다.  


신입~2년 차

어떠한 기대감이 없다. 포트폴리오가 잘 되었다고 해도 학교나 학원에서 어느 정도 손을 봐주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보다는 실무에서 본인들을 서포트해줄 디자이너를 바라고 있다. 예를 들면 누끼 따기, 이미지 서치 외 여러 서포트 등.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직 메인 시안을 잡기에 많이 부족할 수 있기에 일을 배우면서 자신을 서포트할 수 있는 딱 그 정도로서의 포지션이길 비라고 있다.


3년 차

신입 같지 않은 신입이다. 신입 때 어느 정도 일을 배워가며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어느 정도 메인 시안을 잡으면서 실력 또한 늘었고, 프로젝트를 리딩 할 수 있는 역량은 아니지만 디자인 퀄리티에 있어서 신입시절보다는 더 꼼꼼하고 좋은 결과물을 보일 수 있는 연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이 연차를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에 대해서 신입보다는 높은 퀄리티를 만들어내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지 않아도 돼서 좋고, 신입과 연봉 차이가 크지는 않고, 아직 뭘 모르니 실장이나 대표의 말에 무조건 수용하는

한마디로 "일 잘하고 연봉 낮고 충성하는 디자이너"


4~5년 차

신입 티를 벗어나 어느 정도 꽤 경력이 쌓였고, 프로젝트를 직접 주도를 해본 경험이 있을 수 있어서 어느 정도 디자인 프로세스를 알고 있다. 3년 차와 비교했을 때 디자인적으로 훨씬 더 상승했다고 할 수는 없다. 디자인 실력은 결코 연차나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5년 차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리딩은 잘해도 결과물 퀄리티가 엉망일 수도 있고,
5년 차 디자이너가 장급처럼 리딩 하진 못해도 디자인 퀄리티가 수준급 이상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디자인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 선까지 상승을 한 뒤, 그 이후부터는 프로젝트의 리딩과 고객사를 대하는 스킬, 팀원들을 리딩하고 관리하는 역량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예시와는 별개로

최악의 경우엔 15년 차 디자이너인데 리딩도 못하고 퀄리티가 낮은 경우도 있고(3년 차 시절 경험해 본 적이 있다.) 5년 차 디자이너인데 퀄리티도 높으며 전체적인 총괄까지 잘하는 디자이너가 있을 수도 있다.

즉, 디자인이라는 것은 절대 '나이'와 '연차'와 상관이 없다.



아마 기업들은 4~5년 차보다는 3년 차를 선호할 것이다. 4년 차 때부터는 꽤 많이 연봉을 점프할 수 있는 시기이고, 잘못된 프로세스가 있으면 그저 '네 네' 거리지 않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주장하고, 고쳐나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충성도가 낮다고 판단될 것이다.


6년 차 이상

5년 차 이상부터는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많은 일을 하고, 또 디자인 퀄리티까지 어느 정도 나오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팀장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좋은 연차이다. 즉 이제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보통 디렉터의 역할은 고객사 대면, 프로젝트 리딩, 디자인 퀄리티, 팀원들을 리딩하고 관리하는 즉 생각보다 무거운 마음과 책임을 가진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예전보다는 점점 이직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연봉이 생각보다 높고, 프로젝트 리딩 또한 많이 해봤기 때문에 회사의 잘못된 점을 고치려 할 테고, 결코 충성하지 않는 할 말을 하는 직원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피곤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현재의 연차를 지나쳤을 때 포트폴리오의 퀄리티는 3년 차보다 훨씬 더 상승했지만 연락을 오는 곳이 예전보다는 적어졌다.


그 이상의 연차

사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위에서 들은 말로 설명하자면, 디자인 회사는 늘 3년 차 같은 디자이너를 바라고 있어서 이직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대부분이 프리랜서 혹은 개인사업자를 내고 자기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 조차도 성공하기가 참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나 또한 역시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것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고 디자인을 부수적인 용도로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디자인 연봉은 심한 곳은 1600부터(더 낮은 곳도 존재) 1800이고, 요즘 좀 올랐다고 2200만 원이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3년 차 디자이너에게는 신입 연봉을  주며 5년 차처럼 일하길 바라고, 6년 차 디자이너에게 3000만 원을 주며 아트디렉터 역할을 하길 바란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채용해놓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곳에서 역량을 펼치길 학수고대한다.


[제대로 일할 수 없는 환경]

1) 대표에게 복종하고 엄격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크리에이티브한 창작물을 원한다

2) 그렇다고 주어진 일만 하는 환경이면, 디자이너인데 주어진 일만 한다고 말한다

3) 폭력적이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정을 요구하며 야근, 철야에 대한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

4) 안 하겠다고 할거면 내보내면 된다. 어차피 3년 차 디자이너 다시 뽑으면 되니까

5) 연봉은 후려쳤지만 일은 경영진처럼 하길 바라고 있다

6) 연봉협상시 경영진 마인드로 일하지 않았다며 쥐꼬리만큼 인상을 한다

(아니꼽다면 나가도 좋다. 너 말고 다른 3년 차 뽑으면 되니 말이다)



*좋은근무환경과 관련된 글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느 정도 경력이 생기고 이제 회사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면 부디 연봉값만큼 일했으면 좋겠다. 연봉값 그 이상으로 무언가 해내고 성취한다고 해도 그들은 '아이고 잘했다 저 친구가 떠나지 않게 대우를 해줘야지!'가 아니라 '6년 차에게 3년 차 연봉을 줘도 잘하네? 앞으로 경력자들 연봉은 저게 적당하겠군' 이렇게 되는 것이다. 대기업처럼 성과를 낸 뒤 인센티브나 상여금을 받지 않는 이상 에이전시나 광고대행사에 종사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은 저런 처우, 아니 취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고 있다.


마치 공장 생산라인의 부속품 같이.

"어라, 얘는 좀 아니네? (바닥에 버리고) 좋고 튼튼한 부품으로 바꿔야겠다."


경력 있고 일 잘하는 디자이너를 채용하여 연봉 후려치기를 했다면 그 금액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지 말아야 맞는 것이다. 회사에서 비전을 꿈꾸고, 자신의 가치를 성장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가치가 실현될 수 없는 강압적이고 부당한 업무환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돈 주는 만큼 일하겠습니다."

혹시, 이런 말을 하는 경력자들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괜찮다. 우리도 당신을 후려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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