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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an 09. 2021

슬프도록 무명한,

싱어게인을 봤다. 감정과잉이 됐다.








     슈퍼스타케이에서 케이팝스타, 그리고 프로듀서 101까지 한동안 오디션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민족인지를 깨달았다. 시즌이 거듭되어 더 이상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도 장범준이 끝나면 이하이가 나왔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넘어 미국과 호주에서도 오디션을 보는 동포들이 있었고 노래를 잘하는, 새로운 가수들이 줄을 이어 탄생했다. 그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유명해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국 노래자랑의 민족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사랑받아왔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이유다. 오디션 포맷도 시간이 갈수록 진화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로 할 수 있는 새로운 파생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복면을 쓰고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가수와 그 가수를 모창 하는 출연자들이 경쟁하면서 가수보다 더 가수 같은 실력을 뽐낸다거나. 립싱크를 하면서 음치와 실력자를 방청객들이 구분해 내는 어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하기까지. 오디션에 예능이 더해졌다.


     대한민국 방송국 피디들의 아이데이션은 끝이 없어서인지, 오디션 프로그램은 해마다 새로운 장르로 세분화와 차별화를 게을리하지 않고 자가발전해나갔다. 우선 올해 시즌 9에서 (나한테) 대박이 난 쇼미더머니는 대한민국 래퍼들의 경연. 물론 언프리티랩스타도 챙겨봤다. 의외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쇼미더머니를 많이 본다. 금요일 밤, 아이를 재우고서 외출할 형편이 아닌 육아 그늘의 고독한 아기 엄마들의 초이스는 의외로 터프하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의 경연과는 다른 조금 거친 래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와중에 랩 경연프로는 고등 래퍼로 분열했다. 펜텀싱어에서는 성악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감동을 보여주었고, 작년 한 해의 키워드였다고 해도 무방할 트롯 신드롬을 만들어낸 미스트롯은 트롯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낸 놀라운 오디션이었다. 주로 50대 이상 중장년 노인에게만 유효하다고 여겨지던 트롯이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임영웅이 부르면 트롯은 이미 트롯을 넘어선다고 했다. 그리하여 춘추트롯전국시대 개막.



     노래 잘하는 사람들 이제 좀 재미없지 않아?



     거기서 거기, 그 사람이 그 사람. 노래 잘 부르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재미가 없다고 느낄 무렵, 싱어게인이 시작됐다. 노래는 유명한데 정작 가수는 무명인 그런 사람들이 다시 노래를 부르고자 오디션에 참가한다. 무명이라서 가수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다. 1호부터 몇십 호까지의 참가자만 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르지만 노래가 시작되면 아, 이 노래가 이 사람의 곡이었구나? 하고 놀라는 일이 반복됐다.


     마음이 동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엄청난 육아를 하고 있고, 이토록 힘든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알아주지 않는다. 회사에서 내가 한 일들은 거의 대부분 무명의 일로 남았다. 이름이 있는데도 무명 씨. 그 프로젝트가 어딘가에서 회자되고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모른다. 내가 일을 못해서, 육아를 못해서, 나잇값을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그냥 내 이름을 모른다. 무명가수들은 실력이 없어서 무명이 아니었다. 노래가 유명해진 것에 비해서 본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서운한 일이었을지, 이제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아는 노래, 모르는 가수의 컨셉 오디션 싱어게인이다.



     이슈의 중심에는 29호가 있다. 정통 헤비메탈. 첫 무대에서 많은 주목을 끌었다. 그대는 어디에, 나도 아는 노래였는데 29호 가수는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노래방에서 몇 번인가 불렀던 노래지만 가수의 얼굴 같은 것은 궁금해한 적이 없다. 무명인 것이다. 요즘 우리들은 헤비메탈을 듣지 않는다. 세련된 보컬의 기준은 조금 대충 부르는 스킬이라는 것이 요즘의 기준이다. 최선을 다해 노래하면 어쩐지 촌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과 에너지를 실어 포효하는 헤비메탈의 전율, 아 이런 거였지. 술을 잔뜩 마시고 난 다음날 뜨거운 해장국을 밀어 넣었을 때 쓰린 속을 쑤욱 내려주는 어떤 뜨거운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29호가 지난주 월요일 "제발"을 부르는 순간 이 슬프도록 무명한 가수가 더 이상 무명이 아니기를 바랐다.



     싱어게인에서는 심사위원이 심사위원 같지 않다. 이것도 컨셉인가 싶어 지는 부분이다. 이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가차 없이 냉정한 심사평이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었고, 저렇게까지 말해야 되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던 칼 같은 심사평도 분명 재미의 한 부분이었다. 화제가 되고, 새로운 스타들만큼이나 심사위원들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이미 노래가 시작하기 전부터 감동받을 준비가 된 것 같은 표정의 규현은 참가자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지난번 급기야 눈물을 터뜨린 송민호도 그동안 봐왔던 심사위원들과는 맥락을 달리한다. 유희열이나 김이나가 조금 냉정하게 말할 때가 있지만, 그나마도 차갑거나 매섭게 들리지는 않는다. 특히나 이선희 선생님의 경우에는 가창력에 대한 코멘트를 할 법도 한데, 조금 떨리는 목소리에 여전히 소녀 같은 모습으로 박수를 치고 심플한 감상평만을 하신다.



이상하게, 위로가 되어준 싱어게인.

열심히 했지만, 유명해지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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