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만나던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있나요?
내일 만날래?
어린이집 픽업 시간 전에 와야 되는데.. 일찍 만나자.
귀한 연차를 내서 친구를 만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고 가능한 제일 빠른 시간에 만났다가, 최대한 늦게 헤어진다. 어린이집 픽업 시간 직전에. 시간을 내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민첩하고 계획적이어야한다.
직장동료도 친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직장동료를 제외하고 한때 나의 소울메이트였던 친구들과 자주 못 만나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은 이후였다. 처음 육아휴직을 하고 덩그러니 집에 혼자, 아니 아기랑 둘이 있을 때에는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그때는 친구들에게 아이가 없었다. 혼자 고독하게 아이를 보고 있을 내가 심심할까 봐는 아니고, 친구가 낳은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그 작은 아기가 보고 싶은 것을 못 참고 자주 와주었다. 그러다가 한 명 두 명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고 회사를 다닌다. 각자의 삶에 빈틈이 많이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 일 년에 한두 번도 힘들게 만나는 사이가 됐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 말이다.
어릴 때 내게 친구의 의미는 "매일 만나는 사이"였다. 좋아하는 친구랑은 학교에서 만나고, 학교를 마치고도 만나고, 학원도 같이 가고, 떡볶이도 같이 먹었다. 잠자는 시간 동안 잠시만 안녕, 했다가 눈뜨면 또 만나고 등교도 함께 했다. 그렇게 자라나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것 같다. 가족보다는 친구가 우선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갑자기 술 한잔 할래? 하고 전화하면 바로 나와줄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인가, 라는 것이 친구관계의 화두였던 적도 있다. 나도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주저 없이 신촌이나 홍대로 달려갔다. 그런 게 우정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우정을 쌓아가느라 술도 많이 마시고, 노래방도 자주 갔다. 서로를 집에 바래다주고 다음날이면 다시 만나서 해장도 했을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게 바쁘다는 재미없는 카드를 나도 꺼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친구를 만나는 일은 급기야 "기회"가 필요한 일이 되고야 만 것이다.
한동안은 육아에 취해서, 내가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틈틈이 카톡을 나누면서 서로의 근황 토크를 이어가면서 지내기 때문에 특별히 인지를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갓난아기 시절을 지나면서부터는 실시간으로 카톡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수유를 하다가, 기저귀를 갈았다가, 우는 아기를 달래고 때로는 책을 읽어줘 야했기 때문에 카톡을 읽기는 읽는데 답을 할 손이 부족했다. 한번 대화창에서 흐름을 놓치면 한밤중에 한꺼번에 답을 하기도 했는데, 나의 그런 시기가 지나가고 나니 다른 친구에게 그런 시기가 찾아왔고, 그렇게 돌고 돌다가 카톡의 빈도수도 점차 줄어갔다.
아직 해마다 키가 자라고 있던 시절에 만나 서로의 구질구질한 첫사랑 같은 것을 곁에서 응원해주었던 사이. 손글씨로 나눈 유치한 편지들이 서랍 구석 어딘가에 잔뜩 쌓여 있는 그런 사이.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대해서 서로 우리 집이 더 불행하다고 서로의 가정환경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끝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노래방에서 함께 열창하던 사이. 그래서 만나면 그 시절에 대해 했던말 또하고 또 하면서 처음인것마냥 좋아하는 사이.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내온 나의 친구들은 지금 모두 한두 명의 아기 엄마가 되어있고, 우리는 쉽게 못 만난다.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기 때문에 갑자기 만나자고 떼쓰거나 조르는 법도 없다. 그냥 때를 기다렸다가, 기회를 포착해서 일 년에 한두 번을 만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의 엄마들이랑 연락을 하고 지냈다. 나이는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같은 연령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공통 화제가 있었다. 등 하원 할 때 안면을 트고 무엇보다 어린이집을 기반으로 근처에 살고 있는 터라 오며 가며 자주 마주쳤다. 나의 오랜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서로의 집에도 종종 놀러 가고, 아이를 데리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몇 번인가 집 근처 이자까야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가깝게 지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만나는 사이가 됐다. 친구랑 비슷한데, 이상하게 친구라고 하지 못하는 가깝고 묘한 사이. 대안 친구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한해가 저물어가고 연말이다보니 이래저래 하나둘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떠오르는 요즘, 어떻게든 또 기회를 만들어서 만나봐야겠지. 보고 싶다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