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포선라이즈 Nov 26. 2019

남자 셋과 살고 있습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습니다






애초에  남자들에게만 둘러싸여 살 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학교도 남녀공학만 나왔다. 여자끼리 사는 것도 생각한 적 없지만, 남자들 사이에 홍일점으로 살게 될 줄이야. 첫 아이가 만 36개월 미만일 때까지는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에 다니기도 했는데 그 이후에는 아빠랑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 뭔가 홀가분 하면지만 1g 정도의 고독함 같은 것이 남았다.


두 번째 아이도 아들인걸 알고 친정엄마를 포함한 주변의 어른들께서 아들 둘이면 나중에 늙어서 외로워 어쩌냐고 걱정을 이만저만해주신 게 아니다. 나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그런 걱정 때문에 딸을 어디서 구해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남자 셋과 살아서 차분하고 아기자기 조용한 시간은 사치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처럼 우리 집 아들도 총싸움에 빠져있다. 집안은 총싸움으로 삽시간에 난장판이 될 수 있는 걸 알게 됐다. 스펀지로 된 총알이 집안을 날아다니는 풍경.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두 살짜리 꼬마도 그 총싸움에 합류해서 남자 셋이 늘 전투 중이다.


네다섯 살 무렵에는 헬로카봇과 또봇이 아들의 세계관을 지배했고 우리 집 인테리어도 지배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로봇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고,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또는 로봇에서 자동차로의 변신을 척척 해냈다. 물론 우리 집의 BGM을 지배한 것도 헬로카봇 주제가였다. 시간이 흘러 터닝 메카드의 시대가 도래했다. 자석이 붙어있는 카드가 닿으면 자동차가 로봇으로촤르륵 변신하는 멋들어진 장난감이었다. 또봇이나 카봇보다 가격이 현저히 낮았지만, 끝도 없이 신모델이 나왔다. 가장 많이 모았을 때 30개 이상의 터닝 메카드가 있었다. 인기 템은 사실상 온오프라인에서 구하기도 어려웠고,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그게 뭐라고 갖고 싶어 했고, 사주고 싶어 했다. 최근 마지막으로 열광했던 것은 팽이, 아니지 그 이름도 멋진 베이블레이드였다. 팽이인데 굉장히 진화된 팽이. 팽이가 3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의 부품에 따라서 파워, 지속시간, 도는 방향이 달라진다. 아무튼 지구를 뒤흔들 것처럼 파워가 센 거라고 해서 사면 다음 달엔 어김없이 더 센 놈이 나와서 또 사야 한다.


남자 셋의 세계에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 중에 하나는 왜 서로를 그렇게 건드리는가 이다. 아빠랑 놀고 있으라고, 혹은 애들 좀 놀아주라고 하면 어김없이 아들의 울음소리가 수반된다. 왜 아빠는 아들을 울리지? 적당히 놀아주라고 했는데, 총으로 맞춰서 울리거나 씨름을 해서 넘어뜨려서 울린다. 그렇다면 그 놀이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울다가도 아빠에게 반복적으로 덤비는 아들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같이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인 듯, 나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는다.


아들의 옷은 배트맨 아니면 아이언맨이 점령했다.  스파이더맨도 있구나. 양말에도 팬티에도 티셔츠에도 히어로가 가득하다. 나름 감성적인 스타일로 코디해보고 싶었던 로망으로 애매한 컬러의  다운된 의류를 사입히고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의 자아가 견고해질 무렵부터 나에게 요구한 양말은 스파이더맨. 티셔츠에는 마블이 쓰여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옷을 입어야 웃었다. 우리 집의 구석구석에서 히어로의 흔적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를 앉혀놓고 직접 미용을 시도 했다. 얼마 자르지도 않고 돈을 내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머리스타일 조금 망쳐도 금방 자랄 테니 다시 잘라주면 되지, 남자아이니까  어때, 싶었던 이유로 집에서 가위를 함부로 들이대곤 한거다. 첫째는 실제로 순하고 무던한 아이라서 내가 자르는 대로 가만히 있어주었다. 물론 쥐파먹은 머리를 하고 어린이집에   여러 번이다. 보통은 그날 저녁 미용실에 가서 전문가의 손길로 수습을 해야 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미용실에 갈걸 그랬다고 후회도 따랐지만, 외모에 민감하지 않은 아들은 엄마가 머리를 잘라주었다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놨다. 짜식.


아들뿐인 삶의 외로움에 대한 걱정은 미래에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후의 일상까지 아우른다. 아들들이 모두 장성해서 독립했을 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딸들이랑 크로아티아 여행을 가는 60대의 여성들은 흔한데, 아들만 둘이면 누구랑 크로아티아를 가느냐. 그런 내용의 걱정 말이다. 그래서 노후 대책의 하나로 아들만  친구들과 연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나이 들어 함께 여행 다닌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읽고 결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실용적인지를 깨닫고 뒤통수가 띵했다. 사소하지만 무척 공감이 되었던 에피소드는    명의 어머니가 반찬거리를 잔뜩 싸서 보내 주셨을 ,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먹으면 되고. 상대방 부모님에게 거하게 밥을 얻어먹은 날은 최대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순수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 상황이 종료된다는 에피소드. 시댁이나 친정, 어느 쪽이든 일방적인 친절 같은 것은 없다. 기브  테이크라고 할까. 시댁이든 친정이든 뭔가를 보내오면 거기서 해맑게 감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서는 부담에 대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여자 둘이 사는 산뜻하고 가벼운 삶. 지금 저 책을 읽는 20대라면, 비혼의 실용성 그 놀라움을 깨닫고 비혼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결혼을 해버렸고, 아들이 둘이다. 남자 셋과 살고 있는 것이다. 묵직하고, 번거롭고, 어수선한 이 삶을 누군가에게 권장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고 나도 언젠가 남자 셋과 살아 보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의문의 1패라는 말을 여기에 붙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기혼과 비혼 사이에 나는 슬쩍 1패를 선언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본의아니게 아껴서 만나는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