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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Dec 08. 2019

낭만적 여름휴가와
그 후의 일상

기억을 지우는 소주를 마셨습니다







둘째가 아직 두 살. 4인 가족이 구성된 이후 여행 생활에 큰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여행을 어떻게 다녔더라? 아들이 한 명이었을 때 나는 여행에 주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째깐한 아기 한 명 추가되었을 뿐인데 해외여행이라는 게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비현실로 느껴진다. 4인 가족의 해외여행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게다가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 것도 큰 변수로 작용했다. 그동안은 성수기를 피해서 이른 여름이나 초가을에 훌쩍 멀리 여행을 가곤 했는데 여름방학이라는 극성수기에 여행을 하려니 두뇌가 잠시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올해 여름휴가는 계획이 없었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막상 7월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어서, 우리 아들의 첫 초등학교 여름방학을 그냥 집에서 보내자 할 수 없어 급하게 뒤져서 1주일 뒤 초극 성수기의 강원도에 숙소를 예약하고, 우리는 그렇게 강원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강원도를 좋아해서 워낙 자주 다녔지만, 한여름 초극성수기에 여름휴가라니. 바가지요금이 싫었고, 바글바글할 인파는 더 싫었다. 초극성수기에 강원도라니, 무슨 배짱인 건가.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포기하는 심정으로 찾은 여름 한가운데 강원도 4박 5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세한 계획도 달리 없었고 그냥 바다에 나가서 뒹굴뒹굴하거나 하면서 설렁설렁 며칠 지내고 올 심산이었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작렬하는 태양. 지도를 둘러보는데 주변에 계곡이 보였다. 동해까지 와서 계곡이 웬 말이야, 싶지만 이름이 무려 "무릉계곡" 무릉도원의 그 무릉인가? 한번 들러볼까? 해서 갑작스레 찾아가 본 곳이다. 인생에서 이 계곡을 와보지 못했다면 정말 그 인생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어 지는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다녔던 계곡을 모두 무효로 만드는 맑은 물이 흐르는데, 계곡의 폭 또한 굉장히 넓었다. 널따란 바위들은 자연산 미끄럼틀이 되어주었고, 사이사이에 어른 키 높이의 웅덩이도 있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가도 있어서 연령대별로 취향대로 맞춤 물놀이가 가능했다. 백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천 점을 주고 싶었다. 내년에도 꼭 다시 와야지,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되뇌었다. 적당히 우거진 나무들로 시원한 그늘도 있었고. 아무튼 최고의 여름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게 아쉬웠다. 날이 저물고, 하산할 시간. 미련을 남긴 채 숙소로 돌아가 대충 짐을 추려서 이번엔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에 성수기에만 오픈한다는 해변 포차에 가기로 한 것이다. 별 기대는 없었다. 성수기에, 바닷가 앞에서 지저분하고 북적거리고 비싸기만 할 텐데 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정말 지금까지 가본 어떤 바다보다 낭만적인 해변의 노을을 마주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성수기인데? 사람들은 모두 양양이나 고성, 핫플레이스를 점령했고, 애들이 딸려 핫플레이스는 엄두도 내지 못한 우리에게 내려진 자비처럼, 이 해변에는 우리가 거의 전부였다. 바닷가에서 우리가 앉은 파라솔의 거리는 1-2미터 남짓이었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모래성을 쌓고, 어른들은 소주와 맥주를 신나게 섞었다. 오징어회가 맛이 있었고 술이 술술 넘어갔다. 강원도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 정말 올해 한 결정 중에 최고의 결정인 것 같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좋다 좋다, 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함께 온 친구 부부가 서로 서운한 일이 있었고 두 사람이 지난주에 싸울뻔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얘기를 듣다가 내가 복직 이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왔던 억울한 감정이 튀어나왔다. 한번 터져 나온 감정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내가 항상 출퇴근 시에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야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나도 가끔은 저녁에 외출할 일이 있을 수 있는 건데 아무리 배려를 받으며 회사를 다닌다고 해도, 매번 아이 때문에 먼저 나오는 것에 대한 부당한 감정이 화근이었다. 남편에게 얼마 전에 일주일에 두 번은 아이를 픽업해주었으면 한다고, 그래야 공평한 것 같다고 요청을 했는데 남편은 그건 어렵다고 했기 때문에 마음에 쌓인 울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럴 수 있다며 삼켰던 대화였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좋은 분위기의 바닷가에서, 내가 고려하고 이해하고 이겨내야 할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서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남편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도 같다. 그런 후에 작렬히 전사해버렸다. 굉장히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무시무시하게 토해낸 나의 억울한 마음이 남편에게 어느 정도 충격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나는 취했다. 주어진 육아의 의무로 인해 어느 정도 회사생활에서 내가 포기했던 일들에 대한 것. 일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있었는지 표현했던 적은 없는데, 적당히 타협해야 했던 순간들에 대한 설움이 폭발했다. 나는 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데. 왜 나는 왜 못하는데. 왜. 왜.



첫날밤의 마지막 기억이 없다.

둘째 날 밤도 기억이 없고, 나머지 밤들도 모두 기억에서 사라졌다. 숙취도 없었다. 이렇게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죽어라 술을 마셔본 것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기억을 지우는 소주를 마시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내 놓고, 그렇게 기절하는 4박을 보낸 후에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1시간씩 단기 휴가를 내서 아이를 픽업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주정을 부렸는지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토록 낭만적이면서도 엉망징창이었던 여름휴가를 마친 후의 일상에는 생각지 못한 근사함이 보태져 있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늘 묘하고 아련하다. 신비로운 경험의 배경은 역시 뜨거운 여름이 제격이다. 한여름밤의 꿈같은 일들은 20대에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면, 이번 여름 나의 이 낭만적인 여름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까. 잊지 못할 기억만큼이나 강렬하게 모조리 다 지워버리고 만 여름의 기억. 잊지 못할 것 같은데 잊지 못할 기억이 이미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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