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포선라이즈 Dec 26. 2019

의미가 있다는 의미

물건 잘 못 버리는 사람의 육아







얼마 전 결혼 후 처음으로 신발장에서 신발들을 정리하게 됐다. 다음에 정리해야지, 정리하려고 하면 마음이 복잡해져서 정리할 수 없었던 것들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다들 연식이 꽤나 오래된 낡고 촌스러운 신발들로 신발장이 가득 채워져 있다.



10년 전 뉴욕 여행에서 샀던 아디다스 오리지널 스니커즈부터 7년 전 파리에서 데려온 벤시몽들. 9년 전 남편과 아웃렛에 갔을 때 고심 고심 끝에 샀던 가죽 롱부츠는 안쪽에 가죽이 다 마모되어 처참했다. 그 물건을 구입하던 순간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두는 이유로, 나는 마치 작은 고물상의 주인이라도 될 기세다. 기억 속엔 모두 반짝이는 새것의 형상인데 시간이 지나 다들 많이 낡았구나. 더 이상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 물건들에 담긴 의미와 추억들 때문에 버리지도 못하고 이고 지고 살아왔다. 면밀히 말하면, 그 물건에 내가 꾹꾹 눌러 담은 의미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충분히 고물에 가까운 물건들.



이를테면 우리 아들이 처음 신었던 샌들 같은 것이 그렇다. 도저히 그토록 작고 귀여운 초초 초소형 샌들을, 게다가 실제로 내 아기가 착용했던 그 엄청난 의미를 지닌 물건을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그냥 버릴 수 있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있겠지. 있을 거다. 나도 안다. 처음인 순간이 살아가면서 딱 한두 번 정도면 모르겠는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매 순간이 그러했고 돌아서면 또다시 덜컹 생을 뒤흔들만한 의미로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의미 좋아하다가는 고물상을 면치 못하게 되기 십상이고 내가 바로 의미 부여하기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딱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반소매 피케티셔츠를 버리지 않고 해마다 꺼내 입는다. 빈티지한 스타일을 샀던 건지, 입다 보니 빈티지가 되어버린 건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헤졌는데 절대 버리지는 못하게 한다. 나를 만나기 전 애인이 사줬던 건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티셔츠만은 절대 버릴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마도 본인의 가장 젊은 날을 함께 한 그 옷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거겠지.



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사진중에 미니멀& 북유럽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한 신혼집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망가지는 과정이 많은 공감을 샀다. 웃으며 넘기기에는 우리집도 피해갈 수 없던 일이었다.



아들을 키우면서 의미부여에 대해 어느 정도 스스로와 타협을 시작한 지점은 아이의 유치원 생활 만들기 컬렉션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정말 의미를 두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이들이 만들어오는 물건은 의미부여 노다지 카테고리라고 할 수 있는데 거의 매주 만들어오는 스티로폼이나 종이로 만든 전위적인 “작품"들은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아이가 무언가 만들어서 왔을 때는 이걸 나중에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보관했다가 "이게 네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미술작품이야"라고 이야기하면서 꺼내어 보여주고 함께 기뻐할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이건 네가 처음으로 쓴 글씨" "이건 네가 처음으로 그려준 엄마 얼굴" 이건 처음으로 그린 가족 얼굴" "이건 처음으로 제대로 엄마 머리카락을 길게 그려준 초상화"... 처음이고 의미 있는 작품들이 하루하루 쌓여가는데 나조차도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에 다 달았다. 아차 싶었고, 마음은 조금 아프지만 그 위대한 작품들을 놓아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아이가 혹시 그 작품들을 다시 찾기라도 할까 싶어서 조심스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차 없이 재활용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분리수거 시켜줬다. 일년에 54주가 있고, 유치원생활이 3년인데 못해도 100점 이상의 놀라운 작품들을 전시하고 지낼 만큼 우리 집이 넓지도 않아, 조금 빨리 합리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가끔 아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었지만, 사진으로 찍어서 온라인 전시로 대신할 거라며 시대적 배경에 발맞춰간다.



요즘 큰 애가 푹 빠져있는 것은 색종이 접기이다. 그런데 그 색종이 접기 놀이 후에 그 종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도 사실 고민이다. 종이로 무언가를 열심히 접고 만들었는데 종이접기 시간이 끝났으니까 그건 버려도 되는 건지, 그게 하도 많아서 계속 수북하게 쌓이고 있는데 무척 난감하다. 버려도 되는걸까? 나는 어릴 적 색종이 접기 후에 그 작품들을 어떻게 처리했더라.



고물상 주인의 마지노선을 만들어낸 것은 의외로 신발장의 크기였다. 지금 이사 와서 살고 있는 집은 신발장이 이전의 집보다 확실히 작아졌다. 내 소중한 추억들을, 몹시 의미 있는 순간을 기억하는 물건들과 작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신발장 크기 때문이 라니. 퍽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이젠 보내줄게. 이번에야말로 몽땅 정리.



다가오는 새해에는 의미없는 사람으로 살아보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내가 사는 물건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법을 연구해보고자 한다. 필요가 없어졌을때 미련없이 헤어질 수 있도록 물건과의 관계개선에 도전해보기로.

































매거진의 이전글 낭만적 여름휴가와 그 후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