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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15. 2019

어느날, 연애가 중단되었습니다

인생은 길고 연애는 짧아서, 연단녀로 살아간다





요란한 연애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특별했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가 이어졌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연애가 중단되어있음을 깨달았다. 결혼이라는 단어에도 연애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것 같지는 않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결혼:        

현대 서구사회에서 결혼은 이성간의 교제, 구혼기간, 그리고 약혼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최종적인 결과이다


한자의 뜻만 봐도 혼인으로 맺는다는 뜻이지 연애가 이어진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데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결혼 후에도 연애를 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친구를 사귀는 경우다. 그것은 결혼제도에 위배되는 일이다 보니 때로 법적 문제를 수반하게 된다. 걸리면 보통 이혼하게 되는 거니까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이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드라마에서 지진희와 바람이 난 한혜진이 이런 대사를 했었다. 운명적인 사람이 인생에 나타나는 순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운명이라고 믿고 결혼을 했는데 그 뒤에 더 운명적인 사람이 나타났다고. 당시 그 대사에 대한 논란이 왈가왈부 있었지만, 말 자체에 틀린 점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서는 적어도 결혼 생활중에는 다른 사람과의 연애라는 것은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으로는 배우자와 연애를 이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신혼부부 시절에는 연애를 이어나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아주 평범한 일 아닌가. 가끔 둘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차분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와인도 한잔 한다. 손잡고 길을 걷는다.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 한잔 하면서 내 머릿속의 지우개 놀이도 하고, 그러다가 사소한 일로 싸우고 토라졌다가 화해도 한다. 기다리던 영화는 개봉하는 날 심야영화로 봐주고. 어떤 주말엔 한 손엔 리모컨 한 손엔 캔맥주를 잡고 뒹굴거리다가 서로 머리카락 좀 쓰다듬어주고. 뭐 그런 게 연애 아닌가.


아니지. 아니다. 연애는 보다 정서적인 문제인 것 같다.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를 예뻐하고, 서로에게 시간을 할애하며,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길부터 연락을 주고받고 잠들기 전까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직은 재미있는 상태, 그런 거. 설레거나 편안하거나 어느 쪽으로든 감정이 많이 요동치는 사이.


그런 연애를 하지 않고서 결혼을 한 사람이 어디 있나. 연애는 짧고 인생은 길다. 나는 연애라는 단어 자체에 매료되었던 순간도 있었다. 글자를, 단어를,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애. 발음을 해봐도 좋고, 글로 적어놔도 보기 좋다. 결혼 후에 연애를 대체하는 것은 아마도 "육아"였다. 둘 다 ㅇㅇ 을 이니셜(?)로 가지는 단어다 보니 "연애"에서 육아로 넘어가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연애 대신 육아라니 너무 가혹하진 않나. 물론 육아의 순간순간에 나는 연애감정을 느끼곤 했다. 자꾸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뽀뽀하고 싶은 그런 기분. 인간에게 필요한 일정량의 스킨십이 정해져 있다면 연애기간이 지나간 후 일상의 스킨십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기가 태어난 이후다. 아기는 너무 부드럽고, 쫀득쫀득해서 중독적인 존재.라고 삼천포로 잠시 빠졌다가.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한참 예전에 히트를 쳤던 청첩장 헤드라인 카피는 "연애 끝, 결혼"이었다. 당시에는 카피가 기가 막히게 좋다,라고 감탄했다. 짧고, 간결하며, 무엇보다도 결혼이 굉장히 설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연애를 대체할만한 그런 막강한 일인가 보다, 느껴져서 그 헤드라인을 쓴 사람의 (남자 아트 디자이너였다) 인사이트를 두고두고 부러워했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얼마나 슬픈 카피였는지. 결혼으로 말미암아 연애 종료를 안내하는 카피. 그 당시 결혼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그 청첩장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들 지금의 나처럼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은 거였나.



회사에서 나의 10년 후를 그려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별로 멋지지 않은 모습의 선배들을 보고 회사를 그만뒀다고. 저렇게 되기 싫어서 서둘러 회사를 나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결혼생활의 10년, 20년 후를 그려보려고 주위를 둘러본다. 공원이나 여행지에서 다정하게 손잡고 거니는 중년의 커플을 보면 열에 여덜아홉은 부부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나는 다를 것이다, 생각했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연애를, 로맨스를 계속 이어나갈 자신이 있는지. 생활에 치여 세월에 치여도 연애가 남아있는 그런 귀여운 중년이 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평생 연애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까, 라는 생각도 한다. 연애가 무조건 다 좋았나? 생각해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결혼해서 어느정도 느슨해진 감정으로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 그렇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거다. 볼때마다 매번 두근거리면 그거 심장병 아니냐고,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 같지만 일리가 있다보니. 연애가 단절된 것을 받아들이고도 살아가는거 아닌가.




 요즘은 동백꽃필 무렵을 보면서 강스카이와 연애하고. 그 전에는 검블류의 직진남 장기용과도 연애를 했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가 돼서 정해인한테 밥을 실컷 사주기도 하고, 멜로가 체질이라며 다소 찌질한 남자와도 만났다.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시선이 너도 이제 아줌마 다됐구나,였다. 드라마 본방사수 시간에 보통 현실 연애 중인 미혼남녀는 밖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퇴근 후 아이들 씻기고 재우고 나서 드라마 보며 캔맥주 따고 즐거워하면 아줌마라는 것이다. 그 의견에 반론을 펼칠 수가 없다. 연단녀의 현실적인 연애 충전은 아무래도 드라마임을 인정한다. 아이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다소 다급한 마무리 같지만, 세상의 모든 드라마 작가와, 제작사, 배우 스탭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백번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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