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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21. 2019

39.9  내나이가 어떻습니다

남아있는 청춘이 마흔으로 수렴되고 있다





예전 같지 않아





아주 오래전부터 예고되어온 40대. 주변에 먼저 그 지점에 도달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살벌하고 우울했다. 너도 내일모레면 마흔이라고. 아직 오지 않은 마흔을 상기시켜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겁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겁이 났다. 한방에 훅가더라는 생생한 경험담. 그런 후기를 듣지 않아도 사실 마흔 살이 되는 일은 충분히 미뤄두고 싶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표현에는 구차함을 느꼈다. 마흔이면 마흔이지, 두 번째 스무 살은 뭐람. 막상 40일 정도 후에 나도 그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니까 마흔이라는 단어가 아니라면 그게 뭐든 붙잡아야 할 것 같다. 서른이 되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무방비한 상태로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흔은 불혹이라고 했다. 인생의 모든 의혹이 사라지는 시기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의혹이 없어지기는커녕 모든 것이 의혹 투성이인 지금 상태에서 나는 마흔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흔의 문턱에서 자격미달이라고 마흔 되기는 글렀다고 부디 부적격 판정으로 탈락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30대의 마지막을 미친듯이 붙잡고 싶다는 뜻이다.


변화무쌍했던 삼십 대를 돌아보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아이를 또 낳았다. 싱글에서 커플로, 미혼에서 기혼으로, 아내에서 엄마로. 신분상의 변화를 쉴 새 없이 겪었던 나의 삼십 대. 화려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얼마 남지 않은 삼십 대에 대한 이 미련들을 어쩌면 좋을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는 광고역사에 오래 남을 명카피이지만, 나는 나이를 그저 숫자로만 생각할만큼 쿨하지는 못하다. 초조하고 불안하게 그러면서도 어찌보면 한심하게 39.9살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삼십 대가 되면 세상 신나는 일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젊고 활기차고 가장 즐거운 시기였다. 기억이 어느 정도 미화되었으리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때 참 좋았다. 삼십 대 초반이면 회사에서 보통 대리쯤. 그전보다는 월급 숫자도 더 커지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지 보이기 시작해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담당자가 되어있다. 인생에서 나 스스로에게 가장 신경과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시절이다. 20대에는 고민과 의욕은 많은데 벌이는 적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 줄 잘 몰랐다. 서른 살이 되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비싼 명품 가방도 사봤고, 화장품도 제일 좋은 것만 썼다. 마사지샵도 정기권을 끊어 놓고 다녔던 것도 그때였고, 미용실에도 자주 갔다. 대출이 뭔지도 몰랐고, 여행도 거침없이 다녔지. 좋아 보이는 건 다 해봤다. 그냥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나한테만 쏘고 돈도 나한테 가장 많이 쏘는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지나간 후에 깨달은거지만.


사십 대가 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시무룩해진다. 주름이 늘어가고, 즐거운 일이 더 이상 없는 시기로의 진입. 그 느낌만으로도 이미 조금 더 늙어버렸다. 실제로 주변의 40대는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쉽게 신나서 들뜨는 법도 없고, 대체로 시니컬했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건지, 감정을 감추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해서인지 당췌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39.9살이라고 39.99살이라고 우긴 들. 내 청춘이 보존되나. 마흔이 두려운 이유는 40으로 수렴되어 청춘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아쉬움의 정체는 청춘과의 영원한 작별에 대한 것이었다. 어딘가 엉성하고, 어설프고, 그럼에도 충만했던 청춘이 끝나버린 것. 나는 더이상 어설플 수가 없다.


어제 우연히 회사의 인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동승했다. 인턴 세명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엿듣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십 대의 목소리는 이렇게 또랑또랑한 거구나. 그 목소리 톤과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는 어리다" "나는 20대다"의 기운에 잠시 주눅 들어 버렸다. 목소리도 나이드는건가. 그 인턴들과 멀어진 이후에 혼잣말을 중얼중얼 해보면서 문득 내 목소리의 우중충함에 혼자 놀라서 입을 막았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 더 이상 "와 너는 어쩜 하나도 안 변하냐, 똑같다"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그런 말을 웃으며 주고받았을 때에는 정말 서로 별로 변하지 않아서였음을 이제 조금 알겠다. 깊어가는 주름과 함께 나는 그 어떤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마흔으로 끌려가고 있다. 흐르는 세월 막을 수도 없고, 우리는 그렇게 마흔이 되겠지만. 피할수 없어도 끝까지 피하고 싶은 지금, 내 나이가 어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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