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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an 03. 2020

부자가 되고 싶다

내가 되고 싶은 부자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월급통장을 개설하면서 은행에 방문했다. 적립식 펀드와 청약저축을 권유받아서 하나씩 만들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부자가 되는 건 줄 알았다. 순진하고, 해맑은 시절이었다. 월급이 많지 않았던 시절인데 많았다. 먹고싶은 것을 먹고 입고싶은 옷을 사입어도 돈이 남았다. 저축도 하고 꿈도 많았다. 대출은 도서관에서만 하는건줄 알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면서도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월급이 두 개가 되었으니까 금방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조금씩 아껴 쓰고, 저축액은 늘리기로 했다. 이대로 쭉 이어가면 머지않아 부자가 되는게 틀림 없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났다. 아직 부자 근처에 못 갔는데 덜컥 아이가 등장한 것이다. 생각지 못했던 육아휴직을 하면서 일 년 동안 경제생활이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리하게 들어놨던 적금은 해지했다. 두 개의 월급일 때만 가능한 금액을 월 납입액으로 산정해두었던 거라 당장 육아휴직을 하면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복직을 하면서 다시 가열차게 경제생활에 몰두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열심히 회사에 가고 월급을 챙겼다. 물론 아이를 돌봐주시 친정엄마에게 섭섭지 않은 용돈을 드려야 했다. 결혼 초기에 호기롭게 들었던 적금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저축을 할 수 있었다. 대여섯 살까지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5세 반을 폐쇄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섯 살부터 사립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한 유치원은 영어유치원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돈이 나가기 시작했다. 한 달에 70만 원 정도의 유치원비를 결제했다. 그렇게 3년이면 대학 등록금 아닌가.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종일반으로 긴 시간을 유치원에서 알차게 보내게 하려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최선이었다.



명절은 자주 돌아왔고, 가족도 많고 경조사도 많았다. 돌아가면서 줄줄이 결혼하는 나의 사촌동생들과 해마다 졸업하고 입학하는 시댁의 조카들. 설날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명절이었다. 움직이기만 하면 돈이 줄줄 나가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그런게 설날이었다. 어린이날이 지나면 어버이날이고, 어버이날이 지나면 양가 아버지들의 생신이 돌아왔다. 양가 어머니의 생신이 지나고 나면 추석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평일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가 주말에 몰아서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시간을 채우려니 지출이 많았다. 이제 조금만 다니면 유치원을 졸업하겠다 싶을 때,  둘째가 생겼다. 둘째가 생겨서 또 한 번 하나의 월급이 막히는 일년. 복직을 하고 보니 큰애가 초등학생이 되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녹록치 않구나. 남들 다 부동산에 투자할 때 나도 관심은 있었다. 그래 이거야, 갭 투자를 해봐야겠다. 4년 전, 그런 결심을 하고 부동산 관련 책을 몇 권이나 읽었다. 집을 산다. 전세를 낀다. 차액은 대출을 받으면 굉장히 적은 돈으로도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굉장히 간단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집값이 오르면 그 집을 판다. 은행이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차액을 챙긴다. 이거야, 싶었다. 그런데 텍스트로 보는 갭 투자는 그렇게 쉬워 보였는데 막상 실제로는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억짜리 집을 매매하면서 발품을 팔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핑계라면 핑계지만 시간이 없었다. 사실 발품을 팔아서 집을 본다고 한들 초짜의 눈에 좋은 매물을 알아볼 수 있나.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아이도 키우고 회사도 다니고 틈틈히 남편이랑 싸우고 엄마한테 욕도 먹다보니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정신차려보니 갭 투자를 막는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난 후였다. 망한 건 아닌데 자꾸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살고 저축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판타지가 되어버린 시대다. 부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래부터 부자이거나 처음부터 부자이거나. 좋은 대학을 나오고 제법 큰 회사를 다녀도 부자는 멀게만 느껴지는 시대. 흙수저 고학력자가 가장 억울한 시대라고 했다. 예전에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 가면 금방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부자 비슷한 게 되는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린다.



누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아무래도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처럼 와닿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그런 부자는 되기 어려울 것 같다. 몇백억 대 부동산을 소유한다거나, 갑자기 시대를 잘 타서 시의적절한 사업으로 대박이 난다거나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포기라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해본다. 부자가 되긴 되야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 할지 다시 검토해보고 있다. 열심히 살기만 해서는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나는 그렇게 운이 좋은 편도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부자는, 12월 31일 동해바다에 해돋이를 보러 갔다가 동명항 아무 횟집이나 들어가서 바가지요금인걸 알면서도 두세배 높아진 요금의 대게를 호기롭게 시켜 먹는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부자다. 가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서 아무 날도 아닌데 갖고 싶어 했던 그릇 같은 것을 선뜻 선물하는 그런 부자. 교보문고에서 아이가 고르는 책을 한 권도 빼지 않고 죄다 사줄 수 있는 그 정도의 부자. 나는 부자가 간절하다.



여전히 돌아오는 설날이 두렵고, 돈나갈 일은 수두룩하지만

2020년 새해의 소원은 역시 부자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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