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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an 07. 2020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아이를 낳은 후 7년 불면의 기록







늦잠꽤나 자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나도 한때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은 부류의, 아침형 인간이랑은 거리가 한참 먼 그런 사람이었다. 1교시 강의는 믿고 거르는 늦잠형 인간, 그게 바로 저에요. 자랑할일은 아닙니다만.



아이를 낳고 나서 불면증이 찾아왔다.



내가 낳은 아이는 밤잠을 잘 자는 착한 아이였다. 운이 좋았다. 그런데 나는 젖량이 상위 5프로 안에 드는 경우였다. 유축을 반드시 해야 하고, 최대 3시간 단위로 유축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가는 세상모르고 쿨쿨 자는데 혼자 깊은 밤중에 일어나 눈물을 머금고 고독하게 유축기를 돌렸다. 그렇게 비참한 기분은 또 없을 것이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독하고 원초적인 고통이었다. 무튼, 그 무렵부터 나는 밤에 주기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기가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새벽부터 눈이 떠지는 나날들. 그와 반대로 어떤 소란에도 코를 드르렁 골면서 램수면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선 감각은 부러움이었다. 그 어떤 소음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남편의 고막에 작동 하고 있다. 할 수 있으면 나도 그 장치를 내 귀에 시공하고 싶었다.



출산 이후 단 한 번도 늘어지게 잠을 자본일이 없다. 그렇다고 눈을 떠 있는 시간에 부지런하게 집안일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잠을 잘 못 잤다는 얘기다. 내가 소원이 하나 있다면 토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해가 중천에 떠있는 상황. 아침밥이고 아이고 뭐고 다 모르겠고 늘어지게 자고 싶다.라는 소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늦잠을 자면 화가 났다. 누군가 내 소원을 대신 실천하고 있는게 용납되지 않았다. 남편은 금요일 밤에 술을 마시고 밤이라기에는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들어와서 토요일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그야말로 늘어지게 잤다. 잘만큼 자고 일어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도 아직 한참이나 눈가에 잠이 서려있다. 수면 능력도 능력인가 보다. 나는 수면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남자와 여자는 유전적인 차이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못 듣고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어도 사실이 아니어도 억울하다. 남편은 새벽에 갑자기 깨서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잠을 못 잔다. 한동안은 새벽에 깨서 등이 가렵다는 아이의 등을 긁어주느라고 새벽잠을 반납했다.



어떤 날에 하얗게 밤을 지 새우고 나면 걱정이 앞섰다. 막상 해가 뜨면 회사를 가야 했고, 회사에서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꿈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꿈같은 나날들. 충혈된 눈으로 유령처럼 회의를 했다.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지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기분이었다.  잠깐 졸거나 하는 쪽잠스킬은 내것이 아니었고 잠 못 드는 고통이 날로 더해갔다.



너무 잠이 안 와서 수면보조제를 시도했다.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왜 새나라의 어린이들은 일찍 일어난다는 프레임을 만들었을까. 우리 집에도 새나라의 어린이가 살고 있었고, 주말이면 더 일찍 일어나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 작은 목소리 한 번에 눈이 번뜩 떠지고 수면보조제가 무색해졌다. 몇번을 더 복용해봤지만 수면의 질을 향한 노력은 무산됐다.



상대적으로 잠천재인 남편 덕에 불면증으로 인한 박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몇차례 함께 유럽에 가도 시차 적응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류의 인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램수면. 수면에도 학위가 있다면 남편은 수면 석박사이면서 수석도 가능하다.



하여, 나는 알람 없이 산다. 어차피 새벽 1시, 3시, 5시 두세 시간 주기로 눈을 뜨기 때문에 알람이 필요하지 않다.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하느냐의 문제이지 새벽에 일어나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



하루에 7시간이나 6시간을 한 번도 끊기지 않고 푹 자는 상상을 한다. 그런걸 꿀잠이라고 하던데. 잠이 얼마나 달면 꿀이라고 할까. 밤에 잠이 들었는데 알람이 울려서야 겨우 아침인걸 알고 깨거나, 알람이 울린 줄도 모르고 자버리는 그런 달콤한 잠을 자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페이드아웃이 되면서 시간점프를 해본다)

초신입사원 시절에 워커힐호텔에서 행사를 준비하다가 밤늦게 숙소에 들어갔다. 정말 눈물 쏙 빼게 무서운 사수가 아침에 7시까지 행사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알람을 단단히 맞춰두고 잤다.  다음날 누가 문을 한참 두드려서 그제야 눈을 떴다. 호텔 직원이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있었다. 그 시간이 되도록 내가 나타나지 않아서 선배들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돼서 사람을 보냈던 거라고 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세상모르고 잘 수 있었던 수면 능력자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밤잠이 많아서 공부도 12시 이후에는 못했다. 시험 전날 오늘 꼭 밤새서 공부해야지, 다짐하고서 책 쌓아두고 곧바로 잠들었다. 한 번도 어기지 않고 그대로 눈이 감겨버린 대참사. 엄마는 그런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방 불을 슬쩍 꺼주고 나가셨다. 아침이 되면 엄마! 나 왜 안 깨웠어!! 난리법석을 하고서 학교를 향하던 나.



오늘 밤도 잠이 오지 않는다.

눈뜨면 아침이기를 바라면서 눈을 감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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