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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an 14. 2020

방학은   쉬는 거 아니에요?

1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들이 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생각보다 별일 없이 학교를 다녀줘서, 우려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1년을 보냈다. 안 힘들었다기보다는 정도가 예상치를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걱정했던 내용은 주로 그런 것 들이다. 1학년이면 1시에 하교를 하는데, 맞벌이 가정이라 돌봄을 신청하고 4시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것에 부당함을 느끼면 어쩌지. 다른 친구들은 집에 가는데 나는 왜 못 가지 하는 식의 비교 프레임을 제시해올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 1학년은 아직 어렸다. 가끔씩 "나도 놀이터에서 놀고싶어" 라고 했지만, 주말을 기약했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은근슬쩍 그렇게 넘어갔다. 이제 겨우 여덟살의 아이가 아침 9시에 학교에 가서 돌봄을 마치고 학원 두 군데를 거쳐 6시나 되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일과를 소화 해내는 것이 어쩌다 당연한 일이 되었을까.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지낸다고 일반화 시키면서 미안한 감정을 외면했다.


첫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한 달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방학이라는 게 원래 학교를 안 가서 방학인데 돌봄 교실로 매일 아침 등교시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억울할 것 같은 상황이다. 어디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더라, 주중에 워터파크에 간다더라, 여러 가지 신나는 방학 이야기에 마음이 요동쳤다. 하지만 나는 직장인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렇게 여름방학도 꾸역꾸역 지나갔다.


이제 막 아홉 살이 된 첫째는 몸이 훌쩍 자란 만큼 생각도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방학중에 학교를 나가는 일에 대해 불만이 생긴 것 같은 눈치였다. 지난 일요일 밤 잠들기 전에 몇 번 망설다가 말을 꺼냈다. 한겨울에 나타난 모기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꺼낸말은 "엄마... 방학은 원래 집에서 쉬는 거 아니에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뭔가 쿵 하고 내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냈다. 순간적으로 맞다고 할뻔했어.


"방학은 놀라고 있는 거 아니야. 방학에는말야 학교 다니면서 못했던 것들을 집에서 공부도 해보고 경험해보는 거거든? 그런데 돌봄에 안 오는 친구들도 다 하루 종일 학원 가고 더 많이 바빠. 방학이라고 쉬고 놀고 그러는 친구가 어딨어"


당황하지 않은척, 내가 한 말이지만 누가 들었을까 봐 창피한 소리였다. 이렇게 표리부동할 수 있나. 아이들은 방학을 누릴 권리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던가, 생산성 없이 보내도 좋을 그런 자격이 있어서 어린이인 것이다. '신나는 방학'을 보낼 권리를 박탈당해 억울했을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갔으면 좋겠는데 너무나도 이해가 간다. 늦잠도 자고 아침에 내복만 입고 집에서 굴러다니고 싶은 그 단촐한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워킹맘을 방학 때마다 엄습했을 비슷한 고민들이 어딘가에 쌓여있을 것만 같았다.


약간 울음기 섞인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져서 휴가를 낼까 생각했는데 당장 월요일부터 회의가 있었다. "내일은 돌봄 교실에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오면 되잖아. 구몬도 하지 말고 그냥 제일 재밌는 것만 해도 돼. 색종이 박스도 가져가서 접고 싶은 만큼 접고. 점심에도 먹기 싫은 거 나오면 남겨도 괜찮아. 알겠지?"





지금까지 나는 방학이 없으면 그때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내 그런 생각에 큰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요즘 어떤 아이들은 방학에도 방학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아이가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자라고, 방학에도 더 이상 돌봄에 가지 않고도 엄마 아빠가 출근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때의 방학은 좀 나을까. 그 방학은 또 이 방학과는 다른 의미일텐데.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1학년 겨울방학은 지나가고 있다. 다음 주에는 평일에 연차를 하나 내서 큰 아이와 둘이 롯데월드라도 다녀와야겠다. 방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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