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포선라이즈 Dec 02. 2019

나를 위해 밥상 차릴자 누군가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새벽부터 밥상 차리는 일이 지겨워졌다





옛날 옛적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에서도 몰래 나타나 밥상을 차려주는 건 우렁각시뿐이었다. 그 어떤 판타지의 히어로나 키다리 아저씨도 몰래 밥상을 "매번" 차려주지는 않았다. 역사적으로도 밥상이라는 게 차려주기 쉬운 게 아닌 모양이다.


날이면 날마다 밥상을 차려준 건 엄마뿐이었다. 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누군가 결혼을 해서 집들이에 초대되었을 때, 그날 초대된 타인들을 위해 정성껏 차린 감격스러운 밥상을 마주할 수 있다. 그나마도 아주 특별한 이벤트일 뿐이고, 날마다의 밥상은 받는 것이 아니라 차리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혼을 한 보통 여자들, 혹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간혹 요리를 즐기며 사는 매우 다정한 남자를 배우자로 맞이한, 특수한 경우도 없는 건 아니지만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소수라 자체적으로 거른다. 그런 남자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남편이거나, SNS에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나. 현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의 밥상이 내 의무로 주어져있다. 나도 회사를 다니고 남편도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퇴근 후에 밥상을 차려야 하면 그게 당연히 내 몫인 이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중이다. 아침에 출근 준비보다 애들 먹일 밥상을 차리는 게 우선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자기가 씻을 시간만 계산해서 알람을 맞춘다.



나 밥 차리는 거 너무 싫어

 

얼마 전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인데, 듣자마자 나도 밥 차리는 게 너무 귀찮은 날이 많아졌음을 깨달았다. 아 맞아. 나도 밥 차리는 거 스킵하고 싶은 날이 많아. 그런데 밥상은 스킵이 안 되는 일이다. 밥을 차리는 동안 내내 드러누워있던 남편이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는 피곤하다며 스킵한다. 아침에 할 거라고 스킵할 때 굉장한 부당함이 차오른다. 물론 남편이 피곤하니까 내일 아침에 설거지하는 게 뭐가 나쁘냐 할 수 있겠지만, 나라고 드러누워있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데 어째서 밥을 차리는 걸 거르면 안 됐고, 설거지는 쉽게 스킵이 되는 건지


주말에도 밥을 거르면 큰일이 나는 편인 남편과 살고 있다. 적당히 아무것도 안 하는 주말에는 두 끼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눈만 마주치면 밥 안 먹어? 배 안 고파? 물어봐서 부담스럽다. 솔직히는 상상 이상의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자꾸 나한테 밥에 대해 묻는 거지. 나는 먹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밥상을 차려야 하는 입장인가. 남들은 간헐적 단식도 하고 일부러 공복도 즐긴다는데 온종일 화장실을 대여섯 번씩 가면서도 챙겨 먹는 밥에 대해 질리는 기분도 든다.


아이들의 밥을 챙기는 것도 그렇다. 모성애는 모성 애고 밥상은 밥상이다. 애들 밥 한 끼 거르면 큰일이 날 것처럼 아침저녁 챙겨 먹이는 것은 왜 엄마의 역할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밥상을 챙기는 거겠지만. 분명 동등하게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가정에서 아내에게만 주어지는 핸디캡인 건지, 그거 누가 정한 건지 궁금하다.


결혼 직후의 여자들은 밥상 차리기에 심취되는 시기가 있다. 자신이 아니라 남편을 위한, 혹은 가끔씩 신혼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밥상이다. 아기자기하게 이제 막 살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귀찮기보다는 성취감을 느끼면서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정작 본인의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은 없어지는 순간임을 인지하지 못한채 이제 막 시작된 밥상 차리기의 기쁨에 취해있는거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새댁들에게 밥상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변의 친구, 동생들을 불러서 정성껏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 누군가 집으로 초대해서 밥상을 차려주면 당사자들은 굉장히 기뻐했다. 즐겁게 식사한 후에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냥 두고 가라고 했다. 그래야 온전히 대접받은 기분일 것 같아서. 그러고 나면 나도 뭔가 흐뭇했다.


적다 보니 삼천포로 빠진 본격 투덜거림 에세이, 나는 요즘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없다. 나만을 위해 정성껏,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냥 맛있게 먹어주기만을 바라면서 차려낸 그런 밥상 말이다. 퇴근 후에 우리 집 근처의 친정집에 가서 밥을 먹어도 그게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퇴근 후 밥 차려 먹는 일이 녹록지 않은 것을 배려해서 엄마가 밥상을 차려주실 때가 있는데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엄마가 피곤해 보이시면 그냥 죄송하고 해서 되도록이면 별거 없더라도 내가 직접 차려먹으려고 노력한다.



자고 일어나면 당연하게 차려져 있던 날마다의 밥상이,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라는 것. 우렁각시는 아니더라도 집에 입주도우미를 두면 밥상도 차려주시고 한다던데, 돈을 지불해서 받는 서비스가 아니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위해서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이라는 게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게 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투덜거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밥상과의 이별을 직시 하면서 12월을 맞이했다.  정신 차려야지 밥상 차려야지 하, 바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