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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Feb 19. 2020

입맛이 잘 맞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김 스팸 씨에게 패배했습니다.









결혼생활이 8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결혼을 기점으로 관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연인에서 타인으로 현실적인 생활밀착형 관계가 됐다. 감정에 휩쓸린 연애기를 지나, 결혼 초기에 많이 다투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랑만으로 유지되기에 결혼은 너무나도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생활습관이라던가 식습관 같은 것을 매우 가까이에서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을 목격하고, 간섭(?)하게 됐다.


결혼 생활은 타인과의 다른 점을 끊임없이 극복해가는 과정이었다. 너무 현실적인 표현이라 쓸쓸하기까지 한 이 부분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슬퍼할 것도 없다.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이니까.


결혼 전에는 남편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좋아한다고 맞장구 쳐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죄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일이 있을 수 있냐던 남편의 눈동자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결혼을 하고 보니 많은 것이 사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대 포장되었던 남편의 리액션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나니 우리에게 남은 공통점은 많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는 나에게 자전거를 타고 50km씩 라이딩을 다닌다고 했는데,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런 라이딩은 딱 한 번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결혼 후에는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았다. 내 눈에는 자전거 라이딩을 무척 귀찮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운동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귀찮아한다. 엉덩이가 매우 무겁다. 한 번에 벌떡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편 뮤직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취향이 너무 잘 맞겠다고 맞장구치던 남편은 현재 15년 전 직장 후배가 구워줬다는 시디 말고는 새로 듣는 음악이 없다. 그래 뭐 문화적 취향은 다를 수도 있다고 하자. 결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어보는 것을 즐긴다고 했는데 남편과 나는 서로 맛있는 음식의 기준이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던 모양이다.


나는 편식이 없는 타입이다. 데이트 시절 남편이 먹고 싶다는 음식은 주로 수타짜장면과 탕수육, 아니면 돈가스, 아니면 치킨, 아니면 떡볶이와 튀김이었다. 한동안 남편이 먹고 싶다는 것 위주로 만날 때마다 먹으러 다니다가 어느 날 나는 위장병을 얻었다. 잘 먹지 않던 기름진 음식을 짧은 기간 과다 섭취해서 생긴 일이었다.


결혼 후, 새댁 모드에 심취해 있을 때 한창 이런저런 제철음식을 요리하는데 꽂혀서 나는 굴국밥이라던가, 바지락 순두부찌개 같은 음식을 만들어서 야심 차게 내놓았다. 식탁위에는 봄동무침이라던가 달래전, 톳밥 등등 건강한 맛의 메뉴도 종종 등장했다. 제주도 여행 후에는 옥돔도 구워서 올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침부터 제철 생선을 굽는 날도 많았다. 오빠 지금은 이걸 먹어야 한대, 하면서 아마도 귀여워 보이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식사를 권했는데 남편은 조금 머뭇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이랑 스팸 꺼내도 돼?"


과일을 챙겨주면, 내가 못먹을 걸 내놓은 것처럼 표정이 누그러지고 거절의 손짓을 했다. 김치를 꺼내면 한 조각만 먹었고, 동태찌개는 국물만 떠먹고 건더기는 고스란히 남겼다. 기운이 없다 해서 백숙을 끓여놓으면 외면. 처음에는 순수하게 남편의 식습관이 건강에 좋지 않아 보여 걱정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다면 조금은 건강한 쪽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오빠, 야채도 좀 먹어 라고 말하면 "싫어하는걸 억지로 먹으면 그게 건강에 더 좋지 않다"라는 생각지도 못한 논리력을 발휘했다. 머지않아 남편의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식만 도전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어른 입맛의 반찬들이 식탁 메인 자리에 오르면 남편은 어김없이 김스팸 씨를 찾았다. 충격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반찬을 했는데 먹을 것이 없다면서 김스팸 씨를 찾아오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깨작거리며 먹느냐고 하면, 맛이 있으면 나도 많이 먹는다, 라는 말을 당당하게 말한다. 김스팸 씨와의 경쟁은 의욕적이던 새댁에게 말도 못 할 패배감을 선사했다. 정정당당한 입맛의 세계에서 msg에게 패배를 시인한다. 하지만 남편의 편식이 가져온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남편과의 식성 차이는 보다 심오한 문제를 갖고 있다. 내가 언제나 먹고 싶은 심심한 을밀대 평양냉면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뜨끈~한 한그릇 하동관 국밥의 맛을 모르고, 한밤중에 시켜먹고 싶었던 엽떡을 남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매일 먹고 싶어 하는 햄버거가 나는 즐겁지 않다. 회를 초장 맛으로 먹는 남편과, 튀김을 즐겨먹지 않는 와이프. 우린 영원히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쁨을 진심으로 나눌 수 없는 건가. 아 맞다. 남편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이해 못한다. 맛이 없는데 그걸 왜 마시냐고. 후. 모든 순간, 모든 음식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절망적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의식주, 세가지로 정의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부가 밥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 중에 하나쯤 안맞으면 어때 싶다가도 한밤중에 남편이 사들고 온 음식은 내가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고, 내가 남편을 위해 제안한 야식은 남편이 꺼려하는 생활. 남편도 아마 나만큼 우울할지도 모르겠다.


둘이 다투다가도 둘 다 좋아하는 매운 닭발이 먹고 싶어서 화해를 한다,라고 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꿈만 같은 이야기다. 오빠 닭발먹고싶다, 라고 하면 닭의 발까지 굳이 먹어야 하냐는 남편의 대답은 마치 애써 찾아간 홍미닭발집 문앞에서 알게된 연중휴무 소식 만큼이나 나를 허탈하게 한다. 성격 취향 생활습관 모두 다 중요하지만, 기왕이면 입맛이 잘 맞는지도 한번 고려해보기를. 오랫동안 같이 살아갈 사람을 고른다면 말이다.



지금, 입맛이 잘 맞는 사람과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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