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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Mar 03. 2020

엄마가 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집에 끼치는 영향






평소에도 엄마로부터 전화가 자주 온다. 보통 아침부터 사이사이 온종일 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문자보다는 통화를 편하게 이용하시기 때문에 늘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늘 오전에도 어김없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엄마는 요즘 많이 바빴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신 외할머니 곁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우한 폐렴 기사가 터져 나오던 무렵이었다. 지난 설날 즈음 혈액암 판정을 받은 외할머니는 너무 연로 하시기 때문에 항암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했다. 그냥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한 달 사이 우한 폐렴이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코로나 19가 됐다. 보이지 않는 공포로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가운데 중국 우한에 이어 바이러스로 인한 화제의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집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적지 않다. 위독하신 외할머니 면회가 강하게 제한되어버렸다.


결국 지난 한 달 동안 엄마와 큰외삼촌 등 환자 당 허가된 극 소수의 면회자 이외의 사람들은 할머니를 뵐 수가 없었고 엄마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할머니의 상태를 짐작만 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여느 때처럼 그냥 걸었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도저히 그냥이 아니었다.

“다음 주면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야 돼. 여기선 더 치료할 게 없다고 퇴원하라고 하잖아. 요양원에 가면 더 면회를 할 수가 없어. 코로나 때문에 아예 안될 거야. 할머니 드리려고 미역국이랑 찰밥을 해왔는데 이게 할머니한테 내 손으로 차려드리는 마지막 밥인데 한술 밖에 못 드시는 거야. 병원을 옮겨야 한다고는 얘기해드렸는데 요양원인 줄은 몰라. 혼자서 물도 못 마시는데... 거기 가서 얼마나 놀라실지.. 어휴..”



엄마가 울먹거리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필이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할머니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준비하거나 지켜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눈물로 고스란히 터지는 중이었다.



나에겐 언제나 무서운 사람이고, 단단하며 강한 우리 엄마가. 누구보다 씩씩하고 기세가 넘치는 그런 우리 엄마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기 엄마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먀는.


흑백사진 속에 앳된 모습으로 접한 게 전부인 외할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로 여섯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육 남매 중 큰딸이었던 엄마는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키웠다. 야무지고 영리했지만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일터에 나가는 것을 선택했고, 예쁘고 어린 딸이 퇴근하는 시간이면 항상 버스정류장에 나와서 기다리셨다는 작고 귀여운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이야기들을 왜 전부 기록해두지 않았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려고 하니 가물가물하다. 방학이면 외할머니 집에서 보내던 시간들, 할머니가 해주신 정갈한 음식들. 조용하고 소박하기만 하던 우리 외할머니의 말투와 표정. 많이 기록해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딸 수준은 못되더라도 최소한의 기록을 틈틈이 남겨뒀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외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서부터 엄마는 앓아누워있다. 지난 한 달 사이 4kg이 빠졌다고 했다.


이 기분이 낯설어서 곰곰이 감정을 톺아보다가 내가 태어난 이후 우리 가족의 구성원은 쭉 늘어나기만 했고, 단 한 번도 감소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가와 친가 전체를 두고 봐도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조부모님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이 결혼을 하면서 집집마다 두세 명씩의 자녀를 뒀고 그 자녀들이 이제 순서대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난다.


8살 때 고모가 결혼할 사람이라고 데리고 왔던 고모부에 대한 낯섦을 시작으로 한 명 두 명 사촌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의 감정들이 쌓여가고 가족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은 노련해졌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어쩌면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중심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차츰 열어둬야 하는 차례일까.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빌어왔던 바람의 끝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지는 외면하고 살았다.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서 하루하루 가슴이 쿵쿵거린다. 코로나 19가 별 탈 없이 종식되었으면, 그리고 우리 할머니를 다시 만나서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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