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포선라이즈 Mar 08. 2020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은 처음이라서





우리 가족 모두
장례식의 당사자가 된 것은 처음이다.


죽은 사람을 처음 봤다.
할머니가 누워계시는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잠든 모습과 다르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울고 있다.

처음으로 살아있지 않은 사람을 보는 것이다.
할머니를 만져봐도 되는지 손을 잡아봐도 되는지
궁금해하다가 망설임을 멈추고서 할머니 손을 잡아봤다. 살아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할머니의 손은 우리 엄마의 손과 많이 닮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할머니도 마스크를 쓰고 계신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데도. 할머니의 숨길이 우리와 섞일 가능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인데도 우리는 서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다.

할머니를 하얗게 둘러서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순간 할머니의 죽음이 조금 사실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게 아니라 부축이 아니라 할머니의 몸을 “옮기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이모들과 삼촌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울면서 그 뒤를 따른다.

상조에서 나온 장례지도사라는 분이 차분하게 사망 당일 결정해야 하는 일련의 일들을 안내해주신다. 목소리 톤은 중립이다. 슬픔도 기쁨도 섞이지 않은 감정이 배제된 말투. “가입하신 상품은 VIP플러스라는 상품으로 수의는 기본으로 나올 거고요 상복은 남자 3벌 여자 10벌이 기본 제공됩니다. 도우 미분들이 세명 10시간 지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 이후에 더 요청하시면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화장터인데요 예약이 풀이라서 오후 2시 50분 자리밖에 없어요. 벽제 화장터는 자리가 아예 없습니다. 리무진과 버스 중에 운구차량을 결정해주시면 되고요, 가족이 많으셔서 아무리도 버스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사망확인서 10부가 제공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부고에 서로를 위로할 여유가 없이 다들 각자의 눈물을 흘리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장례식장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재희가 울고 있었다. 주말, 친구들과 모임에 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울음이었다. 이제 9살이 된 아이이고 증조할머니의 죽음이 먼 일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아차 싶었다.


할머니랑은 이제 못 만나는 거야. 앞으로 영영.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 재희가 좀 이해해줘. 친구들은 다음에 학교에서 또 만날 수 있잖아.

아니야 못 만나는 친구들도 있어

그런데 재희야. 사람이 죽으면 헤어지는데 여러 가지 절차가 있어. 할머니랑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화장이라는 걸 하는 거야. 그러고 나서 할머니의 뼈가루를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안전하게 모셔다드려야해. 그렇게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야. 이해가 되니.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장례 절차에 대해 최대한 아는척하며 설명을 했다. 물론 이해가 되었다기보다는 엄마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울음을 멈추었을 가능성이 큰 가운데 그렇게 일단락 시켰다.


친가와 외가를 다 합쳐서 장례식의 상주가 되는 것이 처음인 우리 가족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상황이 상황이라 가족장을 기본으로 하기로 결정했고 장례식장을 찾은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도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온종일 겉도는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 동생들 근황과 시답잖은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육개장을 먹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장례식이라는 게 잘 몰라서 어떡하지 싶었던 것과는 달리 경험이 중요한 일이 아니었네. 어색했던 상복이나 머리의 하얀 핀이 익숙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처음부터 내 생각이 틀렸다. 장례식이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고 애초부터 능숙할 필요가 없는 일인 것이다.

3월 8일은 내 생일이다.


그리고 이번 생일부터는 외할머니가 떠나신 날이기도 하다.

앞으로 돌아올 생일에는 우리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되겠지.

개나리가 핀 줄도 모르고 맞이한 
이상한 봄 어느 날 
하나뿐인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