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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Apr 27. 2020

부부의 세계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이에서

네, 요즘은 드라마가 제철이죠.






jtbc 부부의 세계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이에서 2020년의 비현실적인 봄을 보내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서 아, 마흔 살 넘어서까지 결혼 안 했어도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아, 결혼은 안 해도 좋은 거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그래도 조정석이 주인공 같은 느낌은 들지만) 저마다 모두 각자의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 굉장히 풍성하게 이야기의 레이어가 쌓이면서 입체적인 기분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거다. 신원호 PD님과 이우정 작가님이 만드는 드라마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이 드라마는 응답하라 2002를 만들어달라는 팬들의 성화에 대한 슬기로운 답변 같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꼭 이어 가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언제나 열려있다는 듯한 제작진의 대답.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랑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응답과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카메오들을 보는 것 또한 굉장한 재미다. 시대적 비중을 과거에 많이 두지는 않지만 음악을 기점으로 오락가락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 시절 노래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고 마는 거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줘, 시청 앞 지하철역, 아로하. 하. 밴드가 모여서 연습하는 곡들은 죄다 나의 대학시절을 함께 했던, 2000년대 초반을 함께 했던, 전국의 큼큼한 노래방마다에서 수천만 번은 더 반복되어 불러졌을 그런 노래들이 아닌가. 스트리밍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mp3나 아이팟에 넣어서 듣던 노래들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였으며, 누군가랑 연애하고 있던 시절의 그 노래들이다. 그런 노래들이 드라마에서 한곡씩 불려질 때마다 이 드라마에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방식도 무척이나 2000년식이다. 지난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준완이 익순의 짜장면을 비벼주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고 로맨티시스트의 재탄생이라며 준완에 대한 찬양이 이어졌다. 어떻게 짜장면을 비벼줄 생각을 할 수가 있냐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000년 무렵에는 교정에 둘러앉아 짜장면을 시켜먹은 날들이 많았고, 그 당시에는 흔히 있던 풍경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남자 친구들은 짜장면을 비벼주지 않는 건가.


그중에서 00학번 코드를 정확히 건드리고 있다고 느끼게 한 결정적 레트로 한 감정선은 익준이 송화를 좋아했던 모습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다. 송화의 생일날 송화에게 고백했다가 바로 차이고 돌아온 석형은 익준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인다. 낙심한 석형의 술잔을 채워주며 말없이 위로해주는 익준의 앞머리 스타일만 봐도 지난 시절 동기들과의 학교 앞 허접한 술자리들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짝사랑하는 애들이 많았고, 차이는 애들이 많았던지 정말 그때는 그런 위로의 술자리가 참 많았다. 그 순간 송화에게 16픽셀 정도로 보이는 pcs로 문자가 오고, 그날 만나서 고백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익준은 만취한 석형을 한번 바라본 후에 "다음에 보자"라는 답장으로 PCS도 접고 마음도 접어버렸다.




그 시절 누구나 경험해본 것만 같은 촌스러운 3각형의 관계. 요즘은 사랑과 우정이라는 말도 붙여서 하면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 너무 세련된 오늘, 지금. 틱톡의 시대. 뭐든 짧고, 간결한 것이 선호되는 요즘. 지금도 친구의 친구를 좋아하고 있겠지만, 그때 그 순수하고 촌스러웠던 구구절절한 감정과는 다를 것 같다. 학교에 사람도 많은데 왜 그렇게 어울려 다니면서 두 명이 한 명을 좋아하고 서로 괴로워하고 술을 마시고 우정과 사랑을 시험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는지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 모두를 관통한 감정이었구나 새삼 그 시절 우리들을 돌아보면 아련하다.


게다가 익준의 이혼을 이야기하는 태도와 방식. 너무 심각하지도 않게, 너무 가볍지도 않게. 이혼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라는 요즘의 현상 정도로만 이혼을 터치하고 넘어갔다. 이혼했지만 세상이 무너지지 않은 익준과 우주. life is keep going on. 이혼은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담백하게 다룬 것이 참 마음에 든다. 그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갔으면 끝도 없었을 텐데 그냥 생략해버린 것. 의도가 있었을까? 요즘 이혼가정은 또 하나의 장르에 불과하다는 시대적 배경을 적용한 것인가?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그렇게 섬세한 배려로 느껴졌다.


그냥 누구나 누구를 좋아하고 있다. 드라마의 세계관에서는 항상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등장인물 간에 그렇게 서로 좋아하고 고백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보다 보면 그 사람들 다 친구처럼 느껴진다. 5인방 모여서 밥 먹을 때마다 그 옆에 껴서 같이 먹고 싶은 기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보기에는 너무 아쉽지만 그렇게 기분 좋게 슬기롭게 의사생활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정 반대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최근 보기 힘든 막장으로 또 한편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남편이 예쁘고, 젊고, 게다가 부자인 여자와 바람이 난다면? 그런 상황에서 단 한번 후진 없는 직설적인 미친 전개가 펼쳐진다. 미친놈 옆에 더 미친놈의 형국으로 이어지는 이 드라마. 정상적인 관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부터 시작해서 작정하고 망언을 쏟아내는 이태오. 볼 때마다 열 받는데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에서는 사랑도 우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것이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개념을 달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어떤 가치, 우정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 같은 것을 정면돌파하고 있는 드라마다. 잘 사는 사람들만 바람피우는 것은 결코 아닐 텐데도, 잘 사는 사람들의 세계에 빚대어 막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더 자극적인 요소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흔히 막장드라마에 재벌가가 많이 등장하는 거겠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선우에게 예서 같은 딸이 있었다면 하고 합성해둔 영상을 보고 실제로 웃음이 터졌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의 태도는 이토록 진지하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이고, 이웃이며, 때로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허투루 보지 않는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어설픈 연출의, 재미없는 드라마에는 그렇게 까지 깊숙하게 감정을 대입하지 않는다. 굉장한 연기력의 배우들, 탄탄한 극본과, 살아있는 연출로 완성되는 드라마를 대할 때 우리는 경건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부부의 세계를 만들어주시는

제작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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