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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01. 2019

둘째를  노플랜

계획에 없던 둘째가 인생에 등장했을 때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노플랜'이라 했다.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플랜이다. 그러나 나는 노플랜으로 뒤통수를 세게 탁 얻어맞고 혹이 남은 사례. 계획이 없었는데 뒤늦게 둘째가 생겨버린거다. 아이를 두 명이나 낳을 거라는 계획을 세운 적은 맹세코 없었다. 계획도 없이 생겼던 한 명을 이미 키우고 있던 터, 행복은 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내가 온전히 나로 사는 삶을 포기해야 할 때 밀려오는 상실감은 떠넘길 곳이 없었다. 한밤중 수유를 마치고 유축기로 젖을 짜내야했던 원초적이면서 고독했던 밤들, 갈아도 갈아도 또 갈아줘야 했던 지루한 기저귀와 응가 냄새.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하던데 그런 말을 위로라고 하는 건가. 삼십 년 넘게 살아온 내 스타일의 삶은 없었던 일로 접어두고 갑자기 엄마가 된 것이다. 평생 수영장 매표소 직원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지금부터는 수영선수를 해야한다는 통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 같았다. 아무튼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닌 거라고 느껴졌다. 한 명으로도 벅차고, 한 명이면 충분하고, 한 명까지가 최대치라고 일찌감치 깨달아버리고 깨끗하게 인정했는데 그 후로 육 년쯤 지난 어느 날 계획에 없던 둘째가 등장했다.


        

        임테기를 확인하고 회사에서 많이 울었다. 마주 앉아 내 눈물 닦아주던 후배는 아직도 그날의 내 모습이 웃기다고 한다. 임신을 하고 이렇게 어이없어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한다. 그때 우느라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정말 나는 어이없었다. 내가 어떻게 또 임신을 한 거지. 맙소사. 지나간 육아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워냈는데, 이제야 말도 좀 통하고, 사람처럼 밥도 떠먹고, 옷도 갈아입고, 어느 정도 손도 덜 가고 편해진지 얼마 안됐는데, 이제 와서 다시 반복해야 되는 생활들이 불 보듯 훤했다. 남편에게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건 못하겠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기가 아팠을 때, 술자리에서 돌아와 주지 않았던 남편. 39.5도 고열의 아기를 업고 마음과 허리가 아팠던 밤들과 애타게 기다려도 끝내 달려와주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어제일인듯 생생하게 서운하다. 그런 상황에 다시 처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볕 좋은 주말에 남편은 소파에 누워서 코를 골고, 심심해하는 아이를 나 혼자 데리고 나가 공원을 거닐던 그런 불공평한 기분도 사양한다.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을 때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기가 전화기 너머로 엄마엄마 하면서 울먹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회사도 즐겁게 다니고 싶고 당당하게 야근도 하고 싶다. 아이가 기다려서 집에 간다는 말을 하고 살금살금 눈치를 보면서 혼자 야근에서 빠지는 비굴한 역할이기 싫었다. 그냥 몽땅 다 싫었다. 나는 둘째를 낳고 싶지가 않았다. 둘째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최근에 결혼하는 후배들을 보면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선택을 나는 존중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아이 없이 부부가 서로 꾸준히 애정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인생 또한 충분히 즐기며 오래오래 적당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 찬성. 아이를 낳은 이상은 절대 불가능한, 정반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테니까. 금전적,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훨씬 이득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나만 씻고 나만 먹고, 때로는 귀찮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를 수도 있는 그런 간편한 삶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본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서 넷플릭스를 보고 그냥 라면만 끓여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아이는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다. 누군가 씻겨줘야 한다. 왜 이리 자주 아픈건지 소아과도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고. 아무튼 정말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육아의 기쁨은 합리적이나 논리적으로 그 효용성을 설명할 수가 없다. 처음엔 정말 너도 한번 당해봐라, 가 아니고서야 애를 안 낳냐고 닦달한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으니까.



        2018년 1월. 둘째가 태어났다.  육아라면 정말 지극지긋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의 판타지, 그 귀여움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내 삶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둘째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귀여웠다. 첫째와 어우러져있을 때 둘째. 말하자면 두 명의 아이가 있어서 매우 피곤한데 그 귀여움이 모든 걸 이겼다. 심심해 보이던 왕년의 외동아들에게 동생이 생긴 것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데, 낳자마자 형이 있는 둘째의 태도도 귀여워 미치겠다. 아이에게 늘 형아가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형아를 낳아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둘째를 낳으면서 이미 형아가 있는 새로운 아기를 키우게 되니까 상상도 못 할 귀여움들이 사방팔방 터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나도 당황스럽다. 나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편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아이가 둘이 되어서 힘든 점을 세세히 경험하고 있는데도 그냥 마냥 둘째를 보면 좋다. 이뻐 죽겠다. 고작 곤지곤지 잼잼 하는데, 기어 다니다가 걸어 다니는데, 옹알이하다가 몇 마디 말 시작하는데 다 겪어 본일인데 처음도 아닌데 그게 또 감동적이고 그게 또 새롭다. 그래서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연애를 끝내 놓고서 또 연애를 하고 좋아 죽고 하나 봐. 인간 본연의 단순함이 빚어낸 대참사, 아니 인류 번영인 것 같기도 하다.



         둘째는 없다,라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계획의 상태를 노플랜으로 돌려두는 것이 어떨까. 회사도 다녀야 하고, 첫째도 돌봐야 하고, 대출도 갚아야 하고, 친정엄마 눈치도 봐야 하고, 내 몸은 축나고, 남편이랑 싸우고. 첫째를 키울 때 이미 경험해본 파김치 같은 나날들. 이런저런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백 가지를 훌쩍 넘는 이유가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겠지만 두 번째 아이를 낳아보니까 그 전의 생각들이 무색해져서 해보는 말이다. 여전히 나는 피곤하고 복잡하고 힘들다. 내가 두번째로 낳은 아이가 두돌도 안됐는데 혼자서 밥을 잘 챙겨먹고 잘때되면 재워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고 하는게 아닌데. 그런데도 말도못하게 좋다. 미친거같다. 나 절대 둘째같은거 필요없다고 큰소리 쳤던 사람이 맞나 싶다. 그래서 하는말인데 노플랜 정도로 타협해봅시다. 둘째에 관해서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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