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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Oct 31. 2019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날은

죄책감이라고 하기엔 실체가 모호한 감정으로 이런 저런 말을 해본다

                                                                                                                                                                                                                                                                                                                                                                                                                                                                                                                                                                                                                    

회사를 마치고 부리나케 픽업을 간다
목욕중인 재히가 울먹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울먹울먹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울음을 닦으며
목욕탕 밖으로 나온다

재히가 이제 할머니 집에 안온다고 했다,
아까 할머니를 발로 찼다,
라고 냉랭하게 말하는 우리 엄마의 말에
다짜고짜 나는 재히를 먼저 나무랐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재히말을 먼저 들어볼걸 그랬다

설움이 폭발해서 울기시작하는 아이를 어르고
할머니에게는 사과를 하라고 했다
계속 울먹울먹 거리면서 그 울음사이로
할머니가 할머니 마음대로만 해서 그렇다는 말을
힘들게 힘들게 하면서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계속 엄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재히가 우는 소리를 하거나 징징 거릴때마다
엄마의 신경질적인 아우라를 느끼면서-
그래서 내가 먼저 화를 냈다
넌 왜 엄마만 보면 울어, 


돌아서서 식탁으로 가서 앉았고
우리 엄마가 이 틈을타 거들면서 
울던지말던지 내버려둬라, 꼭 지 엄마만 오면 운다
놀이터에서도 애들이랑 놀지도 않고 앉아만 있더라
아니 애가 집에 들어오면 책도 보고 놀고 그럴줄 알아야지 아~무것도 관심이 없고...


재히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렇게 서럽게 울고있는데
그 아이한테 가서 이제 할머니집에 오지말고
집에 엄마 올때까지 혼자 있으라,
고 말하고는 밥먹고 빨리 집에 가라,
고 하면서 아이를 식탁으로 데려왔다

여전히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입에
밥을 떠 넣는 엄마를 보는데 나도 눈물이 맺혔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서는
밥을 안먹는다고 화를 냈었다
나한테도


아직 채 삼키지 않은 밥이 넘어가기도 전에
두번째 숟가락이 또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엄마의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눈이 퉁퉁 부은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면서 차를 몰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그렇게 울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집에가서 목욕할꺼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다짜고짜 목욕을 하라고 했단다. 아마 재히에게 윽박을 질렀을 우리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그러고서는 더듬더듬 오늘 놀이터에서 있었던 억울한 상황에 대해서도 말을 꺼낸다. 친구들이 경찰싸움놀이를 해서 재미가 없었고, 공사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고. 두명의 친구가 재히를 따돌리고 아파트 비밀번호를 누르고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기분이 별로라 놀이터에서 한쪽에 시무룩하게 앉아있었는데 할머니가 한 얘기들이 꽤나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래. 그래.


눈이 퉁퉁부어서 떠지지도 않는데
문방구에 들러서 친구 생일 선물을 사고
옆에 돈까스집에서 우동과 돈까스를 시켰다
둘이 저녁을 먹으면서 재히가 갖고싶다고 하는
베이블레이드를 검색해보면서 
친구들이 가진 장난감 얘기를 들으면서
집에 왔다



엄마가 회사 가지말고 집에 있을까?
아니면 내일 유치원가지말고 엄마 회사 같이 갈래?
죄책감이라고 하기엔 실체가 모호한 감정으로
이런저런 제안을 해본다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해서




잠들기 전에 재히가 다시 생각이 났는지
나는 엄마랑 아빠가 같이 데릴러 오는날이 제일 신나
라고 말하고는 골아떨어져버린 아이를 보면서

회사를 그만둬야할까,
복잡한 기분에 휘말리는 밤
                                                  











 2017년 9월 11일에 썼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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