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카피라이터 관찰기
카피라이터,
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게 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어에 꽤 민감했던 사람이라서
단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단어이자
내가 선택한 직업의 이름이었다.
주위에 카피라이터가 한 무더기 있다. 왜냐하면 내가 카피라이터라서. 알고 지내는 이런저런 카피라이터들. 나는 카피라이터라는 단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는데, 놀라운 건 다른 카피라이터들도 대체로 처음부터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편이었나 보다. 신기한 우연이네. 하면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멋대로 떠들었다. 학창 시절, 나는 졸업하면 H자동차 영업팀 과장이 꼭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야 물론 없겠지만 졸업과 취업준비라는 과정을 통해서 직업을 좁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반면에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어느 회사를 갈 것인가, 의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매료된 상태라서 분명한 포지션에 지원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직업에 꽤 애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만두네 마네 하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어디선가 긁어온 아이디어들을 펼쳐놓고 또 반짝이는 눈빛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다들 어떤 부분에서는 대단히 특이하다. 깐깐하고 논리적인 것 같다가도 실속은 없다. 그리고 뭐랄까, 좀 순수하다고 할까?
A는 내가 아는 가장 카피라이터 다운 카피라이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었다. 같이 있으면 많이 웃게 되는. 아 저런 사람과 같은 직업을 가졌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 부장님이셨던 A는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에다가 그런 외모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굉장한 동안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주 52시간이 나름 대행사에서도 적용되는 과정에 있고,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부터 자연스레 야근과 철야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십몇 년 전에는 밤에 남아서 아이데이션을 하는 어떤 직업적 낭만 같은 것이 팽배했던 걸로 기억된다. 모두들 그때도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자연스레 점심 이후 느지막하게 출근을 하고 야행성으로 일했다. 광고계 전반에 이미 뿌리내려있던 관행(?) 같은 것이라서 대행사와 편집실, 녹음실, 기획사 등 동종업계의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것을 좀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중심에서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였던 A. 밤낮없이 광고하며 지내다 보니 연애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연애에 몰두할 스케줄이 안 나왔다고 해야 할까. 가끔씩 소개팅을 하면서 지냈다. 소개팅을 하는 시간은 정할 수가 없었고, 제가 회의 끝나는 시간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가 보통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본인이 상대방 남성을 픽업하러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한밤중에 소개남을 태워서 양수리 같은 곳으로 이동했다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진행되는 맨 정신 심야 양수리 소개팅을 마치고서 고스란히 상대방을 집 앞에 내려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라서 나도 A 앞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도 A를 만나면 갑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지는 모양이다. 잘못 걸린 전화를 끊지 않고 상대방과 2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은 레전드 사연으로 남아있다.
누구에게나 호감이고, 그래서 업계에 선후배 동료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A는 몇 년 뒤 회사를 나갔고 삼선동 어귀에 딱 A스러운 사무실을 오픈했다. 작고, 아늑했다. 중앙에는 뜬금없지만 오르간이 놓여있고, A가 좋아하는 아톰 피규어도 군데군데 보인다. 한동안 대단히 꽂혀서 영국으로부터 공수한 잔잔한 꽃 찻잔, 로얄알버트 시리즈가 선반을 장식하고 있다. 카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어색한 사무실. 사무실에서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온 동네 길냥이들에게 오지랖 넓은 집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무실이 너무 카페 같으니까 가끔씩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커피 되죠?" 하고 물으면
"커피 되죠" 하고 답하고는 그냥 커피를 내어주는 날도 있다. 아니, 돈 받고 파셔야죠 그냥 주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면 그깟 거 얼마나 된다고 커피 한잔에 갑자기 손님과 직원의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다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커피 한잔 정도야 그냥 나눠줄 수도 있다는 것이 A다.
B는 나랑 동갑이고, 남자다. 대부분의 남자 카피라이터가 예쁜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가진 소지품들을 보면 각자의 취향이 드러나면서도 묘하게 비슷한 뉘앙스의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이 많다. 핸드폰 케이스라던가 가방 같은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예를 들면 프라이탁은 필수품이다. 어떤 크리에이티브 언저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업계에 종사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프라이탁은 불문율 같은 브랜드로 존재한다. B는 정말 쇼핑을 좋아했다. 그 시절 우리는 같은 팀이었는데 점심시간이 조금 여유 있는 날이면 꼭 다 같이 쇼핑을 가자고 했다. 그가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에 들러 옷을 여러 벌 입어보고 돌아오곤 했다.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 여자 친구가 다소 터프하고 털털한 반면에 B는 마음이 여리고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주먹을 부르는 귀여움이랄까.
그해 겨울, 나에게 뜨개질을 알려달라고 한 B는 여자 친구에게 잊지 못할 핸드메이드 선물을 하고 싶다는 출사표를 던졌고. 곧이어 속성으로 넥워머를 만들어 선물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굳이 그걸 만들어줘야 하냐고 하나 사주라는 주위의 핍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틈틈이 뜨개질을 해나가던 B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넥워머를 완성할 수 있었고, 그걸 받은 여자 친구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를 전해왔다. 아마도 그 넥워머를 어떻게 하고 다니지 싶어서 울었던 거 아니겠냐는 주위의 의혹과 상관없이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다. 머지않아 두 사람이 결혼을 하던 날, 예식장에서의 일반적인 풍경과는 다르게 버진로드를 걸어 나오다가 신랑의 역할이던 B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열하던 B의 어깨를 다독여주던 아리땁고 듬직했던 신분의 온화한 미소.
어떻게 보면 카피라이터라는 일이 대단히 티 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열심히 투덜거리고 가장 성실하게 카피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날라리과가 아닌가 착각했었는데 언제나 가장 열심이다. 그래서 항상 바쁘다. 일이 따라다니는 팔자인 것이다. 한 프로젝트 끝나서 하루 이틀 쉬어가나 하면 연달아 오티가 따라오는 팔자. 얼굴 보기 어려운 사람. 나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이 마음속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다. B가 바쁘지 않은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C는 정말이지 내가 아는 후배 중에 가장 부지런하고 에너지 넘치는 친구였다.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발바닥에 스프링이 들어있는 아이처럼 통 통 통 튀기듯 걸어 다니던 C. 인턴으로 처음 만났는데, 야무지고 못하는 일이 없었다. 보통 카피라이터라고 하는 사람들이 못하는 것들을 척척 해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예를 들면 포토샵을 만질 수 있다거나! 그것도 모자라서 프리미어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간단한 시안 편집을 해내는 그런 대단한 종류의 인재였다! 보통 평범한 카피라이터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오직 워드와 파워포인트뿐이다. 엑셀도 잘 못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엑셀도 잘했다. 게다가 제작팀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애티튜드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대화가 될 것 같은 그런 정돈된 매너랄까. 어쩌면 다재다능한 이유로 C는 카피라이터로서의 채용이 더뎌졌다. 기획팀 일손이 모자란다고 신입 AE 자리로 보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다른 재주에 가려져서 카피라이터로써의 자질이 흐려졌던 것이다.
산전수전 긴긴 인턴의 터널을 지나 정식으로 카피라이터가 되었던 C는 정말 열정적이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열심히 었고, 그 외의 관심사에 대한 노력도 놀라웠다. 뭘 해도 대충 하지 않는 성격. 여행을 좋아하고, 빠른 걸음은 경쾌했다. 카피라이터 외에 진지한 관심사는 여러 가지였고 그중에 제과제빵도 하나였다. 잠깐 유행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하기에는 사뭇 진지했다. 엄청 시달리고 늦게 퇴근을 해도 집에 가면 파운드케이크를 구워봤다고 활짝 웃곤 했다.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에는 집에서 직접 만든 쿠키와 빵을 제작팀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던 C.
"너 어제 몇 시에 들어갔니? 늦게 갔잖아?!"
"11시요" 하고 잇몸이 보이도록 크게 웃는 애.
"이런 거 할 때는 하나도 안 피곤 해요"
카피라이터로 살아서 행복한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몇 달간 휴직을 해보고, 몸과 마음을 도닥였지만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었다. 가끔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빵에 대한 끈을 놓지 않던 C가 어느 날 비건 베이킹에 눈을 뜬것은 극심한 아토피로 고통받던 친구의 조카를 위해서 타르트와 쿠키를 만들면서였다. 비건인데 비건 같지 않으면서 맛있고 건강했다.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에 선물한다며 양손 가득 들고 왔던 그 디저트들을 먹어보고 나는 "이건 팔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취미로만 하기에는 너무 대단해, 이거 얼른 팔아봐라, 날마다 응원했다.
결국 C는 지금 작은 비건 베이커리 가게의 사장님이 되어있다. 바쁘게 빵을 굽고, 포장하고, 배송도 한다. 인스타그램도 운영하고 매장 운영도 하고 있다. 자신이 만드는 빵에 네이밍을, 그 빵에 어울리는 브랜드 스토리도 적어 내려 간다. 더 이상 누구의 컨펌도 필요 없는 사장님이 되어 스스로가 쓰고 싶은 대로 카피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어쩌면 진정한 카피라이터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제나의 모습처럼 분주하고 에너지 넘친다. 내가 아는 카피라이터 중에서 처음으로 다른 일을 할 용기를 낸 C.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언제나 의젓하고 멋지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카피라이터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카피만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카피를 쓰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을 카피라는 형태로 정돈해주는 사람. 그림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 브랜드와 제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대체로 엉뚱하고도 논리적이고 싶어하며 책을 좋아하고, 단어에 민감한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카피라이터 말고 다른 일 뭐 없을까 늘 고민하는 사람들.
간단한 말로 정의하기엔 제각각인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나의 친구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