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을 어린아이들에게만 묻는 것은 어쩐지 불공평하지 않나요
이다음에 커서 되고 싶은 게 많았던, 아직은 해마다 키가 자라고 있던 시절의 나에게도 몇 가지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7살부터인가 배우기 시작했던 피아노는 정말 재미있었다. 바이엘을 넘어 체르니로 한 장 한 장 실력이 는다는 사실에 일종의 성취감 같은 것을 느꼈고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이 탱글탱글 경쾌하고 좋았다. 피아니스트가 되야겠어, 그렇게 첫번째 장래희망이 나를 찾아왔다.
학교를 마치면 피아노 가방을 들고 동네 어귀 1층 상가의 작은 피아노 학원에 갔다. 선생님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피아노 학원의 이름은 전미영 피아노였다. 처음에는 미혼이셨는데 내가 5학년쯤 되었을 때는 결혼을 하셨다. 선생님을 졸라 일주일에 한 번씩 상가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사다 먹고 음표 문제를 몇 개 풀고 피아노를 치고. 선생님이 이만큼 치라고 표시해준 동그라미를 깨알같이 까맣게 칠해가면서 6년 이상 지속한 일상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피아노 학원의 실내 구조라던가 선생님 얼굴, 각각의 부스에서 들어가 피아노를 치던 모습과 분위기가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요즘 피아노를 배우는 아들 덕분에 피아노 앞에 앉아있을 시간이 종종 있는데 그 위에는 30년 가까이 흘러 낡을 대로 낡은 소나티네라든가 체르니, 모차르트가 무심하게 놓여있다. 세월을 고스란히 흡수한 표지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 아들은 아직 바이엘을 배우고 있고, 머지않아 체르니 100에 들어갈 것 같다. 아들도 조만간 이걸 배우겠지 싶어 소나티네를 펼쳐봤는데, 맙소사.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피아노 콩쿠르를 위해 준비했던 곡을 발견했다. 별다른 표시를 해둔 건 아니었는데 한두 마디 쳐보다가 갑작스럽게 우당탕 기억이 쏟아져내렸다. 몇 달간 연습했고 다 외웠는데도 반복적으로 헷갈리고 틀리는 부분이 있어서 내심 걱정을 하고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허공에서 연습을 해보던 콩쿠르 당일,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내내 사라지지 않은 긴장감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몇 년 간 엄마를 조르고 졸라 5학년에 올라가면서 마침내 사게 되었던 피아노. 플라스틱으로 된 검은색 피아노는 적당한 가격의 모델도 많았는데 한눈에 반해버린 잘 태닝 된 원목의 영창피아노만 눈에 들어왔고 그 앞에서 내내 주저주저하면서 은은하게 고집을 부려 백만 원이나 더 비싼 걸로 끝내 데려왔다. 속없는 딸이었지 뭐야.
문제는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발생했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는데, 내가 스스로 피아노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건. 함께 피아노를 다니며 친하게 지내던 언니 두 명이 있었는데 두 명 다 피아노를 꽤 잘 쳤다. 비슷한 시기에 피아노를 배워서 서로 수준이 비슷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언니가 반주가 없는 악보를 보고 즉흥적으로 반주를 만들어내서 화려하게 연주해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컥 했다. 나는 저거 못하는데. 안되는데. 어려운데. 재능 같은 것은 없고 열심히만 하는 내가 피아니스트를 꿈꿨다는 사실에 비참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스스로에게 너무 냉정했다. 노력에 따른 가능성의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 분야가 예술이라는걸 어렴풋 알고 있었다. 예술과 재능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위인전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이었다. 나는 앞으로 뭐가 되어야 하나. 비가 오지 않는데 비를 흠뻑 맞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서 피아니스트라는 장래희망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했다.
그럭저럭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생 무렵 꾸었던 장래희망, 카피라이터는 생각보다 쉽게 이뤄졌기 때문에 이상한 상실감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긴 인생에 나는 장래희망도 없이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어떤 드라마에서 어른들의 장래희망이 연애라고 하던데. 그것도 결혼 전까지인 것을 결혼 후에 알게 됐다. 그럼 이제 우리들은 어떤 장래희망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거죠?
농담 같지만 진담에 더 가까운 요즘 어른들의 장래희망은 "건물주"라고 한다. 낭만은 없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건물주? 과연 이뤄질 수 있는 장래희망일지, 결국 이루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 장래 절망 일지.
우리나라에서는 중산층이라고 하면 서울에 부채 없이 99제곱미터의 아파트를 소유, 중형차를 타고 500 이상의 월급을 받으며 통장에 1억쯤 잔고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숨 막히는 기준이다. 중산층 따위, 되고 싶지 않아 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서일까. 그냥 평범한 수준의 어른 집단을 중산층이라고 칭하는 거라고 하면 평범하기가 이토록 어려워서야. 싶은 것이다.
유럽의 중산층 기준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프랑스 퐁피두 전 대통령이 그의 저서 삶의 질에서 정의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 이상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다. 악기 하나는 다루고 남들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 수 있으며 약자를 도와주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했다는 영국 중산층의 기준은 "경기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이며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그리고 불의에 의연히 대처해야 한다" 그들의 기준은 한층 우아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장래희망이 꼭 직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고 달리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국 중산층보다는 유럽 중산층 기준에 더 가까운데(내 생각에),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진다.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늘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거나, 카피라이터이면서도 항상 사적인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그려보면 멋진 장래인 것 같고 근사한 기분이 든다. 통장 잔고라던가 부동산 소유 현황 같은 것을 묻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좋았어, 이번에는 장래희망을 유럽 중산층처럼 나이 드는 우아한 할머니로 정해봐야겠다. 더 좋은 장래희망을 발견하기 전까지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