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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oker May 24. 201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악인전>

영화 <악인전>을 보고 드는 불편함에 대해

어찌 보면 불쾌하고 어찌 보면 통쾌한 경찰과 조폭의 합력을 그린 영화 <악인전>을 보고 왔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성격이 다른 혹은 정반대의 두 조직이나 인물이 힘을 합치는 영화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그 인물들 간의 우정이나 사랑 혹은 연대로 끝을 맺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남과 북의 상반된 인물들을 다룬 영화 <강철비>나 <공조>등이 있겠습니다.

악인전 역시 연쇄살인범을 잡고 싶어 반쯤 미친 형사 정태석(김무열)과 연쇄살인마의 표적이 되었던 조폭 두목 장동수(마동석)의 협력과정을 그리는데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는 그 질감이 달랐습니다.

오늘은 이 <악인전>에서 그려지는 주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에 대해서 얘기해 보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입니다.

그 제목처럼 이 영화에서는 조폭, 경찰, 악마 즉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15세 관람가 영화들처럼 그 조폭과 경찰이 유대를 해서 살인마를 멋지게 잡아내는 그런 희망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마나 그러한 살인마를 잡기 위해 조폭과 손을 잡고 그 조폭을 이용하려고 하는 경찰이나 무자비한 조폭이나 모두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경찰과 조폭의 유사한 점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잘 드러납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정태석 형사는 장동수의 부하들이 운영하는 불법 도박장을 검거하게 되고 그에 따라 마동석이 정태석의 상사에게 전화를 거는 씬이 나옵니다.


이때 전화를 하는 두 조직의 보스의 모습이 대칭으로 그려집니다.

가령 마동석이 문으로 향하자 부하가 문을 열어주는 모습 바로 다음에 경찰 간부가 사무실로 향하자 앉아있던 형사 한 명이 뛰어가서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 자신의 부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 역시 비슷합니다.

장동수는 자신의 라이벌 격에 해당하는 조폭 두목과의 협상을 끌어내기 위해서 자신 부하를 폭행하게 되는데요 정태석 형사 역시 자신의 부하가 조폭들과 마찰을 일으키자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그를 때리며 사건을 일단락시킵니다.

사실 많은 영화들에서 사복 경찰과 조폭을 구분하기는 힘이 들 정도로 이 둘의 차이는 그저 그 힘의 원천이 법이나 무법이냐의 차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를 아주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장동수가 비를 맞는 여학생에게 우산을 빌려주고 정태석 형사가 나타나서 장동수를 가리키며"이 사람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하자 여학생은 "아저씨가 더 나쁜 사람 같은데요."라고 말하며 장동수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며 가버립니다.

이 장면은 그저 웃음을 주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조폭이나 경찰이나 외적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상처

그리고 영화는 이제 살인마와 경찰의 유사점을 보여줍니다.

그 유사점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상처입니다.

이 영화에서 정태석 형사는 코에 상처가 있고 장동수는 눈에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범인 검거 과정에서 범인 역시 상처가 생기게 되면서 이 셋은 모두 상처라는 공통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살인자의 상처가 정태석 형사와 똑같은 위치인 코에 생긴다는 점입니다.

상처를 악인의 증표 정도로 해석할 때 결국 경찰, 조폭, 살인자는 모두 같은 악인이지만 그럼에도 상처의 위치를 고려해보면 결국 조폭보다는 경찰이 악인에 가깝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폭은 다른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쓰지 않고 힘으로 해결을 보려는 단순 무식한 면이 좀 더 많다면 경찰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조폭을 이용하고 결국 승진까지 해내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자 다시 한번 조폭에게 다가가 거래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조폭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흑막은 경찰입니다. 경찰은 이 영화에서 정의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는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조폭입니다.

하지만 이 카타르시는 어떠한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3. 불편함

이 영화를 보면서 일종의 불편함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 불편함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정의의 사자여야 하는 경찰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점과 오히려 조폭이 정의롭게 그려진다는 점으로부터 옵니다.

경찰은 우선 이 영화에서도 무능력하게 그려집니다.

경찰이라는 집단은 합법이라는 이름 하에 관료주의적인 병폐를 보여주고 사건을 맡는 것도 수사를 하는 것도 조폭보다 느립니다.

정태석 형사는 조폭과 손을 잡게 되면서 조폭들과 함께 수색을 나가게 되는데 수색 과정이 매우 빠르게 진척을 보입니다.

경찰이라면 할 수 없는 무단침입, 위협 등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범인을 찾는 데 사용되죠.

우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 사건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경찰서장들과 수사를 하려면 영장을 가지고 오라고 뻐기는 범인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러한 합법적인 것들로부터 왔던 환멸과 답답함을 불법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또한 범인을 검거한 후에도 우리는 정의의 철퇴는 합법적으로 내려지지 않습니다.

범인은 법정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지만 범인도 잘 알고 있듯 우리나라에서 사형은 실제로 행해지지 않습니다. 

대신 범인은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나오는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자게 됩니다.

이러한 법의 아이러니한 점에 대해 정태석 형사는 오히려 '그게 법이라'며 이러한 부당한 법을 옹호하게 됩니다.

반면 법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는 장동수는 범인을 잡아 초주검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분명히 사람은 맞고 있고 우리는 그것이 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동수가 범인을 때릴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불편함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그동안 국민적으로 느껴왔던 법과 경찰에 대한 답답함을 국민 대다수가 원하지만 실제로는 법치국가여서 그럴 수 없었던 행동들을 통해 대리만족시켜주면서 오게 되는 것이죠.

그리하여 우리는 범인이 사형 판결을 받을 때가 아니라 장동수가 하얀색 옷을 입고 교도소에 등장했을 때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백의종군을 연상케 하며 이 영화에서 관객과 국민의 영웅은 경찰이 아니라 조폭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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