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때처럼만
인간은 항상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실현 가능하게 되었을 때 마치 일 년 동안 바라 왔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나 하다가 또 언제 그것을 원했냐는 듯 방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새로운 것을 바란다.
그리고 영화야 말로 인간들이 갈망하는 그 '할 수 없는 것들'을 투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당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개봉한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우연히도 모두 '시간'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어서 흥미롭다.
그 두 편의 영화란 <가려진 시간>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이다.
이제 인간은 시간마저도 극복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이는 단순히 순행하는 시간에 역행하고자 하는 욕망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향수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올해 개봉한 외국 영화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나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외국 영화의 시간보다 국내 영화의 시간이 서정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위 두 편을 오늘 쓸 글의 소재로 선택했다.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과 <당신, 거리 있어줄래요>의 원작자 기욤 뮈소에게 시간은 무의식적으로 원(圓)의 이미지로 생각되었나 보다.
두 영화의 발단이 되는 소재가 모두 '알'이다.
<가려진 시간>에서는 시간 괴물의 알을 깨뜨려 성민이의 시간이 멈췄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수현은 캄보디아의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알약을 먹고 자신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만약 시간 자체가 (마치 시계와 같은) 하나의 원이라고 본다면 <가려진 시간>에서는 그것을 깨뜨림으로써 일종의 벌을 받는 셈이 되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그것을 취함으로써 시간적 능력의 일부를 얻게 되는 셈이다.
이 두 영화는 또 모두 배경이 보는 이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한다.
<가려진 시간>의 공간적 배경은 화 노도라는 섬이다.
외부와는 단절된 이 섬이라는 배경 때문에 섬이 주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돋보이고 영화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신비로움과 비현실적인 이미지의 집합이 바로 극 중 성민과 수린이 자주 만나는 오래된 집이다.
수린이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 있을 것 같은' 장소이다.
그런가 하면 비누 조각과 같은 소재 역시 서정적이다.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무른 비누에 조각을 하는 행위는 한 번 새겨지면 지워지는 일 없는 어렸을 적 기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가려진 시간>은 현대라는 시간적 배경 속에서 동떨어진 화 노도라는 섬을 통해 특유의 동화 같은 향수를 발휘한다.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의 변형 같다고나 할까.
이 영화는 단지 시간을 소재로 할 뿐 아니라 어렸을 적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아픔을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2015년의 인물이 1985년의 자신을 만난다는 설정으로 과거의 자신이 있는 1985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1980년대는 2015년 수현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과거이자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이 살아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 수현은 젊었고 건강했으며 무엇보다 사랑했고 어리석었다.
영화는 수현의 개인적인 향수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과거를 스크린에 재현해낸다.
영화는 때로 노골적으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와 같은 표어를 통해 향수를 환기시키기도 하지만 전화기, 버스, 간판 등을 통해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시간을 여행하는 주체가 개인 그리고 남자라는 점이다.
사실 많은 영화에서 시간 여행은 남자가 주로 한다.
(당장 생각나는 여자 시간 여행자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정도)
이게 영화 산업 자체의 성의 비대칭인지 아니면 남자가 해야 한다는 일종의 무의식의 투영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두 영화의 남자 주인공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여행한다.
사실 두 영화 모두 시간을 여행한다는 느낌보다 시간과 사투한다는 느낌이 더 맞는 듯하다.
그리고 두 남자만 여행을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여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시간은 동지이자 적이다.
두 영화는 또 '바다'라는 공간적 배경을 공유한다.
<가려진 시간>에서는 화 노도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부산이 각각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바다'라는 말도 있듯이 바다는 시간의 은유로 많이 쓰인다.
이는 아마 시간과 바다가 유사한 면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시간과 바다는 둘 다 비가역적이다.
그리고 시간은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비슷하지만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리스의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 고 말했을 것이다.
언제나 비슷해 보이는 시간이지만 돌아가면 되돌릴 수 없고 같은 시간을 두 번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그리고 그 불변의 진리가 항상 사람들을 고뇌하게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과 같이 인간은 숙명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후회한다.
그리고 한 번쯤은 과거로 되돌아가 내 잘못을 바로 잡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영화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가장 그리웠던 순간을 함축적으로 대리하기 위해 '사랑'을 배치한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가며 변하는 가변적인 사랑이 판치고 있는 요즘 순애보 같은 사랑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더 넓게 생각해봤을 때 단순히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혹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후회로 가득한 21세기의 어른이 된 나보다 아무것도 몰랐던 20세기의 어린 나로 돌아가고픈 욕망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21세기가 그만큼 텁텁하고 황량하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