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분이 별로야. 날씨가 득해서일까. 무엇인가 꼬인 것 같다. 누웠다 앉았다 애써도 풀리지 않는다. 그냥 주절거리듯 내게 말을 건넨다. 문장은 봉투에 찍힌 수취인 불명 직인 같다. 갈 곳을 헤매다 우편함 바닥에서 사그라지겠지. 그래도 좋다.
몇 년 전 가을은 특별했다. 서러울 정도로 선명한 계절이었다. 아침에 국화에 물을 주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는데, 하늘은 좀 찌푸렸던 것 같다. 현기증이나 잠시 비틀거렸다. 그리고 투명하게 기억났다. 질리도록 안으로만 접히던 10대, 끊어진 스트라이프 무늬같던 스무 살 그때가.
눈물처럼 후드득 겨울이 떨어진다.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던, 오십이라는 나이를 기억했다. 해묵은 무지 노트에 '삶의 마지막이 있다면 그건 쉰 살일 거야'라고 썼었다. 이유도 논리도 없다. 50은 닿지 않을 숫자였고 마침이라는 의미였다. 얼마 후 쉰 살이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슬픈 깨달음은 아니었다. 머저리 같은 놈 하나가 마당에 서 있을 뿐이었다.
뭔가를 쓰고 싶었다. 낯선 압박감은 감성의 회귀를 재촉했다. 뒤로, 그리고 뒤로 달려갔다. 체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속도였다. 공포스럽지만 희열을 느꼈다. 이제 난 내가 누군지 알 것 같다. 왜 알듯 모를 듯 뻐근해서 여기저기 아픈지 모르겠다.눈물처럼 후드득 겨울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