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에 슬픈거린다
지난달 일을 구했다. 한 달이 지나간다. 야간근무를 한다. 밤부터 아침까지, 12시간 정도. 어감은 야근이 낫다. 밤은 잡념과 슬픔이 없어 좋다. 담배 이름이야 꿰고 있고, POS는 기본적으로 익숙하다. 어려울 것은 없다.
착각이었을까. 낯선 일에 요령은 없다. 밤새 앉지를 못한다. 실수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생각과 슬픔을 긴장이 대신한다. 새벽에 상품이 입고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움직임이 덜하리라 선택한 일이었다. 옮길 것이 산더미 같다.
취객과 진상은 어디든 있다. 내세울 자존심은 없다. 말없이 뱉는 자판기가 된다. 유리 밖 어둠을 본다. 새벽은 우울하나 아름답다. 그러나 詩 같지는 않다. 아침이면 다리가 붓는다. 퉁퉁 불은 보랏빛 파스타처럼. 더 나빠지지만 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여동생이 문산으로 교회를 옮겼다. 몇 안 되는 신도와 리모델링을 했다. 성탄 이브에 새 단장을 마쳤다. 축하 예배에 맞춰 엄마가 오셨다. 동생의 이야기도, 엄마의 상경도 나는 몰랐다.
"김치 좀 가져왔다. 아픈 데 없고? 네 집에서 하루 신세 지고 내일 가려고." 26일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요즘 일을 시작했는데 밤에 해요. 혼자 주무셔도 괜찮겠어요?" 먹먹함에 잠시 머뭇거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냥 내려간다 하신다. 무거워 한 포기만 챙겨 온 김치를 준다 하셨다. 엄마는 경의선 끝에서 강남 터미널까지 지하철로 간다. 팔순이 가까운 노모는 참 용하다. 백마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추운 날이었다. 백마 플랫폼은 실내가 아니다. 바람이 매섭다.
16:33분, 전철에서 엄마가 내렸다. 다음 경의선은 16:42분에 온다. 따뜻한 곳으로 옮길 여유가 없다. 김치를 꺼내더니 날 안으신다. 묻지 않으니 드릴 말씀이 없다. 짧은 만남이었다. 늙은 아들을, 조금 더 늙은 엄마가 안는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묻지 않으신다. 다행이다. 감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몰랐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엄마와 그 사람은 모르면 좋겠다. 알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모르면 좋겠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지났다. 잠시 힘들었으나 내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수롭지 않게. 새벽 5시가 넘었다. 사람도 불빛도 희미하다. 카운터에 기대어 생각한다. 다음에는 꼭 주무시고 가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