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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Jan 20. 2018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식적 인간이란 말은 부끄럽지 않다

"이틀 남으셨어요" 마른 입술에서 나온 말이 화살처럼 꽂힌다. 귀가 버석거린다. 낯선 의사가 앉아있다. 누구더라. 소화기센터 김명환, 이탤릭체로 수놓은 이름이 보인다. 진료실이 완성되지 않은 그림 같다.


아산병원에 예약한다. 찌르듯 아픈 "왜?"라는 검사를 마친다. 죄인처럼 대기실에 묶인다. 내 것이 분명한 운명을 당신이 결정한다. 그림자가 덮인 곳에서 그림이 된다. 한 발을 디디면 곧 그림자가 된다. 초침에 집중하는 나를 본다.


가끔 상상한다. 48시간 후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뇌에서 치약 냄새가 날 것 같다. 미싱 하우스를 한 듯 비워지겠지. 빈 머리에 발악하듯 생각주입한다. 아프지 않으면 무섭지 않다. 주삿바늘보다 무서운 건 없다. 무섭지 않으면 아쉽지도 않다.


빈 기억의 서랍이 다섯 개 남았다. 호흡을 천천히 하고 기억을 선택한다. 온전히 5개 단어에 집중한다. 관계, 가식, 반항, 사랑, 그리고 통찰. 선택된 것을 추슬러 시계의 초침을 본다.


가식적인 인간이란 말은 부끄럽지 않다.


깡촌에서 서울로 유학 왔다. 한강대교가 보이는 좋은 동네였다. 책에서 보던 뉴욕의 맨해튼 같은 곳이었다. 때깔이 다른 도시 아이들이 살았다. 촌놈은 주눅이 들까 두려웠다. 틈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 입술만 꽉 깨물었다.


현관 옆 작은 방에서 완전정복을 꺼냈다. 연필과 볼펜, 사인펜으로 보고 또 봤다. 핵심 요점정리는 수월했다. 표준전과가 사진처럼 인화된다. 전학 후 첫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촌놈에서 신기한 놈이 되었다.


상대 없는 반항심을 타고났다. 채움이 아닌 가식이었다. 네게 보여주고 싶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했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힘든지도 모르고 가식을 선택했다. 가식적인 인간이란 말은 부끄럽지 않다.


비틀린 수학 따위 숨 쉬듯 풀어낸다. 타고난 놈이 있는 것이다.


"타고났다"라는 말이 있다. 타고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수학의 정석을 세 번 보면 인화된다. 암기는 인화되고 응용은 새겨지지 않는다. 비틀면 한계가 온다. 중학교 때 친구인 유진이는 타고났다. 애쓰지 않아도 쉽게 인화했다. 암기도 응용도 자유자재였다. 비틀린 수학 따위 숨 쉬듯 풀어낸다. 타고난 놈이 있는 것이다.


타고남을 인정하니 가식은 멈추었다. 멈추니 감춰둔 아픔이 밀려온다. 아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플 때마다 가식을 꺼낸다. 아직도 몰래 가식을 꺼낸다. 어느 시인의 '자화상' 시구처럼 나를 키운 힘의 8할은 가식과 반항이었다.


반항과 가식으로 허구를 말하고 싶다.


글을 쓰는 것은 미시적 행위 같다. 촘촘하고 미세한 관찰이다. 내면을 보든 사물을 보든 동일하다. 눈동자를 현미경 렌즈로 이입한다. 좁 범위를 세밀하게 통찰한다. 나란한 눈동자를 수직으로 정렬한다. 초점거리를 맞추고 대안 렌즈에 집중한다. 보이는 것을 여과 없이 느낀다.


글을 쓰는 최초의 힘은 반에서 비롯된다고 바르가스가 말했다. "허구의 소설에서 선택받은 재능은 없다"라고 말하는 그가, 가까운 지인인 듯 기다. 반항은 타고났다. 반항과 가식으로 허구를 고 싶다. 현실은 어둡고 초침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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